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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납량특집ㅣ산중괴담열전] "벽소령대피소 직원숙소 1호실에서 자면..."

글 서현우 기자 사진 C영상미디어
  • 입력 2020.08.0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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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어둠 속에서 “어디 가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사진 A씨 제공
당시 이 어둠 속에서 “어디 가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사진 A씨 제공

야간 등산 중 기괴한 울음소리나 느닷없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어떤 물체를 보았다거나, 말소리를 들었다고도 한다.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즐기기 좋은 이야깃거리들이다. 산꾼들이 겪은 괴이한 현상들과 사건들을 한데 모아봤다.

지리산 대피소의 옥동자

지리산 대피소에서 근무하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유독 가위에 자주 눌린다고 한다. 지리산 대피소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김 모 직원은 “이 중에서도 특히 벽소령대피소에서 가위에 자주 눌린다. 리모델링 전 직원숙소 1호실이 가위에 가장 잘 눌리던 장소였다. 그래서 가끔 외지 손님을 직원 숙소에서 재워야 할 때에도 1호실은 피해서 안내했었다. 내 경우 가위에 눌리면 꼭 옥동자가 나타나 나를 잡으러 왔다”고 말했다.

왜 이런 걸까? 김 모 직원은 “옛날 벽소령대피소 직원숙소는 정화조 바로 위에 있었다. 또 다른 대피소들도 전반적으로 안개가 많이 끼는 습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아무래도 편히 잠들기 어려운데다가 근무 스트레스가 더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가끔 신기가 있는 등산객이 지나갈 때면 옛날에 지리산에서 군인이 많이 죽어 귀신이 많다고 설명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양폭산장 1층 첫 번째 방

국내 여성 최연소 7대륙 최고봉 완등자인 산악인 김영미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04년 가을, 양폭산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일요일 저녁이라 다른 투숙객은 없었다. 1층 첫 번째 방으로 안내받았다. 문을 잠그고 잠들려던 찰나, 밖에서 크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에 달린 작은 반투명 창문으로 사람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고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확 문을 열어젖히니 어둠만 가득했다.

문을 닫으니 다시 문을 흔드는 소리가 났다. 잠들만 하면 문이 덜그럭거리는 통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김씨의 비책은 아예 문을 열고 자는 것이었다. 귀신은 사람 해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들어오세요”라며, 문을 열고 문틈에 스틱을 꽂아 닫히지 않도록 고정했다. 그러자 더 이상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산장지기가 “혹시 이상한 것 못 봤냐”고 물어왔다. 그는 “사망사고가 나면 시신을 첫 번째 방에 안치하는데, 그래서인지 그 방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유독 많다”며 장난삼아 일부러 그녀를 그 방에 재웠다고 했다. 김씨는 “당시엔 귀신보다 산악부 선배가 더 무서웠기에, 그까짓 귀신 들어올 테면 오라는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북알프스의 일본어 합창

본지 사진기자인 주민욱씨는 7년 전 일행 2명과 함께 일본 북알프스를 찾았다. 야리가다케(3,180m) 리지등반에 나섰는데 운 나쁘게 악천후를 만났고, 동행한 70대 재일교포 산꾼이 탈진해 하는 수 없이 이틀 연속으로 예정에 없던 비박을 했다.

두 번째 비박을 하던 날 밤, 자려고 눕자 5~6명 정도의 일본 어린이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왔다. 빙하 골짜기인데다가 가장 가까운 산장도 10시간 이상 거리에 있어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노랫소리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주씨는 무섭기보다는 신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밤을 보낸 주씨는 탈진한 산꾼을 보살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목표로 했던 산장에 도착, 구조될 수 있었다. 당시 출동했던 일본 구조대는 이들의 사망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어디 가세요?”

A씨는 2005년 10월 31일, 1박2일 일정으로 홀로 설악산을 찾았다. 심야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 대청봉을 향해 출발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별빛이 없어 헤드랜턴이 없으면 자기 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A씨는 도로를 따라 걷는 도중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랜턴으로 비춰 보니 ‘설악산지구 무명용사 위렵탑’이 보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는데 뒤에서 인기척 없이 나타난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간다. A씨는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걷는지 궁금해 하다가 ‘혹시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에 섞여 “어디 가세요?”라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뒤를 돌아봤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어둠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또 얼마쯤 걷자 “어디 가세요?”라는 소리가 또렷이 두 번, 세 번째로 들려왔다. 귀신에 홀렸단 생각에 정신없이 걷다 보니 새벽 6시쯤 귀면암을 지나자 태양이 떠올랐다. 어둠이 가시자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 네이버 블로거 ‘불휘’ 제공

비명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고라니. 사진 B씨 제공
비명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고라니. 사진 B씨 제공

제주도에서 들은 끔찍했던 비명소리

제주도를 자전거 여행 중이던 B씨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고자 대포주상절리에서 저녁 늦게 출발, 중문을 거쳐 1100도로에 진입했다. 밤이 되자 흔한 가로등 하나 없어 1m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빨리 영실 입구로 가서 쉬고자 운행을 서두르는 찰나, 갑자기 오른쪽 숲에서 “끼아악!”하는 여성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망히 소리 난 부근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긴 등산로도, 가로등도 하나 없는 컴컴한 숲. 끝도 없는 공포감과 최악의 생각이 버무려져 필시 괴한에 어떤 여자가 습격당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B씨는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릴까싶어 레더맨 칼을 뽑아 쥐고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넘어지고 구르며 가시덤불에 살이 찢기면서도 “제 말 들려요? 대답해 봐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그때 다시 한 번 “끼아악!”하는 비명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그는 쏜살같이 현장으로 달려가 소리의 근원에 불빛을 비췄다.

그러자 고라니 한 마리가 ‘너 뭐하냐?’는 표정으로 B씨를 빤히 쳐다봤다고 한다. - 네이버 카페 ‘캠핑퍼스트’ 회원 김시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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