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수평선을 그리는 개구쟁이 영감들

  •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입력 2020.06.22 10:18

    [해외 등반l라고라이 비아 페라타]
    프랑코 존코&임덕용의 라고라이산군 체르미스 스카이라인 리지 코스 시범등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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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코 존코가 정상 아래 횡단 구간을 지나고 있다. 그의 뒤로 부드러운 라고라이산군이 드러난다.
    ‘하늘에 그려진 수평선 l’orizzonte disegnato contro il cielo’은 하늘과 산, 호수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대중적인 등반 코스다. 와이어로 안전장치가 설치된 ‘비아 페라타via ferrata’ 코스이며 등반 난이도가 쉬워 가족용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특히 해발 2,000m대 고지대에 펼쳐진 3개의 호수와 야생의 파노라마가 아름답다. 
    이 코스는 ‘체르미스 스카이라인Cermis Skyline’이라고도 불리는데 체르미스 스키장 뒷산의 능선을 따르기 때문이다. 편의성이 좋아 해발 2,230m의 파이온 델 체르미스Paion del Cermis까지 스키 리프트를 타고 편안하게 올라 등반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하부 주차장부터 걸어온다면 4시간 이상 걸리며, 왕복에는 거의 7시간이 걸린다. 체르미스는 이탈리아에서도 무척 유명한 스키장으로 명품 등산화 브랜드인 라스포르티바 본사도 이곳에 있다.
    ‘하늘에 그려진 수평선’은 돌로미테 맞은편의 라고라이Lagorai산군에 속한다. 라고라이산군은 돌로미테의 괴기스런 거벽들보다 규모는 작지만 부러운 파노라마를 자랑한다. 라고라이에 속한 ‘발 디 피엠메 Val di Fiemme’는 부드러운 능선을 가지고 있으며, 정상부는 바위로 되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가벼운 하이킹이나 트레킹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상에서 건너편의 광활한 돌로미테를 바라보며 끝없이 펼쳐진 암봉을 조망하는 반전을 맛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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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선을 오르는 존코 뒤로 5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편 산 아래 깊숙한 곳에 라고라이호수의 끝자락이 살짝 보인다.
    라스포르티바 고문 디자이너를 30년 이상 맡아온 필자는 아침 일찍 신제품 디자인 미팅을 마치고 산악스키화 기술 고문이자 산악스키 장인으로 손꼽히는 프랑코 존코Franco Gonco 부부와 회사 앞 직영매장에서 만났다. 부인인 라우라는 회사 근처의 친정에 가고, 개구쟁이 영감들은 회사 바로 앞 체르미스 스키장 주차장에서 개인 장비 점검을 했다.
    오늘 등반은 일종의 시범등반이다. ‘호수 위의 비아 페라타’ 루트 디자인을 기획할 때부터, 루트 컨설팅을 해온 프랑코 존코는 필자에게 등반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산에 그냥 가는 것도 항상 좋은데 이렇게 대접받는 산행도 가끔 할 만하다. 주차장에는 이미 체르미스 스키장 마케팅 실장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진도 부탁한다며 스키 리프트권을 주었다. 등반 후 정상 산장에서 꼭 식사(무료)를 하고 가라고 당부한다.
    곤돌라를 두 번 갈아탄 데 이어, 스키 리프트를 다시 타고 30분간 오른 정상에는 셀프 서비스 식당을 겸한 산장이 있었다. 여기서 약간 경사진 넓은 길 ‘L03/353’을 따라 내려가면 봄바셀 호수Bombasel Lakes(2,268m)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두 번째 안내판이 있는 시작 지점을 넘어 포르첼라 델 마카코Forcella del Macaco(2,278m)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L03/353’ 등산로를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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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장 꼭대기에서 왼쪽 눈 쌓인 길을 따라 걸어가면 등반 시작점이다.
    가족 등반객을 위한 최고의 루트!
    여기서 봄바셀 베르티고Bombasel Vertigo 표지판을 따라 조금만 가면 비아 페라타 등반 시작점에 도착한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유일한 등산로라 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 해발 2,535m에서 바위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등반은 매우 수월하며, 올라갈수록 발아래로 펼쳐지는 호수들은 멋진 그림을 보여 준다. 
    직벽 구간에는 사다리가 있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리지를 오를수록 풍경이 넓어지며 또 다른 호수가 드러난다. 곧이어 카스텔 디 봄바셀Castel di Bombasel의 거대한 암벽 덩어리 정상으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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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이 페라타 시작점 바로 아래의 작은 호수. 늪지대라 우기와 눈이 녹는 시기는 크고 작은 호수가 많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가운데 삼각형 봉우리가 비아 페라타 루트이다. 왼편으로 올라 오른편으로 하산한다.
    끝이 없는 구릉과 여성적인 곡선을 이룬 계곡 사이사이를 메운 초록과 에메랄드빛 호수가 있는 작은 파노라마는 아름다운 감동을 준다. 5월의 중순이지만 고산 응달진 부분의 녹지 않은 작은 설원들은 시원함을 선물한다. 유럽에서 보기 힘든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특징이며, 부분적으로 화강암 위에 핀 마른 이끼와 버섯들 틈 사이의 이름 모를 야생화가 파들거리며 우리를 반긴다. 프랑코와 정상에서 간식을 먹으며 ‘다음 산행은 어디로 할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해본다. 
    그는 ‘이 루트가 어떠냐’고 물었다. 필자는 “가족 단위 등반객을 위한 최고의 루트”라며 축하해 주었다. 하산은 ‘비아 페라타 고속도로Via Ferrata Highway’로 내려간다. 쉬운 하산 루트이지만 암릉 길이라 와이어 로프가 고정되어 있고 경사가 급한 곳에는 쇠로 만든 발디딤이 있고 쇠사다리도 있다. 헬멧과 페라타 장비를 착용하고 하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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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한 프랑코 존코가 급경사에서 장난을 치며 발을 들어 보인다.
    이 하산 루트는 등반하기 쉬워 비아 페라타 1급으로 분류되지만, 일방통행이라 역으로 절대 못 올라가게 표지판이 되어 있다. 맞은편 사람을 만날 경우 사고 위험이 있어 역으로 등반을 금지하고 있다.
    푸른 잔디가 두꺼운 카펫마냥 푹신하다. 늪처럼 물이 고인 곳은 눈이 녹거나 비가 많이 내리면 작은 호수로 변한다고 한다. 걸어 내려가기가 아까울 정도 푹신했다. 헬멧과 거추장스러운 안전 벨트와 장비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올라가는 루트와 내려가는 루트가 하트 모양으로 잘 보이는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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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직벽에서 독특한 포즈로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 영감 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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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내려다본 부드러운 라고라이산군과 호수들.
    허공 위를 건너는 상상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기 정상과 전위봉 사이에는 왜 루트를 만들지 않았지? 두 개의 화강암 정상을 연결하면 더 재미있겠는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뭔가 2%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봉우리를 잇는 와이어 로프가 있으면 완벽할 것 같았다. 티롤리안 브리지tyrolean bridge(로프를 타고 공중을 횡단하는 것)를 만드는 것이다. 
    프랑코는 “멋진 아이디어”라며 다시 올라가서 티롤리안 브리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자고 제안했다. 어렵지 않게 다시 올라가 거리를 가늠했다. 정상과 전위봉에 다리를 설치한다면 최소 10~12m의 티롤리안 브리지를 만들고 연결 능선에 와이어로프를 설치하고, 티롤리안 브리지를 우회하는 사람을 위해 와이어 로프를 설치하면 될 거라 정하고 하산했다.
    리프트 정상에 도착해 산장에서 파노라마 경치를 즐기며 공짜로 먹는 점심과 맥주는 평소보다 더 맛있고 시원했다. 맥주잔에 얼핏 무언가 비쳤다. 개구쟁이 영감 두 명과 티롤리안 브리지에서 신명나게 소리 지르며 다리를 건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맥주 거품 사이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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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십자가 아래에서 찍는 인증사진은 항상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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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 후 스키장 정상 산장에서의 점심. 존코의 아내 라우라가 친정집 방문을 마치고 함께했다.
    ‘하늘 위에 그려진 수평선’ 정보
    이탈리아 북부 고속도로 A22번을 타고 ‘트렌토Trento’에서 나와 카발레제Cavalese로 산길을 따라 30분을 올라간다. 체르미스Cermis는 스키장이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이유는 겨울철 크로스 컨트리 스키장으로 사용되며 세계 선수권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리프트를 타고 스키장 정상에 도착하면 비아 페라타 출발 지점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비아 페라타 등반으로 정상까지 약 40분 소요되며 하산에 30분 걸린다. 다시 비아 페라타 출발점에서 스키장 정상까지 내려가는 데 30분이 걸린다. 휴식 시간을 포함해도 3시간 정도면 가벼운 트레킹과 비아 페라타 등반을 마칠 수 있다. 등반 난이도는 상행 2급, 하산은 1급이다. 5급이 가장 어려운 등급이므로, 가장 쉬운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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