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4년을 별러 오른 인수봉 의대길

  • 한효희 서울시 중구 황학동
    입력 2020.07.28 10:02

    이미지 크게보기
    의대길 크럭스인 2피치 크랙.
    4년 넘게 대학 산악부 활동을 하며 인수봉 의대길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인수봉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루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만큼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루트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인연은 멀기만 했다.
    기회가 찾아온 건 백수생활 2년차에 접어든 지난 7월 9일. 상반기 구직 시장에서 열 번의 면접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신 후 프로 백수의 삶을 살고 있던 차에 의대길을 가자는 후배의 말에 흔쾌히 동의하고 새벽녘 집을 나섰다. 학교 근처에서 모인 우리는 곧바로 도선사로 향했다. 산행 출발 전 가볍게 몸을 풀고 화장실도 다녀왔다. 순조로운 시작이다.
    이번 산행에는 초보자가 없어 어프로치가 빠르다. 깔딱고개까지 쉴 새 없이 올랐다. 벌써 몸에서 열이 후끈후끈 난다. 깔딱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바로 인수봉 하단으로 향했다. 대슬랩을 넘어 취나드B 시작지점으로 가보니 인수봉이 조용하다. 평일이라 한 팀 외에는 바위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날씨는 여름답지 않게 서늘하고 바람이 분다. 등반하기 딱 좋은 날씨다.
    등반 장비를 착용한 뒤 후배가 가져온 ‘썅챵(발음 주의)’이라는 중국 소시지를 몇 점 집어 먹고 등반을 시작했다. 일단 처음에는 의대길이 시작되는 오아시스로 가기 위해 취나드B 1피치를 올랐다. 취나드B 1피치는 오아시스행 고속도로라 주말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지만 오늘은 한산했다. 평소에 많이 온 길이라 부담 없이 등반을 이어나갔다.
    의대길은 옛날 서울대 의대 산악부 선배들이 개척한 길로 총 5피치로 구성되어 있다. 2피치의 5.10a 크랙이 크럭스다. 등반 루트도 깔끔하고 하강도 용이해 인수봉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 중 하나다. 1피치는 무난한 슬랩과 크랙이 이어진다. 약간 까다로운 슬랩 동작이 하나 있지만 대체로 손에 잡히는 게 많다. 관건은 2피치다. 5.10a 난이도의 2피치는 크랙이 펑퍼짐하고 발을 쓰기 애매하다. 선등자인 재학생 주장이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크랙을 뜯는다. 밑에서 볼 땐 그렇게 어렵나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바위에 붙어보니 절로 욕이 나왔다. 그래도 딱 한 번 텐션을 받고 자유등반에 성공했다. 밸런스가 약간 애매한 감이 있지만 요령만 알면 다음에는 쉽게 등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번째 피치는 A0 난이도의 인공 등반 구간으로 요령이 없고 팔다리가 짧다면 약간 버거울 수도 있다. 퀵드로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몸을 약간 틀어 반동을 준 뒤, 반동을 이용해 잽싸게 한 발을 볼트 위로 올리고 몸을 바위에 붙여 점점 일어서면서 다음 퀵드로를 잡으면 된다. 요령은 알지만 생각대로 몸이 안 움직인다. 그렇게 볼트를 하나하나 잡으며 올라가다보면 3피치도 끝이 난다. 4피치와 5피치는 5.8과 5.6 슬랩이다. 의대길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4피치 시작지점에서 두 볼트 라인 중 왼쪽이 의대길인 줄 알고 붙었다가 식겁했다. 분명 5.8 슬랩이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 헤매다가 결국 오른쪽 볼트 라인으로 길을 틀었다. 알고 보니 왼쪽의 볼트 길은 비원길 4피치로 5.11b의 극악무도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슬랩이었다.
    구멍 난 암벽화 때문에 미끄러지며 슬랩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의대길 종점인 귀바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등반이 빨리 끝났다. 마지막 등반자가 도착하자마자 오아시스로 하강을 시작했다. 60m 로프로 두 번 하강하면 다시 오아시스로 내려온다. 오아시스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취나드B 출발점으로 또 한 번 하강한 뒤 등반이 완전히 끝났다. 하강 후 아쉬움이 남아 짬뽕길과 거봉길을 하드프리로 오르고 하산했다. 인수봉은 등반을 마칠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 등반이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독 인수봉에 올 때만큼은 긴장이 되고 조심스럽다. 부디 다들 오래오래 무사히 등반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