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6.01 10:05

신록이 온 산을 뒤덮는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았던 나무들이 어느새 녹색의 새 옷으로 완전 새 단장했다. 속살을 그대로 보이다 순식간에 살을 찌운 모습이다. 사시사철 성주괴공成住壞空 순환하는 자연의 힘이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인간은 60년 주기로 순환하지만 자연은 1년 주기다. 그런데도 자연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하다. 인간은 유시유종有始有終이지만 자연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자연이 곧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 우주의 한 모습이 바로 산이다.
6월의 산은 신록과 더불어 아늑하고 호젓한 산책로가 좋은 곳을 선택해서 찾는다. 육지의 식생과는 다른 화산과 해양성 식생을 띠면서 원시림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울릉도 성인봉은 ‘6월의 명산’과 ‘옛 문헌에 나오는 울릉도 성인봉’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이어 한국 최고의 기도처 보리암이 있는 남해 금산,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영주 소백산, 봄나물과 음기의 산으로 유명한 영양 일월산, 청풍명월의 명산 월악산, 그리고 열린 석불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 남산 등이다. 자세한 정보는 월간<山> 홈페이지san.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남해 금산
원래 보광산에서 이성계가 금산으로 바꿔
남해 금산錦山(704.9mm)은 원래 보광산이지만 조선 태조 이성계 때문에 지명이 바뀌었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전국의 산을 찾아 신에게 기도를 올렸지만 어느 산신도 감응이 없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크게 낙담한 이성계는 남해 쪽에서 빛을 발하는 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더니 남해 보광산 산신으로부터 마침내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이성계는 보광산 산신에게 보은하기 위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명을 금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보광산이든 금산이든 조선 이전까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 들어서부터 금산이란 지명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남해 금산은 지금은 연육교가 놓여 육지가 된 산으로 유명하지만 한국 최고의 기도처 보리암으로 더 명성을 발한다. 정성 들여 기도를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한다.
경관이 원체 좋아 보통 8경이나 10경을 꼽지만 금산은 38경이나 있다. 정상 바로 아래 보리암까지 차가 올라가 접근성도 좋다.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한 인파는 1㎞ 아래 도로까지 차가 밀리곤 한다. 산 아래 자락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보낸 서복이 남긴 글자라고 전하는 아직까지 해독 안 되는 석각도 있다. 볼거리다.
2. 월악산
‘으뜸 바위산’ 월형산으로 불리다 바뀌어
월악산月嶽山(1,095.3m)은 원래 월형산으로 불렸다. <고려사>에 ‘청풍현은 본래 고구려의 사열이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월악이 있으며, 신라 때는 월형산으로 불렀다’고 나온다. <세종지리지>에도 ‘월악은 청풍에 있으며, 삼국 때는 월형산이라 하여 사전祀典이 있었는데, 지금은 혁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삼국사기>에도 전국의 명산대천 중에 소사로 지정됐다고 소개한다. 그만큼 명산이란 의미다.
월악산을 흔히 달과 연관시키지만 이는 낭설에 가깝다. ‘달’의 고대어는 ‘높다’이거나 ‘돌’을 의미한다. 월형산으로 보면 그 의미가 들어온다. ‘으뜸 바위산’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목의 ‘月嶽記’에서도 월악산을 가리켜 ‘돌로 이뤄진 큰 산’이라 기록하고 있다. 실제 월악산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다. 북한산 인수봉과 같은 암석이다. 암벽이 우뚝 솟은 산이란 의미를 이후 달을 한자로 바꾸면서 ‘月’로 수정하니 본래의 의미가 변색된 것이다.
그래서 정상 주봉인 영봉靈峯의 의미가 더욱 다가온다. 암벽 봉우리 중에 우뚝 솟아 신비롭게 보이며, 운무에 가린 모습이 장관이다. 계곡과 죽령·하늘재·미륵사지 등 즐길 거리도 많다.
3. 영양 일월산
내륙에 우뚝 솟아 해와 달이 가장 먼저 뜨는 산
조선 말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만도의 문집 <향산집>에 ‘일월산에 명동이란 마을 있거니/ 마을 이름은 산 이름을 합쳤네/ (후략)’라고 나온다. 지명에서 보듯이 영양 일월산日月山(1,219m)은 해와 달의 산이다. 첩첩산중 오지에 우뚝 솟아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따라서 해와 달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산이다. 정상부에 일자봉과 월자봉이 있다.
일월산은 산나물과 황씨부인당으로 불리는 산신각으로 유명하다. 일월산 전체가 산나물 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나물은 습하고 그늘진 환경에서 주로 서식한다. 달리 말하면 물이 많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해도호부편에서도 ‘(낙동강 동쪽 끝) 대천大川은 일월산이 발원지이며 진보현에 이르러 신한천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습하고 물이 많으면 지리산과 비슷한 지형으로 약간의 음기陰氣를 띤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여성 산신이다. 황씨부인당 산신 기도처는 일월산 곳곳에 있다. 결혼 첫날 연적이 죽이러 온 것으로 착각해서 도망간 신랑을 못 잊어 깊은 원한을 안고 죽은 신부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혼령을 기리던 사당이 점차 발전해 일월산 산신 주인이 돼 버렸다. 산신 황씨부인과 산나물, 그리고 일월을 볼 수 있는 산이다.
4. 소백산
900년대부터 소백산 등장… 이전에 죽령으로
조선 중기 <남사고 비결>에서 소백산小白山(1,439.5m)을 활인산活人山, 즉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 <정감록>의 십승지로 꼽히는 숨어살기 좋은 땅이다. <정감록> 감결편 첫 머리에 ‘몸을 보전할 땅이 열 있으니’ 하면서 첫 번째로 언급한 땅이 ‘풍기 금계촌’이라고 나온다. 실제로 소백산 풍기 근처에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오대산·가야산과 더불어 삼재를 피할 수 있는 산으로 꼽혔다.
영주의 향토사학자들은 “영산은 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백두산과 남한의 소백산을 영산으로 떠받든다. 최고의 산을 영산, 다음이 명산, 마지막은 주산 혹은 진산이라 한다.
삼국시대 때부터 등장하지만 소백산이 아닌 죽령으로 나온다. 소백산에 대한 첫 기록은 고려 초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939년)에 등장하면서부터다.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939년)에도 소백산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소백산이란 지명은 아마 이 무렵부터 사용한 것으로 판단한다. 백두산 기록은 대략 700년 즈음 등장한다.
소백산 야생화는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고산 철쭉도 이퇴계의 유산록에 등장할 정도다. 유려한 능선과 더불어 계곡, 야생화로 뒤덮은 6월에 매우 갈 만한 산이 바로 소백산이다.
5. 경주 남산
옛 지명은 ‘금오산’… 신라 흥망성쇠 고스란히 간직
경주 남산南山(494m)은 마애석불의 열린 박물관이자 보고寶庫이다. 온갖 형상의 석불과 석탑이 산재한다. 석불과 석탑의 모습도 석각을 하기 시작한 6세기 초기부터 10세기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변하는 모습만 봐도 흥미롭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하기 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신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전통신앙과 불교신앙의 성지와 같은 산이다. 뿐만 아니라 박, 석, 김 세 성씨가 탄생한 계림도 끼고 있다. 신라 왕조의 신앙처이자 요람인 셈이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또한 신라 왕조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박혁거세가 탄강한 나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 도성을 지켜온 남산신성,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 등이 전한다. 김시습이 은거하며 <금오신화>를 쓴 산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에 ‘금오산金鰲山은 남산이라고도 한다. 부의 남쪽 6리에 있다. 당나라의 고운顧雲이 최치원에게 지어준 시에 들으니 바닷가에 세 마리의 금오가 있어, 머리 위에 높디 높은 산을 이었다네. 산 위에는 구슬 궁, 진주대궐, 황금전이요, 산 밑에는 천리만리 끝없이 넓은 물결, 그 곁에 한 조각 계림이 푸른데, 금오산이 정기를 모아 기특한 인재 낳았네 라고 했다’고 나온다. <세종지리지> 경주부에도 ‘금오산은 본부의 남서쪽에 있다. 신라 시조의 궁전 유기遺基가 있는데, 후인이 그 터에 창림사를 세웠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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