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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감동산행기] 백양산과 금정산에서 엮은 산행 추억

이옥출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신중앙로
  • 입력 2020.05.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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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파리봉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암벽 앞에서.
금정산 파리봉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암벽 앞에서.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가고 있다. 삼라만상의 우주질서는 변함이 없다. 그동안 코로나19 감염 걱정 때문에 집에 갇히다시피 해서 지냈다. 그야말로 창살 없는 교도소에서 지낸 셈이었다. 비록 집이지만 갇혀 지내 보니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토록 바라는 행복은 늘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일상의 자잘한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 누리는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그런 일상 행복을 찾아보기로 했다. 4인 가족 외벌이 가정의 서민으로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역시 산행이다.

요즘은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돼 있다. 그래서 형제자매든 친구든 이웃이든 취미생활 따위를 같이 하자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나도 혼자만의 즐거움이랄까 행복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전업주부로서 혼자 즐기는 데는 산행이 최고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해양도시 부산에는 크고 작은 산이 아주 많다. 부산에 있는 여러 명산은 거의 다 둘러보았다. 산은 아무리 자주 다녀도 지루하지 않다. 이번에는 부산시민이 가장 즐겨 찾는 백양산(641m)과 금정산(801m)을 엮어 산행해 보기로 했다. 백양산과 금정산은 일 년에 한두 번은 반드시 찾는 나의 휴식처이자 심신 치유 장소다.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출발해 백양산 자락을 거쳐 금정산 남문을 지나 금정구 산성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했다. 오래 전에 두세 번 둘러본 코스여서 낯설지 않고 산행 시간은 네 시간 안팎으로 걸린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기에 무섭지 않고 친근한 길이다. 또한 길도 험악하지 않고 경사도 완만해서 별다른 부담이 없다.

산행 날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과 물, 갖가지 간식을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혼자만의 산행이라도 스마트폰에 음악이 있고 검색 가능한 갖가지 정보가 있어서 쓸쓸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역시 스마트폰은 만능이다.

집을 나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출발했다. 도시철도를 먼저 타고 나중엔 시내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하니 9시가 살짝 지나 있었다. 계절이 좋아서인지 등산객이 북적거렸다. 나처럼 혼자 산행하는 사람도 많았고 친구나 산행 동아리끼리 온 단체 등산객들도 여럿 보였다.

햇살은 비단결처럼 포근했고 수정처럼 맑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진했다. 산비둘기 두어 마리가 반겨 주는 듯 활개를 쳤다. 하루살이 떼가 눈앞을 스쳤지만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산행객들의 표정은 마치 소풍 가는 어린이마냥 들떠 있었다. 조잘거리며 걷는 사람 사이에 섞여 무심히 걸었다.

평소에 걷기운동을 자주 하고 틈틈이 산행을 해서 그런지 발걸음이 무겁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산길은 워낙 많은 사람이 밟아서 반질반질 빛이 나고 있었다. 산길을 걸으니 코로나19로 받은 스트레스는 서서히 풀렸고 피톤치드를 듬뿍 맡아서 기분이 무척 상큼했다. 산 푸르고 물 맑은 금수강산 대한민국에 사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처음엔 시원해서 걷기 좋았는데 조금 지나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곧 이어 등줄기에도 땀이 나서 속옷이 젖는 느낌이었다. 목이 말라 입안을 물로 적시고 다시 사뿐사뿐 걸었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으로서 걷는 즐거움은 사뭇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걸으니 심신을 괴롭히는 이런저런 번민 따위는 없어지는 듯했다.

백양산 자락을 지나 금정산에 접어들어 남문을 통과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가 먼저 이를 알아채곤 꼬르륵 소리를 내며 위장에 음식을 넣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알맞은 자리를 잡아 배낭에서 음식을 꺼내 먹었다. 산행도 일종의 운동이자 노동이어서 그런지 밥맛이 아주 좋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 한 시간가량 쉬다가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숲 속에서 부는 바람은 산행으로 지친 온몸을 시원하게 식혀 주며 활기를 띠게 해 주었다. 금정산 파리봉에 당도하니 바위가 절경이었다. 기기묘묘한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위 주변에서 추억의 사진을 찍고 산의 정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파리봉에서 잠시 쉬었다가 산성마을 쪽으로 하산했다. 내리막은 경사가 좀 급해서 조심해야 했다. 자칫하다간 넘어져 굴러 떨어지면 큰 부상을 당할 것 같았다. 극도로 조심해서 산성마을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나는 산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기에 간단하게 커피 한 잔 하고 온천동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성마을에서 온천동 도시철도 역까지는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길이 구불구불하고 거리마저 멀어서 걷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구절양장 같은 산성 길은 마을버스 덕분에 쉽게 내려왔다.

도시철도에 오르니 온몸에 피로가 엄습했다. 집까지는 한 시간가량 걸리므로 스마트폰 알람을 맞춰 두고는 졸음에 빠졌다. 불편한 도시철도 좌석이지만 온몸이 피곤해서 꿀맛 같은 잠에 빠져 들었다. 잠 든 나를 태운 도시철도는 칙칙폭폭 종착역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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