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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감동산행기] 어머니의 품 같았던 영남알프스

장광현 성남시 분당구 야탑로
  • 입력 2020.07.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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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완만한 영남알프스 능선.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완만한 영남알프스 능선.

영남알프스 산행을 위해 언양을 전초기지 삼아 일박했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떠는 친구들을 따라 단잠에서 깼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간단히 요기한 후 모텔을 나섰다. 바깥공기는 서늘하다.

오늘은 배내고개를 출발해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지나 통도사로 하산할 요량이다. 새벽 4시경 탄 택시, 첫 손님이라며 우리를 반기는 기사분과 언양, 산행, 철도 등 여러 얘기를 나눴다. 고속철이 생기면서 옛 울산역은 태화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단다. 새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가보다. 능동산과 배내봉 줄기가 만나는 고갯마루, 20여 분 만에 생태통로 아래 짧은 배내터널을 지나 배내고개에 도착했다.

어둠이 깃든 배내봉 능선이 푸른빛 하늘과 또렷한 경계를 긋고 있다. 하늘 높이 뜬 하현달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 마냥 작고 외로워 보인다. 해발 680m 배내고개에서 배내봉까지 1.4km 구간은 긴 침목 계단이 놓인 오르막이다. 앞장을 선 H의 헤드램프와 달빛에 의지해 발을 옮긴다. 좌우 숲에서 부지런한 산새들이 새벽을 맞이하고 멀리 능선 아래서 뻐꾸기 소리도 들려온다.

가지런히 놓인 계단길이 지루해질 무렵 해발 966m 배내봉에 닿았다. 맞은편 멀리 서쪽 천황산 위 구름이 아침노을을 드리우며 화답한다. 능동산 너머 멀리 지워질 듯 옅은 음영의 운문산이 신비롭다. 가지산은 12폭 병풍처럼 양쪽으로 능선을 길게 뻗고 있다. 배내봉에서 간월산까지는 2.6km 거리다. 하늘을 덮은 나무터널을 지나는데 이슬이 마르지 않은 잎과 가지가 팔을 스친다. 새하얀 꽃잎에 샛노란 수술을 품은 찔레꽃이 진한 내음을 뿜으며 인사한다.

간월산 못미처 등짐을 진 채로 쉬었다는 해발 900m 선짐재 곧 ‘선짐이 질등’이 나온다. 정상 바로 아래 300여 m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오르면 해발 1,069m 간월산 표지석이 둥그스름하고 넉넉한 등을 내보인다. 간월산 정상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완만한 800여 m 길은 너른 능선이 펼치는 장쾌한 풍경을 선사한다. 험한 바위로 덮인 정상 부근과는 달리 길고 완만한 능선은 어머니 품처럼 편하고 아늑하다.

말 등에 얹힌 안장처럼 편안해 보이는 영남알프스의 관문 해발 900m 간월재, 옛적 이곳을 배내골 주민, 울산 소금장수, 언양 소장수 장꾼 등이 줄지어 넘었다고 한다. 등억리와 배내골을 연결하는 포장도로가 간월재를 넘어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간월재에서 1.6km 거리 신불산으로 가는 길은 나무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까마득해 보인다. 너른 초원처럼 그늘이 없는 길은 내려쬐는 햇볕이 따갑다. 길옆에 바짝 붙어 서서 산객에게 아양을 떠는 야생화가 있는가 하면, 남의 시선을 의식 않고 등산로 멀찍이서 소박한 꽃을 무던히 피워 내는 꽃나무도 있다.

해발 1,159m 신불산 정상이다. 온전한 아침시간으로 접어들어서인지 산객들이 간간이 맞은편에서 스쳐 지나거나 뒤에서 추월해 간다. 신불산에는 정상석과 더불어 돌을 쌓아 만든 지름 3~4m의 원뿔형 탑과 삼남면 주민들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꿈과 희망’ 성취를 기원하며 세운 빗돌이 놓여 있다.

신불재에서 영축산까지는 2.2km로 완만한 평원 위에 너른 침목이 놓인 계단길, 흙길, 사토질 속살을 드러낸 길 등 다채롭고 정상 부근은 큰 암반으로 덮인 바윗길이다. 신불재 부근 우측 능선 꽃을 떨군 빛바랜 억새밭이 그 너머 푸른 숲과 대조를 이루며 천상의 정원인양 일렁인다. 억새 군락지는 끝이 없을 듯 이어지고 능선을 돌고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다채로운 풍광을 펼쳐 보인다. 간간이 뒤를 돌아보면 시원스러운 능선길 우측으로 가파른 바위 절벽과 내리 뻗은 암릉이 장관이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치른 단조성을 지나서 해발 1,081m 영축산 정상에 올라섰다. 바위로 덮인 정상은 그늘이 없지만 바람이 불어 땀과 열기를 식혀 주고 일망무제 조망은 마음마저 서늘하게 해 준다. 영축산 정상에서 여유롭게 머물다가 한 시간 거리 1.7km 떨어진 함박등으로 향했다. 영축산 정상에서 200여 m 거리인 함박등으로 가는 길 능선 바로 아래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였다. 왼쪽으로 천애 절벽을 끼고 걷는 길은 짜릿하다. 해발 1,052m 함박등은 다른 봉우리에 비해 까다로워 보이지만 산정에 서 있는 표지석은 작고 단순하여 겸손해 보인다.

여기서부터 하산길을 따라 통도사에 닿았다. 암자 20개를 거느린 불보佛寶 통도사 경내는 남녀노소 방문객들로 번잡하다. 통도사 일주문을 나서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좌우로 늘어선 1 km가량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가 나온다. 노송들은 제멋대로의 모양새로 하늘로 뻗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 조화롭다. 세상 사람들은 일주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우리 일행은 영남알프스 품을 거닐고 통도의 자비에 빠졌다가 일주문을 나서서 사바세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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