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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나홀로 세계일주ㅣ홍콩 트레일] 당신이 미처 몰랐던 홍콩의 환상적인 자연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0.05.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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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 걷는 재미가 있는 트레킹 종합선물세트!

홍콩에서 가장 큰 녹지공원인 타이탐 컨트리 파크.
홍콩에서 가장 큰 녹지공원인 타이탐 컨트리 파크.

우리들의 마음속 홍콩은 대부분 화려한 마천루, 쇼핑의 천국, 나이트라이프와 번화한 거리에 차고 넘치는 사람들이다. 홍콩에서 트레킹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홍콩은 국토의 70% 이상이 녹지이고 크고 작은 240여 개의 섬이 모여서 아름다운 자연을 이루고 있다. 도시 관광지가 되기 전에는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곳으로, 도시 중심을 벗어나면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소박한 어촌의 풍경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홍콩의 트레일은 크게 4가지 코스가 있다. 홍콩섬의 주요 산들을 연결하는 약 50km의 홍콩 트레일, 신계지와 구룡반도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약 78km의 윌슨Wilson 트레일, 신계지와 구룡반도를 동서로 잇는 약 100km의 맥리호스Maclehose 트레일, 란타우섬을 동서로 잇는 약 75km의 란타우Lantau 트레일이 있다. 이 4개의 트레일 외에도 크고 작은 섬들에는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트레일이 있다.

홍콩시민의 식수원인 타이탐 저수지.
홍콩시민의 식수원인 타이탐 저수지.

타임지 선정 ‘아시아 최고의 트레킹 코스’ 드래곤스백 트레일

론리플래닛 ‘세계 최고의 도심 하이킹 10’과 타임지 ‘아시아 최고 하이킹 트랙’으로 선정되었던 드래곤스백 트레일은 다귈라반도의 섹오공원Shek O Park에서 완참산Wan Cham Shan을 잇는 길이 마치 용의 등처럼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홍콩섬에 있어서 도심에서 가깝고 홍콩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거리는 8.5km,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바다를 배경으로 숲을 걷다 보면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에 유명 해수욕장인 섹오비치가 있다. 숲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고 초보자도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MTR 샤케이완Shau kei Wan역 A3 출구에서 9번 버스를 이용해 토테이완To Tai Wan 정류소에 하차하면 바로 트레일 시작 지점이다. 시작부터 숲이 울창하다. 이른 아침 은은한 숲의 향기가 몸속으로 스며든다. 트레일 저 너머로는 바다가 펼쳐 있다. 

정상을 향하는 능선길이 그리 급하지도 않고 트레일 양옆으론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쇼핑의 도시, 복잡한 거리에서 벗어나 한적한 숲길로 들어서니 마음도 몸도 편안하다. 섹오로드 표지판을 따라 걸으니 섹오피크이다. 길 찾기도 무척 쉽다. 정상인 섹오피크의 높이는 해발 284m. 높지는 않아도 홍콩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섹오, 타이롱완, 퉁룽까지 파노라마 뷰를 만끽할 수 있다.

홍콩 트레일 5구간과 윌슨 트레일 1구간이 만나는 양명산장 버스 정류장
홍콩 트레일 5구간과 윌슨 트레일 1구간이 만나는 양명산장 버스 정류장

섹오피크에서 내려와 타이롱완의 빅웨이브 비치로 향한다. 이름 그대로 큰 파도 바닷가이다. 일 년 내내 수 미터의 파도가 쳐서 많은 서퍼들이 서핑을 즐기는 곳이고, 홍콩 트레일의 시작과 끝 지점이기도 하다. 빅웨이브 비치에 도착하니 날씨가 서늘한 데도 서핑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근처 피크닉 공원에는 가족 단위로 바비큐를 즐기고 있다. 공원에는 열대나무들이 가득하다. 홍콩에서 이런 모습을 보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유럽의 한적한 해안 마을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바닷가를 거닐다 눈에 띈 ‘고대 바위 조각ancient rock carving’이란 팻말을 따라가 보니 바위에 아주 오래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뜻하지 않았던 고대 유적도 구경하고 트레일을 마친다. 

▶ 코스 : 섹오공원~섹오피크~빅웨이브 비치(약 8.5 km)

홍콩 트레일 5구간에 있는 수마산Siu Ma Shan.
홍콩 트레일 5구간에 있는 수마산Siu Ma Shan.

스탠리를 조망하며 걷는 윌슨 트레일

윌슨 트레일 1구간은 짧지만 바이올렛 힐과 트윈스에서 스탠리반도, 다귈라반도 그리고 두 반도에 둘러싸여 마치 호수처럼 보이는 타이탐완이 연출하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홍콩의 최고급 아파트인 양명산장Hong Kong Park View은 홍콩 트레일 5구간과 윌슨 트레일 1구간이 만나는 곳이다. 양명산장까지 가는 이층버스에 오르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모두 트레킹 가는 사람들이다. 2층으로 올라가니 시티투어 버스에 탄 느낌이다. 

타이롱완의 빅웨이브 비치.
타이롱완의 빅웨이브 비치.

웡나이청Wong Nai Chung 자연보호공원에 들어서니 작은 저수지가 있다. 천천히 저수지를 한 바퀴 돈다. 아침 바람이 상쾌하다. 여유 있게 트레일 시작 지점을 찾아서 걷는다. 트윈스 정상까지 계속되는 오르막은 그늘도 거의 없고 가파르다. 온몸이 땀으로 적셔진다. 트윈스 정상에서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스탠리반도의 풍광이 멋지다.

스탠리 갭 로드로 내려오는 길은 센트럴 전체가 눈앞에 펼쳐진다. 오를 때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이다. 바닷바람에 마음도 몸도 시원해진다. 한참을 내려가다 이곳이 홍콩 트레일이 아니라 윌슨 트레일임을 알았다. 윌슨 트레일 1구간과 홍콩 트레일 5구간은 상당부분 길이 같아서 트레일의 표지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데 잠시 한눈을 팔았나보다. 방향을 잘못 잡아 처음부터 걷기를 원하던 트레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친김에 이 길을 따라 가보기로 한다. 

저 멀리 스탠리 비치의 모습도 드러나고 다귈라반도가 펼쳐진다. 길을 잘못 들어섰음에도 멋진 풍광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멋진 스탠리 비치를 바라보면서 브런치를 즐기면 어떨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오기로 한다.

▶ 코스 : 양명산장~ 스탠리(약 4.5 km)

맥리호스 트레일 2구간의 함틴마을은 트레킹 중에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맥리호스 트레일 2구간의 함틴마을은 트레킹 중에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숲 바람을 함께 즐기는 홍콩 트레일

홍콩섬 전체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홍콩 트레일. 처음 계획은 전체구간 중에서 5~8구간까지 24.5km를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레일 시작할 때 길을 잘못 들어서서 윌슨 트레일의 일부 구간을 다녀왔기 때문에 8구간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촉박하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던 윌슨 트레일을 걷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행 중에 만나는 돌발 상황은 곤란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번처럼 예상 외의 보너스를 안겨 주기도 한다. 해가 지기 전 갈 수 있는 곳까지 걷기로 한다. 

5구간 시작지점은 양명산장. 홍콩 트레일과 윌슨 트레일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오전의 실수를 거울 삼아서 홍콩 트레일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쉬엄쉬엄 바다를 바라보고 걸으니 숲의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새어 나오더니 급기야는 몸이 공중부양을 한다. 사전산渣甸山, Jardine’s Lookout에서 센트럴 빌딩 숲과 더불어 빅토리아 피크를 배경으로 홍콩섬과 빅토리아 하버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사전산에서 바라보는 센트럴 빌딩 숲.
사전산에서 바라보는 센트럴 빌딩 숲.

6구간은 타이탐 컨트리 파크 주변으로 조성된 트레일. 타이탐 컨트리 파크는 홍콩에서 가장 큰 녹지공원이고 타이탐Tai Tam저수지가 있다. 타이탐저수지는 홍콩시민의 식수원이기도하다. 타이탐 컨트리 파크에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 유산이 21개 남아 있는데 이 유산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타이탐 헤리티지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일부 구간만 걸었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트레일이다. 

7구간은 끝없이 수로를 따라서 걸어서 조금 지루하다. 마지막에 도착한 해변은 그 지루함을 한 번에 날려 준다. 그러나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8구간인 드래곤스백 트레일은 전에 다녀왔어도 이번에 다시 걷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7구간에서 종료했다. 

들꽃도 만나고 작은 폭포의 물소리도 정겨웠던 트레일, 간혹 계속된 오르막으로 힘든 구간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구간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트레일이다.

▶ 코스 :  양명산장~사전산~타이탐저수지~토테이완(약 18km)

샤프피크에서 동완으로 하산 길.
샤프피크에서 동완으로 하산 길.

아름다운 해변을 걷는 맥리호스 트레일 2구간과 샤프피크

홍콩 트레일 자료를 찾다가 나의 시선이 그대로 멈춘 곳, 샤프 피크Sharp Peak.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샤프피크를 갈 수 있는 트레일을 찾았다. 홍콩 제25대 총독 맥리호스 경의 이름을 딴 맥리호스 트레일의 10개 구간 중 2구간. 팍탐아우Pak Tam Au에서 롱케Long Ke 비치까지 산과 바다를 즐기고 아름다운 백사장을 걷는 트레일이다. 샤프피크에 올라 타이롱완 바다를 감상하려면 맥리호스 트레일 2구간에서 조금 벗어나야 한다. 

팍탐아우에서 출발한 길은 내리막인데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다. 시멘트 길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따스한 햇볕까지 함께하니 친구랑 수다 떨며 걷기에 좋다. 경사길이 끝날 즈음 나오는 첵켕Chek Keng마을은 대부분이 폐가다. 홀로 이 길을 걸었다면 무척 긴장했을 테지만 다행히 친구가 곁에 있으니 서로 의지가 된다. 이곳부터 함틴Ham Tin까지는 맥리호스 트레일로는 약 3km에 불과하지만 샤프피크를 경유해서 함틴으로 가야 하니 실제 거리는 훨씬 길다.

사이완 마을의 서핑 숍.
사이완 마을의 서핑 숍.

샤프피크의 높이는 468m이지만 해발 0m에서 시작해서 2시간 이상 올라간다. 샤프피크 입구에 도착하니 ‘위험하니 안전을 위해서는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경고 문구가 있다. 잡목조차 없이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길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다. 나 이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무던하게 참고 견디어 준 산이 참 고맙다. 이 길에 서 있는 트레커들은 경고 문구를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모두 주저 없이 오른다.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엄청난 경사도에 너덜길이다. 노출된 암석과 부서진 돌이 가득한 길은 꽤 미끄럽다. 한여름에는 절대 오면 안 되는 길이다. 산등성이를 하나씩 올라설 때마다 흘리는 땀만큼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상쾌해진다. 샤프피크에는 정상석도 없다. 단지 측량표지판만이 반길 뿐이다. 샤프피크에 서서 360도 회전하며 타이롱만의 남쪽 바다를 바라본다. 함틴완과 타이완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타이롱만 위의 샤프피크가 멋지게 어우러진다. 내려다보이는 뷰는 한마디로 장관이다.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홍콩시민의 식수원인 타이탐저수지.
홍콩시민의 식수원인 타이탐저수지.

샤프피크 정상에서 잠시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타이완Tai Wan으로 하산하지 않고 동완Tung Wan으로 조금 길게 걸어서 하산하려는데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옆에 있던 중국인에게 도움을 받아 샤프피크의 좌측 능선 따라 봉우리를 넘어서 동완으로 향한다. 능선을 걸어서 내려가는 느낌은 꼭 천상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동완에 도착하니 바다 빛은 더욱 더 곱고 투명한 쪽빛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넓은 백사장에는 햇볕 따스한 양지에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는 트레커들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품은 행복을 느낄 것이다. 동완에서 언덕을 넘어오니 동완보다 더 넓은 해변이 펼쳐진다. 타이롱완이다. 친구와 두 팔 벌려 타이롱완을 가슴에 품어본다.

이젠 사이완으로 향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다가 산비탈로 올라서 숲으로 들어선다. 숲을 지나니 함틴마을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이들이 모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아침부터 함께 걸어서인지 낯익은 얼굴도 많이 보인다. 쉬고 싶은 마음을 잠시 묶어두고 갈 길을 재촉한다.

푸른 바다, 넓은 모래사장, 뾰족한 샤프피크가 어우러진 함틴완.
푸른 바다, 넓은 모래사장, 뾰족한 샤프피크가 어우러진 함틴완.
함틴마을에서 사이완으로 나가는 길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
함틴마을에서 사이완으로 나가는 길에 놓여 있는 나무다리.

함틴마을에서 사이완Sai Wan으로 나가는 길은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우리네 여느 시골풍경을 생각나게 하는 정겨운 모습이지만 어설프게 만들어져서 건너기는 다소 부담스럽다. 함틴마을을 지나 사이완으로 가는 계단길에 오르니 오랜만에 맥리호스 트레일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아서인지 참 반갑다. 고개를 지나 1시간 이상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길을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이젠 널빤지만 한 장 걸쳐놓은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어설픈 길을 건너서 드디어 사이완마을에 도착한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더불어 서핑 등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홍콩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곳에서 트레킹을 마치면 좋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이완 정자까지 약 3km를 걸어야 한다. 

▶코스 : 팍탐아우~첵켕~샤프피크~동완~타이롱완~함틴완~사이완~사이완 정자(17km)

빅웨이브 비치의 서핑 숍.
빅웨이브 비치의 서핑 숍.
드래곤스백 트레일의 종점인 타이롱완은 홍콩 트레일의 시작과 끝 지점이기도 하다.
드래곤스백 트레일의 종점인 타이롱완은 홍콩 트레일의 시작과 끝 지점이기도 하다.

마천루 숲을 벗어나 환상적인 자연을 즐겨보자

구불구불한 능선, 울창한 계곡, 시원스러운 바다와 멋진 해변, 역사문화 유적지,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시골 풍경. 비교적 짧고 쉬운 트레킹으로도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홍콩이다. 홍콩 여행을 계획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마천루 숲을 떠나 환상적인 자연의 맛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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