[감동산행기] 갑갑한 일상의 위안, 응봉산

  • 이경화 서울시 성동구 금호로
    입력 2020.03.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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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강릉에서 해돋이를 보며 새해 소원을 빈 게 엊그제 같은데, 2020년은 멈춰 있는 것만 같다.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 제동이 걸렸다. 답답한 마음에 사람이 안 찾는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찾을 수 있는 집 근처 응봉산을 찾기로 했다.
    중랑천 줄기와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응봉산은 높이 95m의 야트막한 산이다. 모양새가 매의 머리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응봉鷹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0년대 들어 도시 개발로 인해 산자락이 이리저리 깎인 지금은 맹금의 형세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개발 이후 산자락의 모래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심기 시작한 약 20만 그루의 개나리가 이제는 응봉산의 상징이 되어 일명 ‘개나리동산’으로 불린다. 서울의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의 메신저다.
    멀리서 응봉산을 찾아온다면 중앙선인 응봉역에서 하차해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그러나 등산로 입구는 응봉산의 각 방향으로 5~6군데가 있다.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 쪽 등산로 입구를 이용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이어진 구름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바로 응봉산이다. 구름다리 앞에 서자 응봉산 팔각정 안내표시가 길을 안내해 준다. 250m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육안으로는 나무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희미한 전등 아래 나무계단을 오르며 하산객들을 몇 명 마주쳤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바깥공기가 간절해 동네 뒷산이라도 찾는구나 싶었다. 계단을 오르며 숨이 조금씩 가빠졌지만 들이마시는 한밤의 찬 공기가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눈을 돌려보니 빽빽한 아파트 풍경 사이로 산수유 꽃이 활짝 피어 있다. 길 양쪽으로 피어 있는 산수유 꽃들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차츰 도시의 반짝이는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계단이 끝나 벌써 정상인가 싶었지만 야트막한 언덕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등산로 입구부터 언덕을 지나 10분도 채 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해 정말 오랜만에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무계단을 오르는 잠깐이 힘들어서도, 마스크 때문에 숨이 차서도 아니었다. 코와 입을 막는 답답함 없이, 단지 숨을 자유롭게 들이마실 수 있는 게 그리도 그리웠나보다. 정상의 팔각정은 밤이라 한결 더 운치 있고 야경은 시원하고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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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봉산으로 오르는 도중 울타리에 기대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인지 정상에는 사람이 없었다. 응봉산 정상 팔각정에는 조명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원래라면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이 밤에도 줄을 잇는다.
    응봉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서울숲과 그 너머에 걸린 한강의 대교들이다. 자동차 라이트, 대로를 밝히는 가로등, 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한강대교의 조명들이 어우러져 빛의 궤적을 그린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팔각정에 올라가면 조명을 받은 소나무까지 어우러져 더욱 운치 있다. 역시 응봉산은 서울 야경명소다.
    사실 응봉산 근처에 살고 있는 성동구민인 나에게 응봉산은 야경보다 ‘개나리 축제’로 익숙하다. 매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 사이 개나리가 만개할 시기면 성동구에서 개최하는 축제다. 하산길에 꽃봉오리만 맺혀 있는 개나리를 보았다. 3월 중순이면,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을 만한데 올해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역시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축제는 전면 취소되었다.
    평범하게 운동하고 대화하고 가끔은 여행도 가는 그런 일상이 뼈저리게 그립다. 모든 것이 내 의지가 아닌 일로 멈춰 있어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온다. 활짝 핀 산수유 꽃이 응봉산 등산객들을 맞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축제는 취소되었지만, 4월이 되면 응봉산은 샛노란 개나리로 물들 것이 분명하다.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이다. 곧 희망으로 뒤덮일 응봉산을 기다리며, 산을 올라 마음껏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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