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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지금, 작은 것부터 실천하세요!”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양수열 기자, 임희승 기자
  • 입력 2020.06.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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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1주년 캠페인<3> Do It Now! 현장]
불암산 등산로 5m 이내 쓰레기 상당해, 안 볼 때 쓰레기 던지는 행태

불암산 전망바위에서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선 클린하이커스 회원들.
불암산 전망바위에서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선 클린하이커스 회원들.

‘지금 실천하자Do It Now!’를 실천하는 젊은 등산 마니아들을 불암산에서 만났다. 월간<山> 필자인 김강은씨를 주축으로 한 ‘클린하이커스Clean Hikers’ 회원들이다. SNS를 통해 만난  이들은 정기적으로 쓰레기 줍기 산행을 하며 적극적으로 우리 산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2018년 처음 시작된 클린하이킹은 늘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해, 클린 산행을 하고 환경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형태였으나, 현재는 ‘클린하이커스’ 모임으로 발전해 8명의 운영진과 지역모임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청소년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거쳐 갔지만 연속성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은 대부분 20~30대다. 클린하이커스 회원들에게 월간<山> 창간51주년 기획 ‘두 잇 나우Do It Now!’ 캠페인 취지를 설명하자, 적극적으로 시간을 내어 동참해 주었다.

김강은씨를 비롯한 4명의 클린하이커들과 함께 불암산을 오른다. 여느 산악회와 다른 건, 쓰레기 집게와 쓰레기 수거 가방을 메었다는 것. 통통 튀는 청춘들답게 높은 톤의 목소리로 웃고 떠들다가 쓰레기만 발견하면 모든 걸 멈추고 수거에 집중한다. 쓰레기를 따라 산길을 벗어나 비탈로 숱하게 내려선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쓰레기는 등산로가 아닌, 부근 5m 근처에 있다. 쓰레기를 등산로에서 비탈로 던져서 버린 것.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고, 바위틈 사이 깊숙이 끼워 놓는 경우가 많아 수거가 까다롭다고 한다.

‘클린하이커스’스카프를 배낭에 둘러 등산객들이 친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클린하이커스’스카프를 배낭에 둘러 등산객들이 친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같은 뜻 가진 사람과 함께하는 기쁨

용산구청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하는 이은민(37·용산여성축구팀)씨는 여행·등산·축구를 즐기는 활동적인 여성이다. 홀로 호주와 동남아, 유럽을 배낭여행으로 다녀왔으며 1년 넘게 클린하이킹 활동을 하고 있다.

“환경에 관심이 많아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몰랐어요. 클린하이커스는 먹고 노는 모임이 아니라서 더 좋았어요. 활동을 할수록 친환경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듣고 공유할 수 있어 서로 도움 되고 발전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박진형(31)씨는 최소 비용으로 세계 곳곳을 누빈 트레킹 마니아다. 알프스 뚜르드 몽블랑TMB 트레킹을 시작으로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까지 3개월간 2,100㎞를 텐트 없이 비박으로 완주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프랑스 샤모니까지 비박으로 도보 여행을 했으며 적성을 살려, 현재 혜초여행사에서 근무하며 킬리만자로와 TMB 트레킹 가이드를 맡고 있다.

수거한 쓰레기로 정크아트를 꾸미고 있다.
수거한 쓰레기로 정크아트를 꾸미고 있다.

그는 “전공이 환경공학이라 자연스럽게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클린하이킹을 하면서 산행 중 쓰레기 줍는 버릇이 생겼고, 해외 산에서도 쓰레기를 줍는데 손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특히 “알프스 TMB 트레킹할 때 산의 쓰레기를 주워 오면 현지 마을사람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친환경에 관심이 높은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취업준비생인 이승령(26)씨는 김강은씨와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걸은 것을 인연으로 작년 3월부터 클린하이킹에 동참했다. 그녀는 “등산을 즐기는 20대 여성이 많다”며 “주말 오전에 친구를 만나 등산하고 밥 먹고 카페 가는 것이 흔한 패턴”이라고 달라진 20대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등산을 좋아하는데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 참여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활동도 좋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다”고 장점을 말했다.

클린하이커스를 이끄는 리더는 김강은(31)씨다. 모임에서 “대장, 대표, 회장, 누님, 형님” 등 다양하게 불리는 그는 2018년 3월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이용해 클린하이킹 활동을 시작했다. 클린하이킹 공지를 올리고 신청자를 받아 그중 5~10명을 선발해 함께 쓰레기 줍기 산행을 해온 것. 그는 “신청서를 보고 너무 가볍게 오려는 이보다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진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을 선발했다”며 “클린하이킹을 거쳐 간 사람이 130명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신문지, 깔창, 양말, 벽시계 등 이해하기 어려운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신문지, 깔창, 양말, 벽시계 등 이해하기 어려운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람들로만 모이는 방식이었으나, 한 번 참가한 이들이 지속적으로 모이길 원해서 모임으로 발전되었다. 정상 직전의 쉼터인 다람쥐광장까지 오는 동안 쓰레기 가방이 가득 찼다. 가장 막내인 이승령씨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등산로 밖으로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의 행태를 지적했다. 1970~1980년대에 생산던 옛 음식물 봉투들을 보며 반세기가 흘러도 썩지 않는 비닐의 심각성을 실감한다. 또 무수한 꼬막과 조개·굴 껍질들. 과일 껍질들 역시 염분과 농약 성분으로 산과 어우러지긴 어렵다.

이들이 준비해 온 도시락 점심은 일반 등산객들이 참고할 만하다. 일회용품을 가져온 이는 아무도 없고 도시락 통과 텀블러를 준비했다. 음식도 육류보다는 채소류가 눈에 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와 돼지 같은 가축이 뿜어내는 메탄이 어마어마해 오존층 파괴에 큰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젊은 친환경주의자들인 클린하이커스는 지난 2년 동안 여러 고민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고 김강은씨는 말한다.

능선 마당바위에서 쓰레기 가방을 들고 유쾌한 포즈를 취한 클린하이커스. 왼쪽부터 이은민, 이승령, 박진형, 김강은씨.
능선 마당바위에서 쓰레기 가방을 들고 유쾌한 포즈를 취한 클린하이커스. 왼쪽부터 이은민, 이승령, 박진형, 김강은씨.

“산에 쓰레기가 너무 많으면 힘 빠지긴 해요.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줍는다고 바뀔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서 힘을 얻게 돼요. 새로운 사람들과 클린하이킹 활동을 할 때마다 에너지를 얻어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라 함께 있으면 꿈을 꾸게 되요. 한번 참가하면 ‘내 삶에 변화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변하게 돼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게임처럼 즐겁게 친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젊은 층답게 ‘즐거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쓰레기를 줍는 산행은 등산을 즐기기에 한계가 있어 종주산행과 백패킹 등을 하는 버킷하이킹, 산에서 그림 그리는 아트하이킹도 함께 하고 있다. 자연을 즐기면서 친환경 의식을 공유하고 모색한다. 이것이 큰 동반 상승효과를 내어 이들의 일상을 밝게 변화시킨다고 한다.

“클린하이킹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멋져 보이는 거죠. 일회용품 안 쓰고, 플라스틱 포장제품보다 종이 포장제품 이용하는 사소한 실천은 작은 행동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서 변화를 일으켜요. 주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당장 변화시키겠다는 것보다는 마음을 편히 먹고 우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다보면 점점 익숙해져요. 강요하기보다는 하나를 실천하더라도 서로 칭찬해 주고 북돋아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여럿이 함께할수록 파급력이 생기고, 실천하기 쉽고 동기부여도 되고요.”

현재 인류가 처한 온실가스 문제는 먼 데서 해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나부터 조금씩, 함께 조금씩 실천하면 된다’는 확신을 이들을 통해 얻는다.

대부분의 쓰레기는 등산로 밖 5m 이내에 산재해 있다. 비탈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손을 맞잡은 이승령, 이은민씨.
대부분의 쓰레기는 등산로 밖 5m 이내에 산재해 있다. 비탈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손을 맞잡은 이승령, 이은민씨.

“관종이냐? 혼자서만 유별나게 구냐!”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쓰레기 줍기 SNS에 올려서 조회 수 늘리려는 관종(관심종자를 뜻하는 비속어)이다”, “집에서 쓰레기 배출하면서 산에서만 줍는 건 모순이다”, “왜 혼자서만 일회용 컵이 아닌 텀블러 쓰겠다고 유별나게 구냐” 등의 말을 많이 듣는다. 쓰레기 줍는 와중에 “젊은이들이 좋은 일 한다”며 쓰레기를 주고 가는 등산객도 많은데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들도 언젠간 변하겠지’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받는다고 한다.

줍는 사람은 줍고, 버리는 사람은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이들의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의 인식을 바꾸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사회 발전 수준에 비해 환경 의식이 너무 미약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에 오르는 등 경제 성장 위주의 인식이 팽배하다.

건강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거한 쓰레기를 모아 정크아트Junk Art로 꾸몄다. 새삼 수거한 쓰레기양과 종류에 놀라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놀란다. 오전 내내 흐리고 쌀쌀했던 날씨가 풀리더니 뜨거운 초여름 햇살이 내리쬔다. 불암산도 클린하이커스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밝은 분위기로 바뀐다. 하산길, “대단한 것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고 공유하자”는 이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람쥐광장까지 올라오는 동안 주운 쓰레기로 정크아트를 꾸몄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벽화가 김강은씨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회원들의 신망이 두텁다.
다람쥐광장까지 올라오는 동안 주운 쓰레기로 정크아트를 꾸몄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벽화가 김강은씨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감각으로 회원들의 신망이 두텁다.
점심 도시락. 일회용품 없는, 채소 위주의 식단이다.
점심 도시락. 일회용품 없는, 채소 위주의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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