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이야기] 미 대리공사 조지 포크의 ‘한글 漢城全圖’

  •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입력 2020.07.23 09:45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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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경 조지 포크가 수집한 <한글 漢城全圖>‘From the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Library,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 Libraries’
    1882년(고종 19) 5월 22일, 제물포 화도진花島鎭에서 조선과 미국 간에 수호통상조약Korea-US Treaty of Peace, Amity, Commerce and Navigation이 체결되자, 이듬해 5월 초대 미국 공사로 루시어스 푸트Lucius H. Foote가 부임했다. 이에 조선 정부도 7월에 민영익閔泳翊을 전권대신으로 한 11인의 보빙사報聘使를 미국에 파견했다. 보빙사 일행이 일본을 거쳐 워싱턴에 도착하자, 미 정부는 보빙사의 현지 수행원으로 해군 대위 시어도어 메이슨Theodore B. Mason과 소위 조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layton Foulk를 배정했다.
    포크는 1856년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카운티Lancaster County의 작은 마을 마리에타Marietta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인 1872년 애나폴리스Annapolis의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876년 졸업 후에는 아시아 분함대 앨럿Alert호에 승선해 대서양을 건너 지중해, 인도양, 일본으로 이어지는 항해를 했다. 이듬해 1877년에 소위로 임관되어 6년간 아시아 분함대에서 복무했는데, 그는 총명하고 부지런해 다른 장교나 상급자들로부터 항상 좋은 평판을 받았다.
    포크는 군복무 동안 일본어와 중국어를 독학으로 익혀 보빙사 일행을 두 달간 수행할 수 있었다. 보빙사 일행이 귀국할 즈음 민영익이 미 국무부에 포크의 조선주재를 타진하자, 국무부는 해군본부와 협의해 미 공사관 부설 해군주재 무관이라는 전례 없는 직책을 부여해 이를 허가했다. 포크는 보빙사 일행과 함께 유럽을 거쳐 1884년 5월 군함 트렌턴USS Trenton호로 조선에 입국했다.
    1885년 미국 공사 루시어스 푸트가 사임하자 포크가 대리공사가 되어 1887년까지 복무했다. 조선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조선 각지와 사찰 등을 두루 방문했고, 조선 문화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위스콘신-밀워키대학 미국 지리학회 도서관AGSL에 포크가 조선에서 찍은 사진과 수집해 사용하던 지도 등이 소장되어 있고, 그의 문서Foulk Papers는 미의회도서관과 뉴욕공립도서관, 버클리대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가 수집한 지도로는 채색 〈대동여지도〉와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輿地圖〉, 〈한글 한성전도漢城全圖〉 등이다. 채색 〈대동여지도〉는 전 세계 2본밖에 없는 희귀본으로, 국내 소장본은 2016년에 20억 원(약 160만 USD)에 경매된 바 있다. 〈여지도〉는 조선8도 지도 외에 조선전도ㆍ중국ㆍ유구 등 12면으로 구성된 지도첩으로, 조선8도 지도에는 지명에 일일이 영문으로 토를 달았고, 지역 정보까지 기입한 것으로 보아 포크가 조선지도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한글 한성전도〉는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를 모사해 지명을 한글로 표기한 지도로, 크기는 가로 42cm, 세로 32cm이다. 지도 뒷면 중앙부에는 가로 22cm, 세로 16cm 크기의 약간 두꺼운 자주색 겉표지가 붙어 있고, 표지에 맞게 지도를 접어 넣은 뒤 표지를 닫게 되면 가로 11cm, 세로 16cm 크기의 휴대하기 간편한 지도가 된다. 오른쪽으로 넘기게 되어 있는 겉표지에는 ‘한성전도 제2漢城全圖 第二’라는 지도제목이 붙어 있다.
    경조오부도는 성 밖 십리城底十里까지를 포함한 한양 전역을 나타낸 지도로, ‘경조京兆’는 조선 정부가 있는 수도를 뜻하고, ‘오부五部’는 한성부를 구성하는 행정구역을 뜻한다. 지도에 그려진 범위는 북쪽은 삼각산三角山(북한산), 남쪽은 한강漢江, 동쪽은 중랑천 밖 구마장내旧馬場內(광진구 일대), 서쪽은 귀농곶歸農串(은평구 수색)까지이다. 목판본 경조오부도와는 달리 한강은 청색으로 채색하고, 모든 도로는 붉은색 선을 덧그려 하천선과 구분했다.
    미 지리학회도서관의 지도 자료에 따르면 〈한글 한성전도〉의 발행일은 1883~1887년으로 되어 있고, 일부 자료에는 이 지도를 포크가 모사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1890년부터 1892년까지 조선 주재 프랑스 공사관에서 근무했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이 펴낸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에 따르면, 자료번호 2206번 〈漢城全圖〉는 “40×32cm 1장, 조잡하게 인쇄되었으며, 명칭은 필사되었다. 두꺼운 종이에 18절판으로 접혀 있다”라는 해제가 있고, 지도는 ‘경조오부도’이다. 이 〈漢城全圖〉의 제목이나 체재, 내용 등이 포크의 〈한글 한성전도〉와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포크가 한양의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漢城全圖〉의 발행소에 의뢰했거나, 친분 있는 정부 요인에게 부탁해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포크가 모사한 것이 아니라는 정황은 또 있다. 첫 번째 지도의 내용이 모두 붓으로 정교하게 모사되었고, 두 번째 지도 내에 펜글씨로 쓴 듯한 ‘Söul’, ‘Puk han fortress’, ‘Maphō’ 등의 영문이 기입되어 있고, 세 번째 사천沙川을 ‘모래내’, 탄항灘項을 ‘여울목’, 옹암동瓮岩洞을 ‘독바위골’, 안암천安岩川을 ‘안감내’, 수유현水踰峴을 ‘무너미’, 전관평箭串坪을 ‘살고지벌’, 두모포豆毛浦를 ‘두무개’, 상림桑林을 ‘잠실’ 등 토착지명으로 표기된 점이다. 이러한 사항을 참작해 지도의 발행연도는 포크가 미국 공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1885년경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명 가운데 검암첨黔岩站을 ‘검바위’, 와요현瓦窰峴을 ‘와슈현’, 연서일迎曙馹을 ‘연셔’로 표기했고, 영도교永渡橋의 표기는 영미교永尾橋가 아닌데도 ‘영미다리’로 표기했으며, 도성 북쪽의 ‘미타사彌陀寺’와 중랑천의 옛 지명인 ‘속계涑溪’가 누락되었다. 포크가 소장했던 〈한글 한성전도〉는 한글 표기 ‘경조오부도’로서 유일본일 뿐 아니라, 19세기 말에 사용되었던 서울의 토착지명을 한글로 표기한 점이 사료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포크는 1884년 조선에 들어와 1885~1886년, 1886~1887년 두 차례 미국 대리공사를 지냈고, 31세 때인 1887년 청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한 미국 정부에 의해 사임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의 동지사학원同志社學院 강사로 취직한 뒤 조선 주재 시절부터 편지 왕래를 하던 나가사키長崎 출신의 무라세 가네村瀬かね와 결혼했다. 그 뒤 건강이 악화되어 37세 때인 1893년 휴양을 위해 아내와 함께 하코네箱根에 머물던 중 산행을 하다가 심부전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교토의 동지사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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