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발언대] 23년 전 개척 루트 폐쇄하고 재개척한 까닭은?

  • 글·사진 안종능
    입력 2020.06.26 11:51

    [산악인 발언대ㅣ설악산 장군봉 재개척]
    자연을 위해 루트 개척 시 치핑해선 안 돼, 볼트 개수도 최소한으로 해야

    이미지 크게보기
    장군봉 2피치 재개척을 한 문성욱, 안종능, 이명희, 최석문(왼쪽부터).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등반하면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자연을 사랑하기에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야영 시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와 배설물도 환경이 오염되기에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등반 활동을 지속하는 이상 기본적으로 손상되는 자연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암벽등반을 하기 위해 바위에 설치하는 볼트 역시 자연 훼손의 일부이지만 등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것 중 하나이다. 다만 등반 루트를 개척할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이 볼트 사용을 최소화하고 회수가 가능한 확보물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라인으로 등반선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적인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라인을 개척하는 것이다.
    암벽등반 시 발생되는 자연 훼손 중 하나는 개척자 또는 등반자의 지나친 욕심으로 행해지는 치핑Chipping이다. 치핑은 망치 또는 드릴로 바위에 흠집을 내어 인공 홀드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인공으로 만든 치핑 홀드는 자연 훼손은 물론 등반윤리에도 어긋나는 행위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설악산 장군봉 루트 개념도
    필자는 23년 전 설악산 장군봉에 ‘나의 소중한 사랑 10월 1일생’과 ‘장군 97’ 2개의 루트를 개척했다. 당시에는 자연의 소중함이나 등반 윤리에 대한 생각이 부족해 치핑해서 루트를 개척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잘못된 부분을 조금이라도 바로 잡고자 지난 5월 치핑이 가장 많은 2피치의 볼트를 모두 회수해 등반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미 훼손된 바위를 복원할 수는 없지만 치핑으로 만든 루트를 수많은 클라이머들이 등반하는 것은 또 다른 치핑을 유발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더 이상 발생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미 만들어진 루트의 볼트를 뽑아 등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역시 등반을 사랑하는 많은 클라이머들에게 큰 잘못을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지난 6월 17일 평소 함께 등반하는 자일 파트너인 문성욱, 최석문, 이명희와 함께 다시 설악산 장군봉을 찾아 볼트가 회수된 ‘나의 소중한 사랑 10월 1일생’ 2피치를 치핑이 없는 새로운 등반 라인으로 재개척했다.
    새로 개척된 2피치는 볼트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크랙 라인을 이용해 등반이 가능하도록 했다. 치핑이 없는 기존 구간의 볼트를 공유해 등반 라인을 잡았다. 새롭게 개척된 2피치는 기존 루트와 동일한 5.12a 난이도이며 캠 0.4호~4호까지 각각 1개씩 필요하다.
    이미 만들어진 치핑의 흔적을 영원히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등반 루트를 만드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며, 앞으로 이러한 루트가 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존 루트의 볼트를 회수하고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