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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북한산 12 名峯ㅣ르포<1>] 다리도 가슴도 떨리는 짜릿한 암릉산행의 맛!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이신영 기자
  • 입력 2020.09.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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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의상봉 르포
원효봉 산행 후 의상능선 역주행 9.5km 원점회귀

원효봉에서 바라본 염초봉과 노적봉. 가운데 백운대는 운해에 잠겨 신비스러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염초봉과 노적봉. 가운데 백운대는 운해에 잠겨 신비스러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하늘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지난 8월, 여느 해보다 긴 장마에 여러 산악회나 등산모임 채팅방에는 연신 ‘명일 산행은 취소되었습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약간의 비는 감수할 각오도 했지만 비가 예보되면 국립공원공단에서 일제히 모든 등산로를 폐쇄하는 바람에 무색해졌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던 차, 하늘은 딱 하루의 시간을 허락했다.

급하게 동행을 모아 북한산으로 뛰어든다. 간신히 얻은 산행 기회였기에 한껏 북한산을 누릴 요량으로 코스를 잡았다. 아늑한 산길을 따르다 거친 암릉도 탈 수 있도록 색깔이 다른 봉우리들을 섞었다. 원효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의상봉을 오르는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원점회귀 산행이다. 의상능선을 거꾸로 내려오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무덥고 습해 체력 소모도 심하고, 이번 장마는 언제 또 비가 올지 예측불허였기에 비교적 산행이 수월한 역주행을 택했다.

산행 들머리는 북한산성 입구 효자원. 건장한 청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걸음을 같이해 준 이는 윤용만씨(@running_nomad)와 한의사 장현석씨, 스튜어드 손영호씨다. 이들 모두 직업 특성상 마침 산행 당일인 금요일이 휴일이었기에 급한 부름에도 기꺼이 배낭을 메고 집결해 주었다. 장씨의 부친은 대구등산학교 교무부장을 지낸 장명익씨로, 지금도 명절이면 온 가족과 함께 팔공산을 오른다고 한다. 손씨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웃도어 마니아로, 어느 날 SNS에서 ‘젊은산악인들의 모임’의 활동을 보고서는 산행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의상능선.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의상능선.

이제 효자동 마을길로 뛰어든다. 복잡한 골목으로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바로 길을 잃어버렸다. 널찍한 길이 당연히 등산로로 연결될 것이라 착각한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스마트폰의 GPS로 노선을 수정, 북한산둘레길 내시묘역길과 원효봉 등산로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올라선다. 이정표에는 원효봉까지 1.6km라 적혀 있다. 원효봉으로 오르는 숲길은 한적하고 싱그럽다. 가끔 장마로 인해 등산로 위로 쓰러진 나무나 넘쳐흐른 계곡물이 굴려 넘어뜨린 돌들이 있지만 큰 장애물이 되진 않았다.

계곡을 따라 차츰차츰 오르자 이내 서암문西暗門이다. 북한산성 서쪽의 암문으로 성 안의 시체가 모두 여기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해서 시구문屍軀門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취재진이 서암문을 통과하고 있다.
취재진이 서암문을 통과하고 있다.

“오늘 날씨 정말 덥고 습하네요. 우리가 시체가 될 판인데요.”

한증막에 들어온 것 같은 날씨 탓에 벌써부터 지친 농담이 절로 나온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넉넉하게 챙겼다고 생각한 식수도 벌써 한 통씩 동이 났다. 원효대사가 왜 해골물을 마셨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끊임없이 갈증이 밀려온다. 잘 다져진 돌계단이라 어렵진 않지만 정상까지 계속되는 오르막 일변도에 조금씩 숨이 가빠진다.

원효대사가 수도한 토굴이 자리한 원효암을 지나쳐 원효대에 오른다. 나무와 수풀에 막혀 있던 염초봉이 뿌연 운무에 잠긴 채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껏 흘린 땀을 보상해 주고도 남는 경치다. 원효봉에 오르면 더 장엄한 경관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잰걸음으로 마저 남은 오르막을 해치운다.

원효봉 정상에 올라선다. 염초봉부터 백운대, 만경대와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손영호씨는 “역대 북한산 산행 중에 오늘 이곳에서 본 백운대가 제일 이쁘다”며 감탄했다.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경치를 즐긴다. 바람결에 느닷없이 고양이 울음소리가 실려 온다. 최근 몇 년간 원효봉 정상을 점령하고 있는 산고양이들이다. 개체 수가 수십 마리에 달한다. 공단에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등산객들이 하나 둘 던져준 먹이들이 개체 수를 늘리고 있다고 한다.

원효봉 등산로는 돌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어 어려움이 없다.
원효봉 등산로는 돌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어 어려움이 없다.
원효봉 등산로 곳곳에는 은평구와 효자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바위들이 많다.
원효봉 등산로 곳곳에는 은평구와 효자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바위들이 많다.

암릉미 빼어난 용출·용혈·증취 

이제 북문으로 내려서서 대동사 입구를 지나 북한천을 따른다. 폭우로 불어난 계곡물은 큰 소리를 내며 흐른다. 원효봉 오르막에서 생각보다 많은 땀을 쏟았기에 북한동역사관 옆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추가로 보충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간혹 등산로 옆 암반을 따라 떨어지는 물에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연거푸 씻어내며 숲길을 따른다.

국령사, 법용사를 지나 중성문을 지난다. 용학사 갈림길에서 오른쪽 부황사 터로 걸음을 돌린다. 짙은 녹음이 드리운 골짜기는 비에 쓸려 내려온 낙엽과 돌덩이들로 가득 차 있다. 조심스럽게 디딜 자리를 골라 걷다 보면 부황사 터가 나온다. 부황사는 1717년 창건된 절로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현재는 터만 남았다.

부황사 터를 지나 서쪽으로 살짝 올라서면 울타리가 나온다. 왼쪽 증취봉 방향으로 길을 잇는다. 등산로 옆쪽으로 가지런히 쌓인 북한산성벽이 나타나며 곧이어 거대한 바위가 다가든다. 바위 끝에는 가파른 슬랩을 따라 철제 난간이 가설돼 있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백미인 의상능선에 이른 것이다.

부황사 터를 지나 의상능선으로 올라타면 가장 먼저 거대한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 한 그루가 반겨 준다.
부황사 터를 지나 의상능선으로 올라타면 가장 먼저 거대한 뿌리를 드러낸 소나무 한 그루가 반겨 준다.

잠시 바위에 기대서 숨도 돌리고 정기도 받은 뒤 본격적으로 의상능선을 탄다. 모처럼 장마로 움츠러든 몸을 암릉에서 활짝 편다. 서로 밀고 당겨 주며 거친 바위를 기다시피 헐떡거리며 오른다.

처음으로 나타나는 봉우리는 증취봉. 남쪽으로는 나월봉~나한봉의 능선이 힘차게 뻗어가고, 북쪽 북한천 너머로는 풍만한 원효봉부터 염초봉, 백운대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줄기가 너울거린다. 한동안 경치에 정신을 빼앗겨 있는데 문득 정상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구석구석 돌아보니 정상을 차지한 거대한 바위 동쪽 뒤편에서 감춰져 있는 정상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의상능선을 마저 잇는다. 연달아 솟아 있는 용혈봉, 용출봉의 웅장한 암릉미가 가슴을 떨리게 한다. 피사의 사탑처럼 당장이라도 서쪽으로 넘어질 것처럼 기울어진 바위의 모습이 아찔하다.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용혈봉에 오른다. 증취봉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기 때문에 원효봉이 더 푸근하게 다가온다. 정상 곳곳에 기암괴석이 많아 보는 재미, 앉는 재미,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배경을 채워 주는 북한산 지능선과 서울도심도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다.

불어난 북한천 계곡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 본다.
불어난 북한천 계곡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 본다.
증취봉 정상.
증취봉 정상.

용혈봉에서 용출봉으로 가기 위해 한 굽이 내려서자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라는 글자가 새겨진 직벽이 나타난다. 자명은 산자수명山紫水明, 해인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온 말로 아름다운 경치를 관조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명해인대 위에서는 응봉능선 너머 은평구 일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용출봉으로 오르는 길도 험하지만, 어려운 구간에는 철제계단과 와이어가 설치돼 있어 비교적 손쉽게 정상에 오른다.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린 소나무 군락이 반겨 주는 용출봉 정상에는 구급함과 통신중계장비들, 그리고 떠돌이 개 두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래를 굽어보니 국녕사 청동대불의 뒷모습이 얼핏 엿보인다. 일행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보니 절밥을 먹는 개들 같다고 추측했다.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을 지나 마지막 봉우리 의상봉으로 향한다. 가사당암문은 1711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할 때 만든 8개 암문 중 하나다. 의상봉 정상은 넓고 평평하며 그늘도 많아 쉴 곳이 많다. 남은 하산길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꼭 쉬어 가야 한다고 손짓하는 듯하다.

용혈봉 정상.
용혈봉 정상.

의상봉에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의 연속이다. 날이 좋은 주말이나 휴일이면 줄지어 사람이 붙어 있어 한참의 정체를 감내해야겠지만 다행히 평일이라 등산객이 거의 없다.

쭉쭉 다리를 뻗어 내려선다. 어쩔 수 없이 몇 번 뛰어내리니 무릎이 살짝 시큰해진다. 다행히 몇 번이고 거듭 열리는 시원한 전망이 무릎의 열기와 산행의 피로를 훔쳐 달아나 준다. 수많은 바위를 밟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다 보니 어느덧 숲 그늘이 고생했다고 토닥여 주듯 덮어오고, 곧이어 길이 끝난다.

용혈봉에서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이 장엄한 암릉미를 뽐내고 있다. 사진 뒤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용출봉이다.
용혈봉에서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능선이 장엄한 암릉미를 뽐내고 있다. 사진 뒤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용출봉이다.

교통

산행들머리인 북한산성 입구 효자원은 상시 운행 중인 704번, 34번 버스를 타고 효자동주민센터·효자파출소 정류장에서 내리면 지척이다. 두 노선 모두 3호선 구파발역과 3·6호선 연신내역을 지난다. 만약 3명 이상이 함께 산행한다면 연신내역이나 구파발역에서 택시를 타도 좋다. 택시비는 7,000원 내외로 나온다.

맛집(지역번호 02)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앞 상가단지에는 땀을 잔뜩 흘리고 하산한 등산객들에게 안성맞춤인 맛집들이 즐비하다. 두부요리 한정식집인 만석장(385-2093)은 한 먹방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돼 인기가 높으며, 북한산 손칼국수(388-4413)는 가성비 높은 칼국수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가야밀냉면해물칼국수(356-5546)의 시원한 밀면 한 그릇도 산행의 더위를 날려버리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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