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썩지 않는다

  • 글·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입력 2020.06.10 11:31

    ‘스틱 대통령’ 윤치술의 힐링&걷기 <27>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으로 빠져 나오는 네모난 바람을 맞으며 내 안의 나를 보듯 의상능선에서 북한산을 들여다본다. 탈색된 오로라 같은 송홧가루 춤사위가 골짝과 산부리에서 지랄이다. 용혈봉과 문수봉을 넘어 비봉, 제각말까지 갈 길이 멀다. 힘에 부쳐 뒷바람의 도움이라도 받아보려는 쇠잔함이 나를 슬프게 해도 능선처럼 이어지는 요즘 산행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해거름 산발치에서 벚꽃 잎은 뻥튀긴 튀밥처럼 흩어지고 쌓여 눈길을 만들고, 억바위 아래로 돌돌 구르는 골물과 아름드리나무가 뽐내는 자연은 미쁘고도 살갑다. 길재吉再의 시조를 읊자하니 산천은 의구하고, 썩지 않는 산이 있어 나도 간데없지 않고 의구하다.
    어젯밤 별똥별에 홀리다가 Y를 소환했다. 제주도 오름에 빠진 그는 옛일을 소똥 말아 굴리듯 고이 간직하는 쇠똥구리 같은 친구다. 가뭇한 기억도 할머니 고의춤 동전 꺼내듯 곰상곰상 챙겨 준다. 
    “우리 1988년 6월에 소백산 갔던 자료 좀 보내 줘.” 
    “무승거에 쓰젠 허염수꽝?” 
    그게 왜 필요한지를 탐라국 말로 받는다. 
    “옛 생각의 불씨가 사위어져 지피려 그러네.” 
    Y는 30여 년 전 새벽에 희방사역 철도원이 흔들던 파란 전호등傳號燈의 아련함과 철쭉능선의 붉은 사연을 한움큼 보내왔다. 받아 든 추억에 눈시울 젖고 눈 감으니 청량리 발 중앙선 밤기차와 니커스knickers 입은 빨간 배낭의 청춘이 초로初老의 나를 보듬고 있다.
    소백산을 그리다가 일본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낭독과 묵독, 적치 세 가지 독법讀法이 생각났다. 소리 내어서 읽고, 속으로 읽는 둘은 잘 알지만 적치積置는 생소할 것이다. 적치는 요즘말로 츤도쿠積ん読로서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이나 행위’를 말한다. 책 더미의 존재에서 위로와 지적욕구, 문화지향성을 갖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산을 우러르는 것만으로도 힐링healing되고 상상 속의 산을 그리기만 해도 산행이 된다고 믿는다. 이것은 내가 주창하는 세 가지 산행으로서, 자연을 그리워하는 비포 트레킹Before Trekking, 지난 산행을 간직하고 회상하는 애프터 트레킹After Trekking과 궤軌를 같이한다.
    또 하나는 해피 트레킹Happy Trekking이다. 만일 자연과 어울렸던 산행의 기억을 다 잊었다 해도 산행 전과 후 내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행복이 일어난 것으로서 츤도쿠의 사례와 더불어 사뭇 다른 산의 의미를 보여 준다. 이는 우리가 궁극의 산행인 ‘순수와 포용’에 다가서고 있음을 당장은 느끼지 못하지만, 오랜 시간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지는 피오르드fjord처럼 시나브로 변화해 끝내 자연친화적 사고思考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삶의 가치가 성장成長에 있다고 믿는 나에게 산은 육체의 근육과 정신의 근력을 키워 주는 환희의 샘이다. 그날 그때는 지금 없어도 내 맘에 산행은 끝없이 흐른다. 썩지 않는 산이 있음에.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교장/건누리병원고문/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 사)대한산악연맹 찾아가는 트레킹스쿨 교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 교장/월간 산 대한민국 등산학교 명강사 1호 선정
    윤치술 교장은 ‘강연으로 만나는 산’이라는 주제로 산을 풀어낸다. 독특하고 유익한 명강의로 정평이 나 있으며 등산, 트레킹, 걷기의 독보적인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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