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탐사] 김종직 발자취 가득한 지리산 동부洞府를 탐사하다!

  • 글 김윤세 인산가 회장
    입력 2020.07.29 09:47

    우리 역사문화의 寶庫, 국민이 보고 즐기게 길 열어야… 지리산 역사문화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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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미개방 구간 답사 중 만난 커다란 바위 문.
    서기 1472년 음력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추석을 전후해 당시 함양군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은 지리산 동편 산기슭에서 출발해 지장사~고열암을 거쳐 쑥밭재~영랑대를 지나 마침내 천왕봉을 등정한 뒤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4박5일간의 두류산 유람을 마치고 그 유명한 ‘유두류록遊頭流錄’이란 기행문을 세상에 전한다.
    ‘유두류록’에 따르면 지리산 동편의 하봉, 즉 영랑대 아래 쑥밭재 일대 동부洞府는 도연명 선생의 ‘도화원기圖畫院記’, 이태백의 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읊은 별천지, 고운 최치원 선생, 서산대사 등 수많은 도인 학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경하며 찾고자 애쓴 한국의 이상향-청학동靑鶴洞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지리산국립공원 제1의 명승으로 칭할 만한 곳이다.
    ‘유두류록’에 등장하는 지형과 절터, 바위, 계곡 등의 특징을 더듬어 김종직 선생 일행의 등산 행로를 찾아내 좌표를 확인하고 길을 손질하며 거리와 소요 시간을 측정하는 등 현장 조사를 위해 10명으로 꾸려진 지리산 역사문화조사단은 지난 7월 4일 오전 8시, 간간이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적조암을 출발했다.
    이번 조사단은, ‘유두류록’을 수백 번 반복해서 읽고 김종직 선생 등산 행로를 150여 차례 등반한 대전 제일고 한문 교사 이영규 단장을 위시해 지리산권 마실협동조합 조용섭 이사장,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 산청분소 소속 지리산 산악구조대장으로 불리는 민병태 선생, 동同 경남사무소 함양분소 이상운 직원, 함양 서복회 문호성 회장, 강재두 부회장, 동 회의 고문인 필자와 우성숙 인산가 연수원장 부부, 정세윤 주간함양 논설위원 부부 등 10인으로 구성되었다.
    적조암을 출발해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지리산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한 1967년 이후 산문山門을 닫은 이래 지금까지 개방하지 않고 있는 비법정 탐방로로서 울창한 숲과 우거진 산죽山竹 사이로 난 완만한 경사의 옛길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1.5km가량 오르자 길 복판에 우뚝 서서 산행객을 맞는 20여 m 높이에 세 아름이 넘는 거대한 배나무를 만났다. 탐방객 일행은 수백 년 풍상을 겪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배나무 주위를 돌며 그 신령스러운 자태를 감상한 뒤 길을 재촉해 잠시 뒤 널찍한 터에 이르렀다.
    이영규 단장은 “당시 이곳은 말을 묶어 두던 마구간으로, 김종직 일행이 이곳에 당도해 말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고 올라갔다는 기록이 ‘유두류록’에 보인다”고 설명했다. 10분가량 걸어서 지장사 터를 확인한 뒤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20여 분 더 올라 능선길로 접어들 무렵 전망이 탁 트인 환희대에 이르러 숨을 돌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또다시 이동해 절벽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선열암 터를 둘러보고, 장독처럼 생겨서 ‘독바위’로 불리고 홀로 도를 깨우쳐 승천한 여성의 상징이라 하여 ‘독녀 바위’로도 일컫는 기이한 바위굴을 지났다. 지친 걸음으로 한동안 걸으니 전망이 탁 트인 반석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의론대議論臺’라는 설명이다.
    일행들은 의론대로부터 수십 미터 거리에 있는 고열암 터로 이동해 그곳에서 각자 지니고 온 김밥, 도시락, 과일, 음료 등을 꺼내 다 같이 둘러앉아서 행복한 점심을 먹으며 환담했다. 식사 후 민병태 대장이 준비해 온 커피로 디저트까지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일행은 산 능선길이 아닌 횡단 길을 따라 와불산 바위군(미타봉) 아래 위치한 ‘소림선방’이라 불리는 굴에 당도했다. 너른 반석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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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동부 답사에 참여한 지리산 역사문화 조사단. 오른쪽 끝이 필자.
    다시 희미한 옛길을 따라 동부 샘터에 다다르고, 걸음을 옮겨 1시간가량 걸으니 산길 양쪽에 큰 바위 두 개가 마치 문처럼 좌우로 서 있는 석문石門에 도달하니 선명한 새김 글씨로 ‘方丈門방장문’이라 쓰여 있다.
    방장문을 지나 약 1km 남짓 걸으니 심산 속임에도 불구하고 수량이 적지 않은 계곡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청이당 터라는 사실을 이영규 단장이 설명해 준다. 아침에 출발해 9시간 넘게 산길을 걸은 터여서 그곳에서 음료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일행은 아직 가야 할 길이 적지 않게 남았다는 이야기에 다시 배낭을 메고 갈 길을 재촉해 길을 떠났다.
    쑥밭재를 거쳐 능선길을 따라 한 시간 이상 걸었을 때, 종일 내리고 있는 안개비에 젖은 바위를 무심코 딛는 순간 9kg 남짓 중량이 나가는 배낭을 진 필자의 몸은 균형을 잃고 바위에 이마를 부딪치고 두세 바퀴 굴러서 한 길이 넘는 길 밑으로 떨어졌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손수건으로 눌러도 지혈止血이 되지 않았다. 곁에서 돕는 조용섭 이사장께 부탁해 배낭 속의 가루 죽염을 꺼내 상처에 듬뿍 뿌린 후 눌러서 지혈한 뒤, 조 이사장의 젖지 않은 수건으로 이마를 동여매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물이 불어난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너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오후 8시, 추성리 어름터에 도착했다. 이날, 선원禪院의 최고지도자를 뜻하는 ‘방장’이라 부르는 산의 너른 품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소회所懷를 ‘방장산’이라는 제목의 시로 읊어본다.
    품 안이 너르고 깊은 데다/늘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그대/시작도 끝도 없는 영겁의 시간을/천고의 침묵으로 앉아/선정禪定에 든 지 언제였던가/푸른 소나무도, 높다란 바위도/부사의不思議 선방에서 삼매三昧에 든다/세상 시비是非 소리는/청풍淸風에 날려 보내고/ 흐르는 물로 귀를 씻는다/그래서 방장은 언제나 여여如如하다
    역사 문화적으로 수많은 유적과 이야기를 간직한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동편의 동부 명승지 14.7km 거리를 12시간 넘게 산행하면서 줄곧 떠오르는 생각은, ‘모든 국민이 이곳을 찾아 산행하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심신의 휴양을 도모하는 동시에, 나아가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는 세계인들까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지리산의 자연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곳곳에 산재한 우리 역사문화의 많은 유적과 그에 따른 이야기, 별천지에 들어선 것 같은 아름답고 기이한 절경을 자랑하는 명승지가 즐비한 역사문화의 보물창고인 지리산 동부의 등산로를 개방해 ‘국민의 공원’이라는 국립공원 이름에 걸맞게 누구나 보고 즐기고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위정자의 백성을 위한 정치신념의 으뜸은 맹자孟子가 주장한 대로 ‘백성과 함께 즐긴다與民同樂’는 것임을 가벼이 여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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