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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낭만야영] 샤스타데이지 꽃밭에서의 합법적인 하룻밤!

글·사진 민미정 백패커
  • 입력 2020.07.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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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정의 낭만야영ㅣ하이원 리조트 하늘길 챌린지]
하이원 리조트 주최 ‘하늘길 챌린지’ 참여, 일반인 위한 합법적 백패킹 프로그램

백운산 하이원 탑에서 본 두위봉 산줄기. 작품 같은 해넘이가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아, 탄성을 질렀다.
백운산 하이원 탑에서 본 두위봉 산줄기. 작품 같은 해넘이가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아, 탄성을 질렀다.

지난겨울 설경에 놀란 적 있다. 백두대간 두위봉에서 화절령 지나 만항재로 향하던 중 아름다운 설경에 넋을 잃었다. 결국 만항재까지 가기를 포기한 채 하룻밤 야영을 했었다. 울창한 나무 위에 슈가파우더를 뿌린 듯 아름다웠던 겨울왕국은 하이원 리조트의 ‘고원숲길’이었다. 하얀 눈은 사라지고, 겨우내 숨어 있던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길 위를 채우고 있었다.

백패킹 친구 김혜연의 권유로 참여한 ‘하늘길 챌린지’는 하이원 리조트에서 기획한 이벤트 백패킹이다. 좀더 완성도 높은 트레킹 코스를 만들 수 있도록 20명 정도의 백패커들을 초대해 1박2일의 백패킹을 한 후 소감과 의견을 전하는 것이 이벤트의 목적이다. 일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한걸음 물러나 고원숲길을 걸으며 오롯이 자연을 즐기고, 힐링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동참했다.

서울에서 올 때 차를 태워 준 임철원·김지인씨 부부와 김혜연과 나는 자연스레 한 팀이 되었다. 하이원 리조트에 들어서자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열 체크부터 문진표 작성까지 꼼꼼한 절차가 진행되었다. 트레일 입구에 도착해 배낭을 꾸리는 동안 이미 몇 대의 크고 작은 차량에서 내린 당일 등산객들이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등산 어플을 통해 코스를 체크하고, 낙오자 없이 각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한여름에도 낙엽송 빽빽한 고원숲길로 들어서면 시원한 그늘과 함께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여름에도 낙엽송 빽빽한 고원숲길로 들어서면 시원한 그늘과 함께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강렬한 태양열에 온몸이 익어가는 듯했으나, 빛을 머금은 부드러운 연녹색 숲이 감싸주며 눈의 피로를 풀어 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새소리에 맞춰 홀린 듯 걸음을 늦췄다. 약수 옆에 핀 이끼마저 도란도란 속삭이는 듯했다. 숲이 자아내는 조용한 소리에 오르막길 발걸음이 가뿐했다.

고원숲길은 중간 중간 ‘둘레길’과 교차한다. 오르내림이 심한 고원숲길과 달리 둘레길은 완만한 트레일로 리조트를 360° 둘러 산책할 수 있는 코스다. 이외에도 고원숲길의 반대쪽에는 ‘무릉도원길’이 있어 얼레지, 원추리, 샤스타데이지 등 야생화를 실컷 볼 수 있다. 자작나무와 주목도 숲을 이뤄 운치 있다.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한 슬로프 위에 텐트를 쳤다. 호텔 부럽지 않은 최고의 별장이었다.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한 슬로프 위에 텐트를 쳤다. 호텔 부럽지 않은 최고의 별장이었다.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가 심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 숲을 벗어나자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쏟아져 들어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 눈물이 핑 도는가 싶더니, 시원한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반다나를 두르지 않았다면 땀을 식혀 주는 바람에 속아 얼굴이 빨갛게 익을 뻔했다. 길 위에 서 있는 솟대만이 뜨거운 줄 모르고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자 도롱이 연못이다. 도롱이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으로, 화절령 일대에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이 연못에 사는 도롱뇽에게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고요한 연못 위에는 여름 하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하늘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넘실댔다. 도롱뇽을 깨우지 않았기를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면 만발한 샤스타데이지가 산들바람에 나부끼며 하이커를 반겨준다.
우거진 숲길을 벗어나면 만발한 샤스타데이지가 산들바람에 나부끼며 하이커를 반겨준다.

더위에 불덩이 되었으나 꽃밭에 더위 잊어

도롱이 연못부터 하이원 탑까지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지난겨울엔 눈이 쌓여 걷기 힘들었지만, 이번엔 숨을 참고 단번에 올라섰다. 다행히 우리 팀은 산행 스타일이나 속도가 서로 잘 맞아 무리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땀범벅에 불덩이가 된 몸을 그늘에서 식혔다. 허기가 밀려왔지만, 고원숲길의 끝은 백운산 마천봉이었기에 왕복 3.6㎞를 더 걸어야 했다. 가볍게 스틱을 챙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배낭 없이 걷는 길이라 가뿐했다. 마천봉에 도착하자 점심을 먹는 등산객으로 시끌벅적했다. 음식 냄새를 맡은 파리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시끄럽게 들끓고 있어 부디 등산객들이 식사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떠나기 바라며 정상석만 찍고 지나쳤다.

지정된 코스는 밸리탑을 지나 임도를 따라 걷도록 안내했다. 뙤약볕에 임도라니! 머리 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곤돌라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 늘어지게 핀 하얀 샤스타데이지를 보자 왜 이 길을 택했는지 이해가 갔다. 우리는 더위도 잊은 채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걸어 내려갔다. 산행을 마치고 전망 좋은 시원한 회전식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만끽했다.

겨울엔 스키장으로 사용되는 슬로프 위에 온갖 꽃이 만발했다.
겨울엔 스키장으로 사용되는 슬로프 위에 온갖 꽃이 만발했다.

오후 6시 당일 관광객이 마지막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고 나서야 각자 원하는 곳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비 예보가 있어 대부분 데크 위에 텐트를 쳤지만, 혜연이와 나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슬로프 가까이 내려가 텐트를 쳤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먼 길을 왕복해야 했지만, 멋진 텐트에서의 풍경을 생각하면 수고도 아니었다. 텐트에 앉아 문을 열자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른 새벽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빗소리가 잦아들고 텐트 밖으로 나오자 친구들과 하는 농담으로 사골곰탕 속에 빠진 듯 온통 안개로 가득했다. 화원 위로 떠오르는 멋진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안개 사이로 간간이 드러나는 갖가지 꽃들이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냈다.

아름다운 꽃길도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아름다운 꽃길도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즐거움이 배가된다.

곤돌라가 운행을 시작하기 전에 텐트를 철수하고, 하이원 탑에 모였다. 빗길을 걸어야 하는 특수성을 감안해 하이원 측에서 배낭을 목적지까지 운반해 주었다. 덕분에 가볍게 하산할 수 있었다.

슬로프 트레일을 따라 밸리허브, 슬로워 가든을 거쳐 마운틴 콘도로 복귀하는 길.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각 슬로프는 물론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에 넘실대는 꽃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흰수염고래의 등에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꽃물결을 타고 미끄러지듯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일행을 놓친 채 꼴찌가 되었다. 트레일을 다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슬로프를 따라 하얀 꽃들이 강물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천상의 화원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하늘길 챌린지를 마무리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속에 서면 꽃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속에 서면 꽃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하다.

일반 백패커 위한 백패킹 프로그램

하늘길 챌린지

1일차 고원숲길. 이동거리 9㎞, 최고점 1,425m, 고도차 700m, 소요시간 2시간 반.

2일차 슬로프 트레일. 이동거리 5.5㎞, 최고점 1,342m, 고도차 585m, 소요시간 2시간.

숙영지 하이원 탑, 밸리탑, 마운틴허브, 밸리허브, 마운틴베이스, 밸리 베이스 등 다양한 장소에서 교차 추진 예정.

 7월부터 일반 백패커 대상으로 진행 예정.

 타깃에 따라 장소만 대여 혹은 장비 대여 등 다양하게 진행 예정.

한 팀이 되어 1박2일 동안 함께 걸은 일행. 왼쪽부터 필자, 김지인, 김혜연, 임철원씨.
한 팀이 되어 1박2일 동안 함께 걸은 일행. 왼쪽부터 필자, 김지인, 김혜연, 임철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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