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ㅣ<에베레스트 솔로>] 라인홀트 메스너의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기

  • 글 이용대 한국산악회 산악문화 연구소장. 코오롱 등산학교 명예교장.
    입력 2020.09.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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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 솔로> - 유리의 지평선.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김희상 옮김. 리리퍼블리셔. 2020년.
    이 책의 저자 라인홀트 메스너는 두 세기에 이르는 세계 등반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금세기 최고의 독보적인 등반가다. 그는 등반뿐만 아니라 50여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저술가다. 그에 관한 정보가 과포화상태인 것은 등반업적 못지않게 많은 책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만 20권 이상의  저서가 번역 소개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이번에 발간된 <에베레스트 솔로EVEREST SOLO>는 1980년 8월에 메스너가 두 번째 오른 세계 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등정의 흥미진진한 모험기록이다. 그는 극한의 등반과정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독특한 내용을 기록했다.
    그는 1978년 세계 최초로 피터 하벨러와 함께 에베레스트(8,848m)를 산소 없이 등정했다. 연이어 같은 해에 낭가파르바트를 무산소로 단독 등정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세계적인 기록을 남긴다.
    1980년 그가 무산소 단독등반으로 또 한 차례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때 이 산의 주인으로 자처해 온 자부심 강한 영국 사람들조차 “인간이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사람들이 이 산을 자기들의 것으로 여기는 것은 1953년에 자기들이 이 산을 세계 최초로 정복했기 때문이다.
    1970년 낭가파르바트에서 시작한 메스너의 14고봉 편력은 1986년 로체를 끝으로 16년 동안 8,000m 14봉 모두 산소 없이 등정하는 신화를 남긴다. 그는 무산소, 단독등반, 알파인 스타일, 해트트릭 등 독특한 등반방식을 창출해 내며 20세기 최고의 신화를 일구어낸다.
    그는 두 차례씩 오른 4개봉을 합쳐 8,000m ‘죽음의 지대’를 18차례나 체험한다. 이는 죽음의 지대를 가본 사람이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14봉 완등을 끝냈을 때 전 세계 언론들은 “몽상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꿈같은 일이 실현되었으며, 이는 인간한계를 뛰어넘는 위대한 승리” 라고 격찬했다. 이런 일은 인류가  달 착륙에 성공한 것에 버금가는 한계 도전의 역사로 평가하고 있다. 
    1980년 메스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등반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했던 동거녀 니나 홀귄은 베이스캠프로 귀환한 메스너의 동정에 대해 다음 같은 일기를 남겼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메스너의 걸음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고 텐트 안에 들어와 3일 동안 굶으며 잠만 잤다. 이따금 깨어날 때는 물만 마신다.’
    니나 홀귄은 한때 메스너의 동거녀로 두 사람 사이에 딸을 하나 두었다. 캐나다 국적의 그녀는 네팔의 텡포체로 가는 길에서 처음 메스너를 만났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후 메스너는 우쉬 데메터와 결혼했고 2009년 패션 디자이너 자비네 슈텔러와 재혼해 세 자녀를 둔다.
    무산소 단독등반. 가장 위대한 시도
    메스너가 처음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계획을 발표했을 때 유럽의 여론은 ‘공명심에 들떠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미치광이 짓’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의학자들은 ‘설사 등정에 성공해도 산소부족으로 뇌세포가 파괴되어 식물인간이 되거나 하산 중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도전의지를 꺾지 않은 그는 무산소 등정에 성공해 히말라야 등반에서 산소 맹신의 장벽을 허물었다.
    또한 그는 한걸음 더나가 1980년 산소용구 없이 단독으로 에베레스트를 한 번 더 오른다. 그가 이룩한 한계도전의 역사는 두 세기의 등산역사에 큰 획을 긋는 새로운 발상들이다. ‘무산소등반’ ‘단독등반’ ‘알파인 스타일등반’ ‘8000미터 3개봉 연속등반’ 등 독특한 등반형식을 창출해 낸다. 이런 등반들은 금세기 최고의 등반가가 아니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산에서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는 정당한 방법만을 고집했으며, ‘진정한 모험은 산업기술을 사용한 보조수단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14고봉 모두 무산소로 올랐다. 심지어 단독등반은 베이스캠프와 교신하는 무전기의 휴대조차 거부하는 것이 진정한 단독등반이라고 말했다.
    메스너가 이룩한 등반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초인의 영역으로 접근한 등반이라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메스너 이전에 에베레스트를 단독으로 오르려고 시도한 사람은 세 명이나 있었다. 
    최초로 단독 등반을 시도한 사람은 영국의 퇴역군인 모리스 윌슨이다. 1934년 그는 에베레스트 등반사에서 가장 괴기한 등반을 시도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중고 복엽기를 구입해 타고 동쪽 롱북 빙하에 동체 착륙을 감행해 그곳에서부터 도보로 정상에 오르려했으나 무모한 계획을 알아차린 당국에 의해 비행기를 압수당하고 입국마저 거부당한다. 등산도 비행도 전혀 모르는 그의 이런 계획을 주위에서 말리자 그는 “배워서 하면 되지”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는 수도승으로 변장하고 티베트에 밀입국해 롱북 빙하에 이른 후 혹한 속에서 여러 차례 등반을 시도한 끝에 6,250m 지점에 이른 후 철수했다. 이후 그는 1933년의 영국원정대가 저장해 둔 식량으로 연명하며 여러 차례 등반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불굴의 돈키호테가 기획한 미친 발상은 결국 탈진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1947년 캐나다의 얼 덴먼은 단독등반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951년 덴마크의 클래브스 베커 라르센 또한 단독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죽의 장막을 걷어낸 중국의 입산개방
    동서냉전시대 ‘죽의 장막’에 가려 있던 중국이 자국영토 내 산에 외국등반대의 입산을 개방하고 여러 나라와 국제교류를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다. 메스너가 입산허가를 얻게 된 시기는 중국 등산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1980년 메스너는 중국등산협회CMA로부터 북쪽 티베트 지역을 통한 에베레스트 등정 허가를 받는다. 약정서에 명시된 접근경로는 베이징-청두-라싸-시가체-쉐가르진을 경유해 베이스캠프에 도착, 새로운 루트로 단독등반을 허가한다는 내용이었다. 참가자는 메스너 외 1명과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연락관과 통역사 1명, 야크 두 마리와 몰이꾼, 7인승 지프가 전부였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가장 조촐한 소규모 원정대였다.
    메스너는 모택동 치하의 북경과 인민들의 생활상과 전설과 신비의 나라 라싸를 구경한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고대문화인 신왕국가가 인민해방군에 의해 파괴된 모습을 본다. 이들 일행은 캐러반 중 문화혁명의 여파로 파괴된 촌락과 불교사원의 흔적을 구경한다. 여기저기에 “모든 부자들이 파멸될 때까지 우리는 투쟁하리라!”라는 공산주의 구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에베레스트 북쪽 루트는 1921년부터 영국원정대가 정상을 목표로 1933년까지 4차례나 공략하며 국력을 기울인 곳이다. 1924년엔 영국의 전설적인 등반가 말로리가 정상을 향해 오르다 어빈과 함께 실종된다. 메스너는 에베레스트를 북쪽에서 오르며 실종된 말로리와 어빈의 흔적을 추적해 보고 싶어 했다. 메스너가 북쪽 루트로 오를 때만 해도 말로리의 시신이 발견되기 19년 전(1999년에 발견)의 일이다. 등반하면서 말로리의 실종에 대한 숨어 있는 이야기를 규명해 보려고 했다. 메스너는 말로리의 지도자 정신과 세 번의 원정에 굴하지 않는 도전의지를 높이 평가했지만 죽음과 함께 전설이 된 것을 애석해했다.
    1980년 8월 15일 메스너는 드디어 등반을 시작한다. 에베레스트 단독등반을 위해 2년간 준비했고 1,000번도 넘게 그려온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의 보조수단은 두 개의 스키스톡과 피켈, 티타늄 아이젠이 전부였으며 18kg등짐을 지고 있었다.
    50분을 오른 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식의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고독을 안고 고통스럽게 움직였다. 이 루트는 60년 전 말로리, 노턴, 소머벨이 오른 루트다. 고도를 높일수록 호흡이 가빠지자 30분마다 몇 분식 휴식을 취하며 오르고 쉬고, 쉬고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는 100km의 강풍을 견딜 수 있게 만든 2kg 무게의 좁은 텐트에서 세 번의 비박 끝에 정상 가까이에 이른다. 그는 비박지에 배낭과 모든 것을 남긴 채 피켈과 카메라만 지니고 정상으로 향한다. 드디어 정상 삼각대 앞에 선다. 이것은 1973년 중국대가 정상에 세운 인공구조물이다. 지구의 꼭지점에 두 번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겼다’, ‘살았다’라는 감정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며 정상에 이른 것이다. 오후 3시 정상에서 피켈에 카메라를 부착 자동셔터를 이용해 사진촬영을 한다.
    단독등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힘들고 위험하며 심적 부담이 몇 곱절이나 심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그는 고산단독등정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산등반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능력은 등반가가 구비해야 할 필수 조건이다. 동물적인 본능과 강한 의지력만이 전진을 도와줄 뿐이다.” 
    인간을 거부하는 환경에서 몇 주 동안 벌인 생존투쟁은 심한 개인주의와 자폐증을 가진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메스너는 천성이 부드럽거나 푸근함이 없는 쌀쌀맞은 사람이다. 여러 매체에 실린 그의 초상을 보면 미소 띤 모습은 없다. 니나 홀귄은 일기에 “그는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다. 에너지, 실행력, 집요함 그 자체이며, 성공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는 두렵다”고 기록했다.
    책표지를 여는 순간 만년 설 덮인 에베레스트의 냉기가 무더위를 식혀 줄 것이라 믿으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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