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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10월 마운스토리:순창 강천산] 단풍·계곡 절경 ‘호남의 승지’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 입력 2020.10.15 09:39
  • 수정 2020.10.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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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노수신 등이 문장·시 남겨… 옛 기록에는 광덕산, 강천사가 아닌 복천사가 원래 지명

광덕산 정상 아래에서 내려다본 강천산 구름다리. 강천산과 광덕산을 잇는 구름다리는 가을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광덕산 정상 아래에서 내려다본 강천산 구름다리. 강천산과 광덕산을 잇는 구름다리는 가을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가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다. 먼저, 내리쬐는 햇빛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여름엔 갈 수 없었던 구름다리가 있는 산을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 능선과 능선 중간을 잇는 구름다리 위에서 확 트인 산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는 장관은 감동을 주고도 남을 뿐 아니라 시원한 가을바람을 온몸에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특징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가을 억새나 단풍이 좋은 산을 찾는다. 억새는 민둥산이나 금정산, 영남알프스같이 이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단풍이 좋은 산들은 한국에 소소하게 많아 어느 산을 가야 할지 애매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찾는 방법 중의 하나가 활엽수와 계곡이 많은 산을 가는 것이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단풍명산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형형색색 화려한 단풍은 반드시 물이 풍부한 계곡을 끼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원활한 수분공급은 화려한 단풍색깔의 필수조건이다. 

구름다리, 활엽수, 많은 계곡을 모두 갖춘 산이 바로 순창 강천산剛泉山(583.7m)이다. 1980년 9월 완공한 구름다리는 강천산과 광덕산의 기암괴석 천태만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산의 능선을 하단부에서 연결한 구름다리 위에서 감상하는 가을 단풍은 전국 어느 산과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절경을 자랑한다. ‘단풍명산’ 명불허전이다. 

강천산은 단풍나무와 잡목들이 주종을 이룬다. 소나무는 산의 5부 능선을 올라서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강천산 도로입구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수 km 줄지어 방문객을 맞는다. 입구부터 감탄에 빠지게 한다. 산 입구에 들어서면 다시 한 번 놀란다. 단풍나무가 천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풍나무의 온갖 종들이 강천산 어디엔가 구석구석 자리 잡아 형형색색의 색깔을 뽐낸다. 늦여름과 초가을의 전령 꽃무릇도 이들에 한몫 더한다. 빨간 꽃으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 높지 않은 산에도 불구하고 호수와 폭포, 계곡·용소 등이 곳곳에 자리 잡아 단풍이 화려한 색깔을 뽐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한다. 널리 알려진 천우폭포·약수폭포·아랫용소·윗용소·용머리폭포·구장군폭포·선녀계곡·강천제2호수·비룡(구룡)폭포·대죽골·우작골·황우제골 등 강천산의 폭포와 계곡·소는 1년 내내 마르지 않은 물을 자랑한다. 

이 폭포와 계곡들은 수많은 봉우리에서 연유한다. 순창군에서 소개하는 봉우리만 해도 연대봉, 운대봉, 수령봉, 천자봉, 깃대봉, 왕자봉, 견제봉, 송락봉 등으로 그야말로 천봉, 만학, 기암, 괴석, 천태만상이다. 거기에 천연림은 태고를 자랑하듯 살랑이는 바람결로 방문객들을 더욱 유혹한다. 수많은 봉우리는 깊은 계곡을 낳는다. 그 계곡들은 연대계곡, 선녀계곡(저부제골), 원등계곡(용대암골), 분통골, 지적골, 소목골, 삼인대계곡(황우제골), 기우제골, 새냥골, 물톨골, 초당골, 우작골, 동막골, 금강계곡(탑상골), 승발골, 변두골 등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여러 가지로 단풍이 화려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요건을 가진 산이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구름다리, 화려한 단풍 등으로 1981년 1월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구름다리도 있어 한눈에 절경 감상

등산로도 다양하다. 2시간 내외의 짧은 산책로에서부터 20km가량 거리에 9시간 정도 소요되는 종주코스까지 체력 닿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 이정표도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일목요연하게 잘 정비돼 있다. 광덕산과 산성산~강천산을 잇는 종주 등산로는 깊은 계곡을 중간에 두고 ‘ㄷ’자 세운 형태로 연결돼 있어 초보자에게는 다소 무리일 수 있다. 긴 장마와 짧지만 강렬했던 폭염을 지나 화려한 단풍과 구름다리, 계곡이 있는 강천산으로 가을맞이 산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강천산의 지명유래는 조금 불명확하다. 순창군 홈페이지에도 앞뒤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강천산 개요 앞부분에서는 ‘강천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강천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뒷부분에서는 ‘골짜기마다 단단한 암반 위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 샘처럼 솟아 흐른다 하여 강천이라 불렀고, 그 주변의 모든 산을 강천산이라 하였다. 예전에는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두 마리의 용이 하늘을 향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지어진 이름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덧붙여 ‘노령산맥에서 추월산을 이어 광덕산과 용천산을 이루고 강천의 진산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성산에서 두 마리의 용이 나란히 수 십리를 동東으로 달린다’고 소개한다. 

강천산이라는 지명이 강천사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강천사의 지명이 먼저인지, 강천산이 먼저인지 기록을 한 번 찾아보자. 강천사의 창건 시기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887년(통일신라 진성왕 1) 도선道詵이 창건했다. 혹은 1482년(조선 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剛泉寺募緣文:불사할 인연을 모아 사찰을 창건한 내역을 쓴 글>에 보면 신령이 광덕산廣德山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고 나온다. 이 기록에 의하면, 광덕산에 강천사란 절을 창건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강천사란 사찰은 옛기록이나 고지도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시 순창군 홈페이지에 소개된 강천사에 대한 기록은 ‘강천사의 원명은 복천사라고 했으며,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 하여 용천사라고도 불렀다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강천산, 광덕산, 강천사, 복천사, 용천사 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조선 초기 제작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자. 같은 지리지 순창편에 ‘광덕산은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고 소개한다. 또 ‘복천사福川寺는 광덕산에 있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16세기 초반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이 산의 초기 지명은 광덕산이고, 거기에 있는 절은 복천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강천산이나 강천사는 현대 들어 사용한 지명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사용하는 작천鵲川이란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광덕산에서 발원하여 군의 서쪽 5리에 이르러 작천이 되고, 3리 지경에 와서는 경천鏡川이 되며, 객관 남쪽에 와서는 대교천이 되고, 옥과에 와서는 방제천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남원부에 들어와서 연탄淵灘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덕산 하산길에 강천산 자락에 있는 강천제2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광덕산 하산길에 강천산 자락에 있는 강천제2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

서거정, 풍광에 반해 ‘귀래정기’ 남겨

옛 기록에 나오는 광덕산 주변 지명은 전부 ‘川’이나 ‘泉’이 붙어 있다. 이는 물이 풍부했던 지역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 원래 지명인 광덕산도 ‘덕을 넓게 펼친다’는 뜻이지만 덕은 원래 도교에서는 물을 상징한다. 그래서 도교의 최고 가르침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한 데다 호남의 승지로서 명성을 익히 알렸던 터였던 셈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귀래정기歸來亭記’나 조선 초기 문신 안지安止(1377~1464)의 시도 이들이 순창 혹은 광덕산이라는 명승지를 답사한 뒤 감탄하면서 남긴 문장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형승편에 나오는 안지의 시 ‘오산중치작수동회鰲山中峙鵲水東回’는 ‘오산은 중앙에 우뚝 솟아 (지령地靈을 모으고), 작수는 동으로 돌아 흐르고 (논두렁이 평평하다)’고 순창을 평했다. 한마디로 호남의 승지勝地라는 말이다. 

서거정의 ‘귀래정기’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강천산 정상 왕자봉 비석
강천산 정상 왕자봉 비석

‘(전략) 순창은 호남의 승지로서 산수의 즐거움이 있으니…, (중략) 순창의 남쪽에 있는 산들은 중첩하고 산세는 매우 기위奇偉하여 꿈틀꿈틀 하고 낮게 돌아서 혹은 용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범이 뛰는 것 같기도 하며, 혹은 굽히고 혹은 일어나며 혹은 내려앉아 동봉이 되었는데 봉우리의 꼭대기는 땅이 아주 평탄한지라 후侯가 여기에 정자(귀래정) 서너 칸을 지으니…, (중략) 광덕산의 산과 물은 용이 서린 듯 뱀이 똬리를 튼 듯이 봉우리 아래로 감고 돌아 적수磧水와 합하니, 그 물이 맑고 깨끗하여 희롱할 만하고 거울삼아 비칠 수도 있고, 촌락과 들판은 백 리가 시원스레 보이는데, 누런 밭둑과 푸른 논이 멀리 가까이 아련히 보이고…, (중략) 나 서거정이 귀래歸來라 이름 짓기를 청하고 그 설명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귀거래는 진나라 은사 도잠陶潛의 사辭이다. 옛 사람들이 해석하기를 관官을 돌려주고 직을 떠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라 하였다. 대저 고인 가운데 진퇴의 바른 것을 얻은 사람은 도잠이 제일이다. (중략) 훗날 공을 이루고 이름을 낸 뒤 용퇴하게 되면 이 귀래정이 아니고 어디 가리오. 그러니 귀래라 이름 해도 괜찮지 않은가. 내 만일 벼슬을 사퇴하여 한가함을 얻어서 우를 따라 이 정자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귀래의 시를 읊조리고 지족을 노래하여 나의 설명을 마치리다.’ 

강천산 서쪽 맞은편 광덕산 정상 비석.
강천산 서쪽 맞은편 광덕산 정상 비석.

이러한 내용들이 전부 지명의 유래가 되고 광덕산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길게 덧붙였다. 

그렇다면 원래 광덕산에 복천사가 있었는데 언제 강천산이란 지명이 등장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전라북도 지명유래집>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광덕산은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최초의 군립공원이고, 고시지명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강천산으로 부른다. 한때 용천산으로도 불렀다. 이는 산세가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된 것이다. <대동지지>에는 강천산의 다른 지명을 갖는다고 묘사되어, 하나의 산이면서 둘의 이름을 붙인 모습이다. <청구도>에서는 광성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명유래집>에 강천산이라고 소개했다는 <대동지지>는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를 역사지리지로 엮었을 뿐인데, <대동여지도> 어디에도 강천산이란 지명을 찾아볼 수 없다. 순창 주변에 소개된 산은 무이산, 추월산, 금성산, 용천산, 광덕산뿐이다. 이 지리지가 제작된 19세기 중반, 즉 1860년대까지 강천산이란 지명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동여지도></div>에는 광덕산(오른쪽 굵은 점선)과 용천산(왼쪽 굵은 점선)이 다른 산으로 표시돼 있다. 따라서 지금의 강천산 옛 지명이 용천산이란 설은 근거가 없어 보인다.
<대동여지도>에는 광덕산(오른쪽 굵은 점선)과 용천산(왼쪽 굵은 점선)이 다른 산으로 표시돼 있다. 따라서 지금의 강천산 옛 지명이 용천산이란 설은 근거가 없어 보인다.

용천치(산)란 지명이 등장하는 <산경표>에는 호남정맥이 뻗어가다가 추월산~용천치~금성산~과포산~옥천산~만덕산을 거쳐 무등산으로 흘러간다. 광덕산으로 흘러가지 않거나 광덕산 지명이 빠져 있는 것이다. 추월산과 금성산 사이에 있는 용천치는 행정구역이 담양으로 돼 있고, 지도 위치로 볼 때 광덕산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또한 <산경표>에는 순창의 산으로 유일하게 무이산만 등장한다. 무이산은 지금 현재 강천산 동쪽에 있는 산이다. 

이보다 200년가량 앞선 17세기 중후반, 즉 1680년대 전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여비고>에서도 광덕산과 복천사가 명확하게 표시돼 있다. 이로 볼 때 광덕산이란 지명과 복천사란 사찰은 19세기 중반까지 널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옛문헌과 고지도의 기록으로 볼 때 광덕산이 고유의 지명인 사실은 확실한 듯하다. 조선 선비들의 개인문집도 한 번 확인해 보자. 앞서 살펴봤던 서거정의 <사가문집> 권2 ‘귀래정기’에서 광덕산이 호남의 승지로 자세히 소개된다.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문신 노수신(1515~1590)이 남긴 <소재집>의 시에서도 강천사란 이름이 등장한다. 이는 <동여비고>의 명칭과 비교해 볼 때 광덕산 복천사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작천의 다른 줄기의 발원지에 강천사란 이름이 명확히 표시돼 있다. 따라서 강천사는 복천사와 전혀 다른 사찰로 추정된다. 그리고 노수신은 다른 시에서 광덕산이란 지명으로 읊은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광덕산이란 지명과 강천사란 사찰은 명확히 다른 장소의 사찰로 판단된다. 

강천산 구장군폭포의 웅장한 모습과 바로 앞 계곡, 그리고 그 앞에는 정자가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강천산 구장군폭포의 웅장한 모습과 바로 앞 계곡, 그리고 그 앞에는 정자가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노수신은 <소재집>에서 남긴 또 다른 시에서 광덕산에 대해 ‘(전략) 사람들은 말하기를 광덕산이야말로/ 산 좋고 경계 절로 후미진 곳이라 하네// 참으로 비단옷 겉에 홑옷 덧입은 격이니/ 자못 풍악의 뛰어난 경관에 가깝다마다/ 어찌 속인만 물리쳐 못 오게 할 뿐이랴. // (후략)’라고 읊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이 한반도 전체 지리에 대해 쓴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서 ‘마이산의 한 산맥은 서남쪽으로 가다가 북으로 뻗어 금구金溝의 모악이 되며, 서남쪽으로 뻗어 순창의 부흥산과, 정읍의 내장산과, 장성의 입암산·노령이 되고, 또 남쪽으로는 나주부 금성산이 되었다. 입암산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어 추월산·광덕산이 되고, 동남쪽으로 무등산이 되며, 남쪽으로 장흥의 천관산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돌아 영암의 월출산이 되며, 남쪽으로 만덕미 황등산에서 그치고, 동북쪽으로 돈 것은 송광 계족산이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순창의 복흥福興에 대해서는 ‘양쪽에 산을 끼고 큰 들이 열렸다. 냇물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형승을 평했다. 복흥은 광덕산과 복천사 바로 옆 지명이다. 

이같은 기록을 종합해서 볼 때, 광덕산이란 지명은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동쪽 맞은편 강천산이란 지명은 현대 들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순창군에서는 강천산이란 지명에 대해 ‘호남의 금강’이라고 해서 ‘강剛’자를  따왔고 원래 물이 많은 지역이라 ‘천泉’자를 합쳐 강천산이라 했다고 한다. 현대판 개명이자 작명이다. 

강천산 정상 비석 뒷면에 ‘호남의 소금강’ 강천산이라고 적어놓고 있다. 예로부터 명승지나 유명인은 여러 개의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광덕산도 ‘호남의 승지’답게 아름다운 풍광은 많은 이름을 낳았다. 광덕산에서 용천산, 강천산까지 ‘일산다명’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광덕산은 잘 모르지만 강천산은 대부분 안다. 강천산이란 지명으로 단풍명산의 전국적 명성을 얻었으면 순창군에서 브랜드 네이밍을 제대로 한 셈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스산하고 차게 느껴질 때 ‘호남의 승지’ 강천산을 찾아가면 명불허전 단풍명산의 감상과 더불어 힐링의 계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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