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칠순 친구들의 좌충우돌 지리산 천왕봉 산행

  • 석의영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입력 2020.09.14 09:59 | 수정 2020.09.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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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 정상석 옆에 선 필자.
    꿈에 그리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자는 메시지가 왔다. 동북고 동기동창 산우 모임인 ‘이멤버’ 중 몇 명이 7월에 천왕봉에 함께 가자는 제안이다. 이 삼복더위 장마철에 칠순 노인들이 국내 제2봉인 천왕봉(1,915m)에 오를 수 있을까? 아내에게 “친구들이 천왕봉을 같이 오르자고 한다”고 하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뜸 “죽으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의 말에 ‘죽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가보는 것’이라 생각하며 산행에 나섰다. 등반코스는 백무동~천왕봉~중산리로 잡았다. 천왕봉 등산경력이 있는 승순이 리더를 맡고 종만, 낙현, 영환, 병직이와 그의 보호자인 부인 유 여사를 포함 도합 7명이 함께했다. 계획은 7월 16일 밤 11시59분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행 버스를 타고, 17일 새벽에 내려 천왕봉에 올랐다가 중산리에서 1박하고, 18일 귀경하는 것이었다.
    산행 시작은 오전 5시 예정. 백무동에 오전 3시 반쯤 도착하니 어둠 속에 고요히 잠든 동네에 식당은 고사하고 커피 한잔 마실 구멍가게도 문 연 곳이 없어 백무교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하릴없이 등산로로 곧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등산로를 따라 소지봉(1,312m)에 오른다. 소지봉에서 해발 1,700m대에 위치한 장터목대피소까지 오르는 길은 산책로 같은 산죽길도 있고 경사도 완만한데다 시야도 확 트여 있어 간만에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1.7km. 보기엔 한 달음이면 될 거 같다. 제석봉(1,808m)까지 오르는 길은 완만하기 그지없다. 고원을 걷는 느낌이다. 10만 평이 넘는 울창한 숲이 도벌로 고사목 지대가 돼버린 초원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 형태만 남은 채 띄엄띄엄 풍력발전기처럼 서 있다. 마치 선자령에 온 듯하다.
    민둥산이 된 제석봉 정상부는 볼품이 없어 그런지 지리산 제3봉임에도 정상석이 없다. 이정표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천왕봉은 우리가 전망대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음에도 운무와 사랑의 ‘밀당’을 하느라 정신없다.천왕봉까지 이제 0.4km. 보기엔 손에 닿을 듯싶은데, 다 왔나 하고 굽이를 돌면 가파르고 험한 바윗길이 계속 막아선다.
    길 위에서 우리 일행이 다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에게 미적대며 올라 미안한 마음에 “나이 70에 처음 천왕봉에 왔다”고 하니 웃으며 파이팅을 외쳐준다. 오후 1시 천신만고 끝에 천왕봉에 올랐다. 유구한 세월 풍우에 씻겨 거대한 암괴로 변한 천왕봉, 정상석을 붙잡고 서서 심호흡을 해본다. 기진한 내 육신에 산 밑을 휘감고 오르는 운무처럼 기쁨이 차오른다.
    이 나이에 천왕봉까지 올라온 내게 줄지어 선 지리산 연봉들이 환호해 주는 것 같다. 뿌듯한 성취감과 내가 아직 푸르게 살아 있음이 생생히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이 순간의 기쁨과 감동은 이후 내 마음에 표석이 되어 힘들고 나약해질 때마다 나를 지켜 주는 보루가 될 것이다.
    하산 중에 만난 산객들이 중산리로 내려가는 버스가 일찍 끊어진다고 알려 준다. 하지만 서둘러 버스 타려다가 잘못하면 구급차 타기 십상이라 무리할 순 없었다. 하산해 차도로 나오자 오후 6시가 넘었고, 당연히 버스는 끊어졌다. 산길을 터벅거리며 내려와 종착지인 중산리 탐방안내소에 오후 7시에 겨우 도착했다. 새벽 4시에 산을 타기 시작했으니, 장장 15시간의 산행이었다. 남이 들으면 웃을 테지만, 우리에겐 다치지 않고 온전히 내려온 것만도 천만다행이고 감사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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