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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경상도의 숨은 명산] 광평추파 천황산, 토박이 산꾼 ‘최애코스’로 오르다!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0.09.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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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고 조망 좋은 필봉 코스…‘영남알프스의 작은 요세미티’ 매바위도 지나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으로 올라서면 주변 전망이 시원하다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으로 올라서면 주변 전망이 시원하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마는 끝이 났다. 긴 장마는 전국을 물바다로 만들어 산꾼들의 발길마저 멈칫거리게 했다. 장마 덕(?)이랄까, 오랜 무더위는 느낄 겨를도 없이 어느덧 입추가 지났다. 그래도 여름의 뒤끝이라 계곡의 시원함이 아른거린다. 영남알프스의 천황산을 찾아 금강동천의 맑은 계류에 탁족이라도 즐기며 가는 여름의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천황산 하면 떠올리는 수식어가 있다. ‘광평추파廣平秋波’다. 광활한 사자평고원에 가을이면 하얀 꽃대를 세운 억새가 바람 따라 일렁이며 장관을 연출하는 풍경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산이 감추고 있는 비경도 그에 못잖아 여러 폭포를 품고 있는 금강동천과 옥류동천은 늘 산꾼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영남알프스의 중앙에 자리한 천황산은 특히 조망이 일품이라 영남알프스 전체는 물론 주변의 산도 함께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그래서 사시사철 찾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 보니 등산로도 그만큼 다양한 편이다.

많은 등산로 중 사람의 발길이 적어 한적하고, 조망도 뛰어나 토박이 산꾼들이 즐겨 찾는 코스를 따라 천황산을 오른다. 표충사 공용주차장에서 출발해 매바위마을~필봉(665m)~필봉 삼거리(감밭산 갈림길)~도래재 갈림길~상투봉(1,107m)~천황산 정상~묘지~한계암~금강폭포~금강동천~표충사~표충사 공용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약 12.5km에 이르는 원점회귀 코스로, 표충사 매표소를 거치지 않는 산길이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상투봉 이후엔 키를 넘는 산죽밭이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상투봉 이후엔 키를 넘는 산죽밭이다

표충사 집단시설지구의 공용주차장에서 서왕교를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틀어 시전천을 오른쪽에 끼고 마을길을 따라간다. 정면 골짜기 뒤로 재약산과 문수봉, 관음봉, 표충사 쪽으로 뻗어 내리는 왼쪽 산릉에 붓끝처럼 뾰족한 필봉이 보인다. 시전 마을회관(경로당)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오르면 매바위마을로 연결된다. ‘그림같은 집’ 펜션 주차장을 왼쪽에 두고 꺾어 들면 이정표(천황산 5.5㎞, 도래재삼거리 3.2㎞, 필봉 1.3㎞)가 필봉으로 오르는 산길을 안내한다.

민가 사이의 골목길을 빠져나와 곧장 산으로 접어든다. 산비탈을 가파르게 오르는 숲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사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필봉-3’이라 적힌 119구조목을 만난다. 출입문으로 추측되는 좌우 돌탑(돌무더기)과 그 옆 숲속에 집터로 보이는 돌담이 둘러쳐진 공간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천하제일의 명당明堂 터라 누구든 묏자리로 쓰지 못하도록 표충사에서 막아 놓은 것이란다.

잠시 돌아나가면 너덜겅이다. 너덜길을 가로질러 다시 경사가 가파른 숲길로 오른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산길 옆의 집채만 한 바위는 필봉의 아래 부분이다. 한동안 힘겹게 올라서서 왼쪽 암릉으로 약간 이동해 필봉 정수리에 선다. 아리랑 등산클럽에서 세운 ‘필봉 665m’라 새긴 조그만 표석이 산객을 반긴다. 필봉은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이다. 그 모습은 각자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표충사에서 바라보면 제일 또렷하다.

천황산 금강동천의 계곡미는 국내 여느 계곡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빼어남을 자랑한다.
천황산 금강동천의 계곡미는 국내 여느 계곡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빼어남을 자랑한다.

필봉에 올라서면 시원한 전망을 만나볼 수 있다. 북동쪽 천황산을 위시해 시계 방향으로 재약산, 문수봉, 관음봉, 건너편의 향로산, 쌍봉, 단장천 골짜기 멀리 만어산, 금오산, 취경산, 천지봉, 그 뒤로 종남산, 덕대산 등등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들이 파도처럼 너울거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감밭산, 가까이는 매바위가 보인다. 이게 조망의 전부가 아니다. 표충사와 산내 암자가 숲속에 아늑하고, 표충사를 기점으로 좌우에 각각 금강동천과 옥류동천이 협곡을 이룬다. 밀양 쪽으로 산골짜기를 헤집고 흘러가는 시전천, 단장천 주변은 지붕을 맞댄 민초들의 삶터들이 펼쳐진다.

되돌아서서 천황산으로 향하면 한눈에 들어오는 매바위의 풍광이 멋지다. 하늘을 나는 매가 아니면 감히 근접하기 어렵다는 이 바위의 위세는 ‘영남알프스의 작은 요세미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병풍을 펼친 듯한 매바위의 모습은 산 아래에서 보면 흡사 매가 날개를 펼친 것 같아 마을 이름까지도 ‘매바위마을’이다. 매바위에는 오래전 실제로 많은 매가 집을 짓고 서식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길은 완만하게 올려친다. 초록의 숲길에는 원추리며 비비추, 까치수염 등 야생화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필봉 삼거리(911.1m)에 닿는다. 여기서 갈라진 능선이 감밭산(575.7m)을 지나 삼거마을로 내닫는다. 천황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천황산과 재약산이 가까이 보이는 전망바위에 오른다. 두 산이 맞댄 산등성이는 온순한 소의 잔등처럼 부드럽게 다가온다. 천황산과 재약산은 산행 내내 등산로 우측에 모습을 보이지만 쳐다보는 장소와 각도에 따라 그 형상은 천차만별이다.

개명 논쟁 중인 천황산에는 커다란 돌탑과 표석이 사방팔방 트인 정상을 지키고 있다.
개명 논쟁 중인 천황산에는 커다란 돌탑과 표석이 사방팔방 트인 정상을 지키고 있다.

산길은 안부로 살짝 내려섰다가 오른다. 헬기장을 지나면 도래재 갈림길. 도래재는 단장면과 산내면을 넘나드는 고개다. 직진해서 좁은 숲길로 차츰 고도를 높이다 보면 뛰어난 전망대에 이른다. 서쪽으로 구천산, 실혜산, 정각산 일대와 발아래로 남명리 전역은 물론 밀양~울산을 잇는 국도 24호선이 시원하게 뻗어간다. 머리를 들면 북동쪽 고헌산부터 가지산에서 잇는 운문지맥을 따라 운문산, 억산, 구만산은 물론, 백운산, 북암산, 멀리 청도의 화악산, 남산, 현풍의 비슬산까지 가깝고 먼 산들이 산산골골로 어우러져 온통 산 물결을 이룬다.

차츰 숲길을 벗어나 암릉을 만나고 곧 상투봉에 이른다. 남명리에서 보면 그 모습이 상투를 닮았다고 하는데,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키를 넘는 산죽을 헤치고 나와 훤하게 트인 능선 길로 천황산에 오른다. 커다란 돌탑과 표석이 사방팔방 트인 정상을 지키고 있다.

천황산 지명을 두고 밀양과 울산광역시 간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밀양 측은 ‘천황산 지명은 일제의 잔재이므로 재악산載岳山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산을 두고 시군경계를 이루는 울산은 ‘18세기 말 지도에 천왕산으로 표기돼 있다’는 것을 근거로 ‘일제의 잔재와 관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충사 집단시설지구에 닿으면 표충사 쪽으로 뻗어 내리는 왼쪽 산릉에 붓끝처럼 뾰족한 필봉이 보인다
표충사 집단시설지구에 닿으면 표충사 쪽으로 뻗어 내리는 왼쪽 산릉에 붓끝처럼 뾰족한 필봉이 보인다

아직 햇볕이 따갑다. 하산을 서둘러 이정표(한계암 3.0km, 표충사 4.8km)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려선다. 수목이 뒤덮은 계곡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봉분이 무너진 묘지를 뒤로하고 그늘이 좋은 늙은 소나무도 지난다. 너덜지대를 통과하면 상수리나무 숲길이다. 

잠시 후 나타나는 급경사에는 데크 계단이 설치돼 있다. 계단을 지나면 곧 한계암寒溪庵에 다다른다. 한계암은 표충사에 딸린 암자로 원래는 비비정飛飛亭이라는 정자였다. 인간문화재 제48호 단청장丹靑匠이었던 혜각慧覺스님이 중창했다.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3동 중 대웅전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전각으로 성인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법당 안 불상은 한국전쟁 때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철불을 혜각스님이 모셔온 것이라 한다.

하늘을 나는 매가 아니면 감히 근접하기 어렵다는 매바위
하늘을 나는 매가 아니면 감히 근접하기 어렵다는 매바위

한계암 주변은 여러 폭포가 있다. 암자 위의 폭포가 금강폭포다. 계곡에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면 암자 아래 좌우에 은유폭포와 일광폭포가 포말을 일으키며 물을 쏟아낸다. 오랜 장마 뒤라 수량도 풍부해 금강동천은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폭포 위에 수줍게 고개 내민 한계암이 폭포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굳이 탁족을 하지 않더라도 풍광과 물소리에 차가움이 몰려온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암반을 타고 흐르는 금강동천의 계곡미는 국내 여느 계곡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빼어남을 자랑한다.

계곡 가장자리 절벽 아래 설치된 데크 길로 계곡을 빠져나오면 종합등산 안내판이 서 있는 도로에 이른다.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표충사를 거쳐 집단시설지구의 공용주차장으로 돌아와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길잡이

표충사 공용주차장~매바위마을~필봉(649m)~필봉 삼거리(감밭산 갈림길)~도래재 갈림길~상투봉(1,107m)~천황산 정상~묘지~한계암~금강폭포~금강동천~표충사~표충사 공용주차장 <5시간 30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5)

밀양 버스터미널(1688-6007)에서 표충사행 버스를 타고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앞에서 내린다. 표충사행 시외버스(밀성여객·354-6107)는 1일 6회(08:00, 10:30, 11:40, 12:40, 14:40, 18:20), 농어촌버스(밀양교통·354-5392)는 1일 4회(06:35, 09:10, 13:10, 16:00) 운행한다. 또 밀양역 맞은편 허브모텔 앞에서 표충사까지 운행하는 아리랑버스(미리벌교통·355-8577)도 하루 3회(06:30, 14:00, 16:30) 운행한다.

숙식(지역번호 055)

밀양시내 중심가 어디든 깨끗한 숙소가 많다. 한 번쯤 들를 만한 맛집으로는 시립도서관에서 용두교 쪽으로 가다보면 나타나는 미락식당(354-2061)이 있다. 깔끔하고 푸짐한 밥집이다. 삼문동 영남루 인근의 손 반죽 칼국수와 밀면 전문점인 춘하추동밀면(354-0117)은 5,000원대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가격이 착한 식당이다. 재래시장인 밀양아리랑시장에 가면 보리밥, 돼지국밥, 향촌갈비, 칼국수, 잔치국수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표충사 아래 집단시설지구에도 숙소(펜션)와 식당이 있다.

볼거리 - 표충사

표충사는 통도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대(1275~1308)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이 주석하면서 불법을 크게 중흥해 1286년 충렬왕이 ‘동방제일선찰’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현대의 마지막 고승 효봉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열반한 곳이다. 국보 제75호 청동은입사향완을 비롯해 보물 2건 35점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경내 유물전시관과 표충서원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많은 유품이 보관돼 있으며, 절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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