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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감동산행기] 승학산 치유의 숲길에서 형제애를 다지다

박정도 부산시 사하구 다대로
  • 입력 2020.05.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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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길을 걷고 있는 큰형(왼쪽)과 필자.
치유의 숲길을 걷고 있는 큰형(왼쪽)과 필자.

큰형은 올해 나이가 일흔한 살이다. 10여 년 전에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소일거리 삼아 이런저런 일을 좀 하다가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일을 하고 싶지만 고령인 형을 채용하려는 곳이 없어서 마냥 쉬는 것이다.

형은 타고나게 건강한 체질에다가 오랜 기간 육체노동을 해서 몸이 단련돼 체력 하나만은 누구보다 강인하고 힘도 센 편이다. 그런 형이 일 없이 집에만 있으려니 무척 답답한 모양이다. 답답하고 권태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집 주변을 자주 거닌다. 형이 사는 집 주변엔 낙동강이 있어서 강둑을 거닐면 시간이 잘 간다고 한다. 그렇지만 늘 같은 길을 걸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막내 동생으로서 그런 형이 좀 안타까워 보여서 가끔 길동무를 자청해 산행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곤 한다. 지난 휴일엔 나의 제안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명산 가운데 하나인 승학산(497m) 자락의 ‘치유의 숲길’을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승학산 정상은 자주 다녀왔기에 이번에는 형제 둘이서 산 하단부에 자리한 산책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부산 사상구 엄궁동과 학장동에 걸쳐 있는 산책길인 치유의 숲길은 승학산 자락을 따라 거의 수평으로 자리해 있어서 산행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부산 사상구청에서 수년 전에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복지향상을 위해 거액의 사업비를 들여 길이 6km에 이르는 치유의 숲길을 조성했다. 승학산 치유의 숲길 구간에는 산수유와 금목서 등 많은 나무를 심고 장승과 솟대, 초가집, 의자, 바람개비 등 여러 관광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숲길을 거닐면서 조용히 명상하고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그런 탓인지 연중 내내 산책인파로 들끓는다. 일반인이건 노약자건 누구나 안전하고 쾌적하게 치유의 숲길을 걸을 수 있도록 관절보호용 야자매트도 설치했다. 야자매트는 야자열매 껍질 섬유로 만들어져 친환경적이고 질겨 안전한 산행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일정을 정하고 형에게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몸만 오라고 했다. 도시락과 물, 각종 간식 등은 내가 다 준비한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부탁해 김밥, 과자, 물, 음료수, 과일, 커피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배낭에 넣고 출발지인 부산 사상구 엄궁동 동궁초등학교 뒤편으로 향했다.

형은 흐뭇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빈손으로 오라고 했는데도 형수가 준비해 주더라며 배낭에 보리차와 삶은 달걀, 사탕 등 몇 가지 간식을 넣어왔다. 형은 동생과 같이 산길을 걸을 수 있어서 기분이 아주 좋다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는 오전 10시에 동궁초등학교 뒤편에서 출발했다. 처음은 좀 오르막이지만 10분 정도 올라 승학약수터부터는 옆으로 이내 수평의 길이 이어졌다. 물론 약간 굴곡진 길이 있었지만 대체로 수평적인 길이어서 누구나 산책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살아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며 치유의 숲길을 걸었다. 계절이 봄이고 또한 휴일이어서 우리 말고 다른 산책객도 많았다. 화사한 꽃 풍경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치고 선선한 바람마저 부니 살랑살랑 걷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형은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몸이 건강하고 의식주 해결하며 산천초목을 구경하면서 걸을 수 있으니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작은 행복은 이런 것에서 찾을 수 있다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조금 걷다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숨을 골랐다.

두 시간 정도 걸어 학장동 승학사에 도착, 방향을 되돌려 오던 길을 다시 걸었다. 점심시간이 돼 적당한 곳에 앉아 준비해 간 도시락과 간식을 먹었다.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음식은 맛이 출중했다. 역시 배가 고프면 무슨 음식이라도 맛이 좋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아내의 정성이 깃든 음식이기에 나무랄 데 없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 충분히 쉬고는 다시 걸었다. 식후의 오후 시간이어서 다리가 좀 후들거렸지만 배가 부르고 힘도 생겨 크게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형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잘 걸었다. 숲 속에서는 가끔 청설모가 나무를 오르내리며 술래잡기를 하고 비둘기와 참새 떼는 날개를 파닥이며 우아한 춤을 선보였다.

숲 속에선 권태로웠던 시간이 재빠르게 흘렀고 묵직했던 정신과 신체는 솜털처럼 가벼워졌다. 평소에 가끔씩 만나는 형제였지만 산길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니 서로 간에 몰랐던 부분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역시 원활한 소통엔 대화가 최고의 비결임이 느껴졌다.

출발지인 엄궁동 동궁초등학교 뒤편으로 내려와서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인근 음식점에서 간단하게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적셨다. 땀을 흘리고 나서 마시는 막걸리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다. 형과 후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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