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웅의 세계 여행] “알프스 별 보러 가자!”

  • 글·사진 이일웅 여행가
    입력 2020.06.30 09:56

    [이일웅의 세계 여행ㅣ독일·오스트리아]
    독일 알프스 추크스피체(2,962m)·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노크스피츠(2,404m) 초보 촬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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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생애 첫 해외 산행이었던, 독일 추크스피체. 독일 알프스답게 산세가 화려하다.
    꿈결 같았던 지난 여행 이야기를 월간<山>에서 풀어놓고자 한다.
    2015년 네팔을 여행할 때 대지진을 겪었다. 결국 유럽으로 도망쳤다. 그리곤 내가 찍은 사진을 무작정 길거리에서 팔기 시작했다. 네팔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돈이나마 모금해 보자고 결심했고, 유럽의 시장 이곳저곳에 자릿세를 내고 사진엽서를 팔았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그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까무잡잡한 동양인의 아마추어티를 벗지 못한 사진에 큰 관심을 줄 리 없었다. 비싼 자릿세와 사진 인쇄비를 메우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차, 언어와 문화가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 팔 바에야 SNS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팔자는 마음으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300만 원 넘는 돈을 기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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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크스피츠를 오르는 유럽의 트레커들.
    사진이 팔리자 풍경 사진에 더 큰 욕심이 생겼다. 풍경과 마주하면서 깨달은 것은 가장 아름다운 때인 골든아워를 프레임 안에 담기 위해서는 노숙이 불가피하다는 것. 당시 나는 등산화와 등산복을 전부 네팔 현지 사람들에게 주고 온 터라 가진 거라곤 배낭과 노스페이스 모자가 전부였다.
    노숙을 위해 백패킹 장비를 사기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결국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20만 원을 빌려, 독일의 데카트론이라는 큰 쇼핑몰에서 ‘퀘차Quechua’라는 브랜드의 장비들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최소한의 백패킹 장비인 텐트, 침낭, 매트리스, 버너, 코펠, 식기류만을 구비했다. 복장은 면티셔츠와 면바지, 닥터마틴 워커를 신은 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알프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것.
    독일 알프스 최고봉 추크스피체Zugspitze(2,962m)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편히 올라가지만, 나는 이제 막 백패킹 장비도 마련했으니 걸어올라 가보기로 했다. 첫 백패킹이었다. 들머리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매다 오후가 돼서야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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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노크스피츠에서의 텐트 밖 풍경. 백패킹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아름다운 협곡이 나타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진을 몇 장 찍다 보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국립공원인데다가 텐트 친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아 캠핑은 무리라고 판단해 밤늦게 산장에 도착했다. 백인 중년 아저씨들로 가득 찬 산장에, 늦은 밤 까무잡잡한 동양인 한 명이 들어오니 이목이 집중됐다. 몇 초 동안 정적이 흐른 후 다시 각자 하던 일을 이어갔다.
    산장 아주머님께 식사를 주문했는데, 도통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던 중 한 아저씨가 내게 와서 영어도 독일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계속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내가 티베트 사람인줄 알았다며 본인의 티베트 생활기를 들려주었다.
    결국 그와 맥주까지 한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산에서 자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산행을 시작하는데, 산장에서 400m 떨어진 곳에 텐트 치고 야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떤 식으로 어떤 곳에 텐트를 쳐야 하는지 조금씩 감이 왔다.
    흙과 눈을 번갈아 밟으며 정상에 오른 후 아름다운 아이브제Eibsee 호수가 있는 곳으로 하산했다. 독일 알프스 추크스피체는 1박2일로 다녀오기에 아주 적당한 코스다. 올라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협곡을, 내려오는 길에는 더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다. 여러분께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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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정이 나올 것처럼 아름다웠던 독일 아이브제 호수.
    2시간 간격 알람 맞춰 밤하늘 담아
    추크스피체에서 하산한 뒤 가까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향했다. 인스부르크는 유명한 스키타운으로 알고 있다. 아름다운 산이 많다고 하여 2박3일로 산행을 떠났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노크스피츠Nockspitze(2,404m). 오후에 산행을 시작해서 해질녘 사이트를 구축했다.
    3만 원짜리 텐트지만 혼자 쓰기에 충분했다. 지금 와서야 좋은 텐트도 써보고 백패킹 경험이 쌓이니 텐트 무게, 전실 공간 등을 따지지만, 당시에는 모든 게 완벽했다. 고추장, 한인마트에서 공수한 참기름, 현지에서 산 참치캔 조합으로 저녁을 먹고, 내일 펼쳐질 풍경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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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크스피체 산행 중 만난 매력적인 협곡.
    강렬한 햇빛에 텐트 안이 몹시 더워 잠에서 깼다. 아침 식사를 하고 스케줄대로 유유자적 산행을 시작했다. 자연을 느긋하게 즐기며 걸었다. 아름다운 곳에선 누워서 음악도 듣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꿈결 같은 여행이자 산행이었다.
    노크스피츠 정상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니 곧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와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다. 멋쟁이 서양 누나들도 무리지어 올라오는 걸 보니, 아마 일몰에 맞춰 산행을 시작한 것 같다. 각자 텐트를 치고 해넘이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모여 조용히 지는 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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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추크스피체의 깨끗한 계곡.
    참 재미있게도, 28년간 매일 마주했던 똑같은 태양이지만, 오늘 내게 주는 의미는 너무나 달랐다. 이전에는 그냥 내게 비타민D를 주고, 어둠을 밝혀 주는 정도의 존재였다. 이제는 따뜻함, 아련함, 그리움, 경이로움, 아름다움 등 모든 걸 내포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다.
    해넘이가 끝나면 보통 텐트로 돌아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다 2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든다. 새벽에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하는 것은 ‘밤하늘 올려다보기’이다. 달이 밝지 않고,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비록 30만 원짜리 카메라지만, 내 눈으로 담을 수 없는 별을 나를 위해 담아 주니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날도 멋지게 별 사진을 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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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하던 별 사진을 노크스피츠 능선에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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