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파 스토리ㅣ다치히리 다와 셰르파] 세계적인 울트라 마라토너에서 네팔 국가대표 스키선수까지 활약

입력 2020.05.21 09:54

25세에 처음 트레일러닝 시작…크로스컨트리 선수로 토리노 대회부터 3회 연속 올림픽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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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라토너 다치히리. 사진 하이킹온더문.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네팔 선수는 단 한 명이었다. 그의 이름은 다치히리 다와 셰르파Dachhiri Dawa Sherpa(51)로, 출전한 부문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15km 종목이었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다치히리의 성적은 아쉽게도 전체 99명 중 95위, 기록은 56분 47초 1이었다. 
비록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다치히리의 질주는 네팔 어린이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줬다. 다치히리의 본래 직업은 스포츠 선수가 아닌 스위스로 이민한 ‘석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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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올림픽에 출전한 다치히리. 사진 조선일보 DB
다치히리는 1969년 11월 3일 에베레스트 자락에 위치한 솔로쿰부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다치히리는 조숙하고 조용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여섯 살이 된 다치히리는 놀랍게도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며 마을을 떠나 네팔 불교사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여느 아이라면 장난감이나 놀이에 한창 푹 빠져 있을 나이에 내린 결정이었다.
유소년 시절을 사원에서 보낸 다치히리는 16세의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됐다. 다치히리는 장남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평화롭던 사원 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셰르파족이기에 자연스럽게 산악 포터 일을 맡았다. 그러나 고산 등반가이드는 하지 않고 에베레스트 지역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보조 요리사로만 일했다.
마을의 다른 주민들처럼 조용히 셰르파로 일생을 보낼 것 같았던 다치히리의 인생은 25세에 급변하게 된다. 남다른 다리를 가진 다치히리를 눈여겨 본 다른 셰르파들이 산악 달리기(트레일 러닝, 울트라 마라톤 등) 대회에 참여해 볼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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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히리의 자선재단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달리기를 가르치고 있다.
막노동하며 마라톤 대회 출전
동료 셰르파들의 성화에 힘입어 참여한 첫 대회는 히말라야 슈퍼 마라톤이었다. 대회를 조직한 사람이 네팔인이 아니라 스위스인이었기에 네팔 사람보다 유럽 참가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다치히리는 아무래도 마라톤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완주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우승하지 못했지만 다치히리는 더 값진 것을 얻었다. 이 대회에서 만난 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프랑스 여성 애니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듬해인 1995년 다치히리는 애니를 만나기 위해 처음 스위스를 찾았고, 3년간 국경을 넘나드는 연애 끝에 1998년 애니와 결혼했다. 
다치히리는 결혼과 동시에 스위스 남서부 인두니Induni로 이민했다. 따로 기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순전히 석공 일을 비롯한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야만 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마라톤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네팔에 비해 더욱 다양하고 많은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치히리는 결혼한 해인 1998년 프랑스 베르동Verdon 마라톤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뒤, 유럽 곳곳과 네팔을 오가며 수많은 극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컵을 쓸어 담았다. 시에레 지날Sierre-Zinal, 덩 뒤 미디Dents du Midi 등 알프스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는 산악 마라톤 대회를 섭렵하고, 안나푸르나 트레일, 아르데슈Ardéchois 트레일, 팀베 레이드Tchimbé Raid, 우바예 솔로몬Ubaye Solomon 레스 템플리에Les Templiers 등 100여 개 이상의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다.
커리어의 정점은 2003년이다. 트레일러닝 대회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Mont-Blanc Ultra-trail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을 지나는 총길이 171km의 7개 코스를 주파하는 대회다. 전 세계에서 평균 1만여 명의 트레일 러너들이 참가하는 유서 깊은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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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히리가 직접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마을 출레무Chhulemu에서 마을을 재건하고 있다.
네팔 어린이 대상 자선사업도 벌여
울트라 마라토너로 활약하던 다치히리의 삶은 2002년에 또 한 번 전환점을 맞는다. 네팔올림픽위원회로부터 고국인 네팔을 대표해 올림픽선수로 출전해 줄 수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다치히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설레며 ‘어떤 종목에 출전하게 되냐’고 묻자 위원회는 ‘스키’라고 답해서 깜짝 놀랐다”며 “그때까지 스키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는데 위원회는 그저 ‘조금만 훈련하면 된다’고 답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네팔올림픽위원회는 다치히리에게 먼저 국제 경험을 쌓기 위해 석 달 뒤 열리는 2003 아오모리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보라고 권유했다. 다치히리는 3개월 동안 생업을 병행하며 단 6번, 총 12시간에 불과한 스키 수업을 받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물론 성적은 최하위권이었으나 다치히리는 “내 인생에서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다치히리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부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4 소치 동계올림픽까지 연달아 출전해 네팔 국기를 가슴에 달고 눈밭을 누볐다. 물론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토리노에서는 95등, 밴쿠버에서는 92등, 소치에서는 86등을 했다. 그러나 다치히리는 “내 가슴속의 올림픽 정신을 네팔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트레일 러너이자 네팔 국가대표 크로스컨트리 선수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기업과 단체가 다치히리를 후원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자 다치히리는 2007년 다와셰르파 익스피리언스Dawasherpa experiences라는 자선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현재까지도 네팔 내의 트레일 러닝 대회를 개최하고, 수익금이나 기부금으로 네팔의 어린이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다치히리는 이 재단을 통해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첫 트레일 러닝 대회인 ‘다와와 함께 뛰자Run with Dawa’를 자신의 고향인 솔로쿰부에서 처음으로 개최하고 자신도 직접 참여했다. 수익금은 어린이들을 위해 썼다. 다치히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네팔 어린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했다”며 “어린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나서 제2의 다치히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다치히리는 소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후 재단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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