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섬, 생일도

입력 2020.06.18 10:02 | 수정 2020.06.19 17:37

[도전! 섬&산 100ㅣ6월의 섬 생일도]
백운산 정상과 금곡해변~금머리갯길 잇는 10km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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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오름길에 본 생일도 앞 바다. 연륙교 없는 남해의 섬 중 최고봉답게 시원하게 경치가 터진다.
마음이 더 이상 하루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바다로 가야 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남쪽 끝, 목 놓아 울어도 아무도 모를 외딴 섬에서 묵묵히 삼켜온 참담함을 토해내야 한다. 시절의 흐름은 홀로 어찌할 수 없는 것. 봄이 가서 떨어지는 꽃잎을 어찌하랴.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맨 끝으로 가야 한다면 ‘다시 태어난다는 섬’ 생일도로 가야 한다.
웃음이 빵 터졌다. 생일도 서성항에 내리자 대형 생일 케이크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4m가 넘는 큰 덩치에 전복과 해산물로 장식된 귀여운 케이크. 낯선 곳을 찾은 이의 긴장이 한순간 풀렸다. 귀퉁이 버튼을 누르자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오고, 먼 길 오느라 지친 우리의 얼굴은 어느새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고 오늘이 생일인 것처럼 들뜬 얼굴로 섬에 들었다.
날 ‘생生’에 날 ‘일日’자를 쓰는 생일도는 이곳 주민들이 아기처럼 순수한 심성을 가졌다 하여 생긴 이름이며, ‘매일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금곡마을펜션에서 하룻밤 묵고 이곳 토박이자 면사무소 직원인 김성안씨를 만나 백운산(483m)에 든다. 블랙야크 익스트림팀의 젊은 피 홍주현·손창건씨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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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쓰레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금곡해변. 해변 부근에 텐트를 칠 수 있지만 여름 휴가철에만 화장실을 개방한다.
생영초교 뒤편 능선을 따라 정상에 이른 후 일출공원에서 임도를 따라 금곡해변에서 바다와 마주한 후 해안 걷기길인 금머리갯길을 따라 용출갯돌밭에 이르는 코스를 추천해 주었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연스럽게 산행을 시작해 정상에 오른 후 생일도의 백미로 꼽히는 금곡해수욕장을 거쳐, 금머리갯길 따라 바다와 섬과 숲이 만나는 은밀한 풍경을 모두 누리는, 생일선물 같은 당일 코스다. 
임도를 따르다 산길로 든다. 좁지만 선명한 산길, 짙은 숲 향기가 알싸하게 코끝을 감싼다. 적당한 습기와 풀내음, 소나무와 소사나무가 뱉어내는 채취가 섞여 숨을 들이마실수록 몸이 개운해진다. 늦잠 자고 싶었던 게으른 욕망이 툭툭 떨어져나가고 초록색 활력으로 몸이 재충전이 되어간다. 산을 오를수록 몸과 마음이 화사해진다. 이상한 산행의 힘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여느 백운산처럼 흰 구름이 머무는 산이란 뜻을 담고 있으나, 산세는 평범치 않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중에서 가거도 독실산 다음으로 높다. 폐헬기장과 학서암 갈림길을 지나자 비범한 경치가 아무렇게나 툭툭 터진다. 한 시간은 머물고픈 전망바위가 잦아지더니 주변 섬들이 납작 엎드린 듯 낮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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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소사나무 숲터널을 오르는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홍주현·손창건씨. 생영초교 뒤편 등산로를 따라 백운산을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치 보고, 나무 보고, 사진 몇 번 찍고, 메모하고, GPS 기록하느라 느려 터진 기자를 김성안 주무관이 10m쯤 떨어져 기다린다. 생일도 사람답게 순수한 심성으로 묵묵히 산행을 도와준다. 맑은 날은 제주도 한라산이 보인다는데, 짙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쏟아지는 햇볕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려다보이는 학서암은 300년쯤 된 암자로 근처 섬들에 큰 사고가 잦아 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세웠다고 한다. 조계종 백양사의 말사이며 낯빛이 맑은 비구니 스님들이 정갈하게 암자를 꾸리고 있었다.
다도해의 우두머리 산답게 정상은 거침없다. 아직 1년이 채 안 된 새 전망데크가 친절한 식당처럼 먹음직스런 경치로 산객을 극진히 대접한다. 압도적인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섬 경치, 묵은 체증이 바람에 날려 간다. 촘촘히 수면 위를 메운 양식장 부표는 다시마와 전복을 생업으로 하는 주민들의 부지런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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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드는 대형 생일케이크 조형물. 귀퉁이의 버튼을 누르면 생일축하 노래가 나온다.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한라산 능선
산 아래에서 만났던 학서암 주지스님은 맑은 날 중에서도 어떤 조건들이 맞아야 한라산이 보인다고 했다. 스마트폰 사진으로 본 한라산은 기묘해, 마치 배를 타고 30분쯤 가면 닿을 곳처럼 가깝게 보였다. 한라산의 부드러운 실루엣은 단순하고 완벽한 능선이었다. 생일도에서 한라산까지 100㎞가 완벽히 맑을 때 드러나는 신비로운 광경. 사뭇 백운산의 내공이 더 깊게 느껴졌다.
한없이 고요한 산정의 주인은 바닷바람이라 오래 머무르기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고요한 산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바위는 침묵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바람을 버티며, 나무는 흔들리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산은 고요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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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정상에는 깔끔한 전망데크와 큼직한 표지석이 있어 휴식과 BAC인증을 하기에 알맞다.
하산 능선 전망데크에선 여린 신록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서로를 꼭 부여안고 놓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모습이 눈부셨다. 코로나 시대의 모든 절망들이 햇살 속에서 천천히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십이지신을 캐릭터로 꾸민 일출공원을 지나자 임도가 나온다. 용출봉으로 이어진 산길을 버리고 임도를 따라 닿은 금곡해변. 낮은 능선이 비밀의 해변인양 백사장을 둥글게 끌어안고 있었다. 파도에 실려 온 해양쓰레기나 미역 줄기조차 없는 깨끗한 모래, 아무도 없는 바다와 나만 마주하는 금모래의 마법. 멍하니 멈춰 있었다. 파도가 오갈 뿐인데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완강한 어깨의 사내가 와락 무너질 때 가만히 등을 쓰다듬는 심성 고운 바다가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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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면에서 지정한 ‘멍 때리기 좋은 곳’인 해안 너덜지대. 바다 풍경을 보며 한동안 머무르면,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엉킨 마음 풀어 주는 해안 걷기길
동백숲이 지독하게 사랑한 적 있다며 빨간 립스틱 꽃잎 자국 드문드문 흘려놓고, 금머리갯가길로 이끌었다. 숲 터널을 나오자 햇살이 쨍한 너덜 비탈이 나타난다. ‘멍 때리기 좋은 곳’ 안내판이 쉬었다 가라고 권한다. 
생일도는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좋은, 요즘 사람들의 번잡한 마음에 휴식을 주는 곳을 선정해 안내판을 세웠다. 이곳 외에도 구실잣밤나무숲과 용출리 갯돌밭이 ‘멍 때리기 좋은 곳’으로 뽑혔다.
간혹 마주치는 다랭이논(비탈에 만든 계단식 논) 흔적은 옛날 마을 흔적이다. 비탈을 개간해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금머리갯가길이다. 짙은 숲과 해안절경이 하나씩 번갈아 나온다. 도시인의 엉킨 실타래 같은 속을 안다는 듯 강약 조절을 하며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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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서암 갈림길을 지나 정상으로 이어진 시원한 능선길.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용출마을이 포근히 자리 잡고 있다.
노곤함이 찾아올 때쯤 나타나는 용출마을. 두 번째 ‘멍 때리기 좋은 곳’인 갯돌해변이 “골골골” 다정한 어조로 소리를 내고, 용이 나왔다는 용출리 이름 유래가 전하는 섬 도용량도가 거북이마냥 떠 있다. 실제로 섬 가운데에 구멍이 있어, 예부터 용이 승천한 굴로 여겨져 왔다.
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세 번째 ‘멍 때리기 좋은 곳’ 구실잣밤나무 숲. 키 큰 구실잣밤나무들이 어둑할 정도로 짙게 숲을 이루었다. 9만 ㎡에 이르는 숲은 6월이면 꽃이 피어 온통 그 향기로 아찔하게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막배를 타고 떠나는 길, 오후 6시의 햇살이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배가 일으킨 물보라를 타고 노니는 햇살이 황홀해 바라본 풍경 끝에 생일도가 있었다. 거친 굉음으로 고막을 때리는 엔진 소음과 머리칼을 헤집어 놓은 바람 속에서도 생일도가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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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출마을 갯돌해변에서 금머리갯가길이 끝난다. 용이 승천했다는 구멍이 있는 도용량도가 배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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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머리갯가길은 옛날 이곳 비탈을 개간해 마을 이루고 살던 주민들이 다니던 길을 되살린 해안 걷기길이다. 주된 생업인 전복과 다시마 양식 부표가 빽빽이 수면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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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과 담쟁이가 멋스럽게 세월의 무게를 받치고 있는 용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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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노을과 은은한 가로등이 운치를 더하는 금곡항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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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섬 발전지원센터 정태균 섬전문위원
주 4일 섬 출장 다니는 섬 전문가
전남 섬 발전지원센터 정태균 섬전문위원
“주민은 살고 싶고, 국민은 가고 싶고, 미래세대에 지속가능한 섬으로 가꾸는 일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2018년에 발족한 섬 발전지원센터는 섬 주민이 주도하는 섬 가꾸기 정책 추진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전남도청 해양수산국 산하 기관이다. 섬 전문가인 정태균(45세)씨는 이곳에서 전남의 무수한 섬을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중고교 역사교사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연구부장, 문화체육관광부 관광두레사업 여수PD 등을 거쳐 섬 전문위원이 되었다. 그는 “섬이 곧 배움의 학교이며, 섬 주민이 선생님”이란 신념으로 섬을 유랑하며 기록하고 재발견하는 조사 작업을 해온 섬 전문가다.
일주일에 4일을 섬으로 출장 다니며 매월 12개 섬을 다닐 정도로 피부로 바닷바람을 맞닥뜨리고 있으며, 월간산 ‘섬&산 100’ 취재에도 매달 동행하며 섬의 명소를 소개해 주고 있다. 그는 섬으로만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 누리려 할 권리와 이동, 의료, 교육 취약성을 조금씩 개선해 가는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섬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아직 가보지 못한 섬이 많아 가장 좋아하는 섬 하나를 꼽긴 어렵다”며 “퇴직 후에도 섬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기에 늘 싱글벙글인 정태균 섬전문위원이다.
섬 가이드
걷기길과 산행을 적절히 섞어야 생일도를 알차게 볼 수 있다. BAC 인증지점은 백운산 정상이다. 백운산은 시원한 전망과 짙은 숲이 조화로워 산행이 지루할 틈이 없다. 선착장 부근의 생영초교 뒤편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올라 표지석에서 인증을 하고 일출공원에서 임도를 따라 금곡해수욕장으로 하산한다. 해변에서 금머리갯가길을 따라 용출마을까지 걷는 것으로 섬 트레킹을 마칠 수 있다. 생영초교에서 정상까지 2.3km, 정상에서 해변까지 3.7km, 금곡해변에서 용출마을까지 4km이다. 금곡해변에서 용출 구간은 일주도로가 없는 구간이다. 총 10km이며 4~5시간 정도 걸린다. 하나로마트와 편의점이 있으며 주유소는 없다.
교통
당목항에서는 금일도행과 생일도행의 두 가지 배편이 있으므로 생일도행을 확인하고 타야 한다. 생일도 서성항까지 25분 걸리며 편도 요금은 3,300원. 차량은 1만4,300원. 문의 생일도 콜버스 010-6602-3716/010-6601-2255. 생일항 매표소 010-9367-3117. 생일면사무소 061-550-6672. 
배편(하절기 4월 1일~9월 30일 기준. 25분 소요. 신분증 필수) 
당목항(서성행)   생일도 서성항(당목행)
 06:30                     07:00
 08:00                     08:40
 09:40                     10:40
 11:20                     12:00
 13:00                     13:40
 14:20                     15:00
 15:40                     16:40
 17:30                     18:00
 18:00                     18:30
숙식(지역번호 061)
금곡마을펜션(552-0399)은 전남도와 완도군에서 출자해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세운 숙소다. 시설이 깔끔하며 1층의 대형식당을 이용할 수 있어 전복과 횟감 같은 현지 음식을 조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전화로 예약 가능하다. 추장민박건어물(010-8649-2369)은 금곡해변에 있어 백운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식사를 하기 제격이다. 백반(8,000원)은 즉석에서 지은 밥과 8가지 신선한 제철나물과 반찬이 나온다. 미리 예약해야 하며 식당 간판이 없으므로 주소(생일로1217)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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