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산악인] 안나푸르나에 묻힌 경북의 별, 신동민(1974~2011), 강기석(1978~2011)

입력 2020.10.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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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민(위), 강기석(아래). 사진 C영상미디어.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남벽이 앗아간 것은 박영석 대장만이 아니었다. 한국 산악계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쌍두마차로 떠오르던 신동민(당시 37세·대구대OB)과 강기석(당시 33세·안동대OB)도 함께였다.
14좌 등정, 7개륙 최고봉 등정, 지구 3극점 도달까지 ‘산악 그랜드슬램’을 이룬 박영석 대장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관우·장비가 신동민·강기석이었다. 이 세 사람은 2009년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큰 남서벽에 신 루트를 냈다.  여세를 몰아 안나푸르나 남벽에 2010~2011년에 연달아 도전했으나, 두 번째 도전에서 스스로 산이 되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신동민은 대구대학에 진학해 산악부 활동에 빠져들었다. 1995년 대구대 원정대원으로 첫 해외원정에 도전해 알프스 3대 북벽인 아이거·마터호른·그랑드조라스를 올랐다.  1996년 하계 백두대간 단독종주(43일)와 1998년 동계 백두대간 단독종주(35일)에 성공했다. 실로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안동 토박이인 강기석은 안동대에 입학해 대학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에 입문했다. 2003년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원정대원으로 로체(8,511m)를 등정했다. 2004년 타 대학 동기와 함께 24일 만에 대간일시 종주에 성공했으며, 같은 해 안동대산악회원들을 이끌고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정상에 올랐다.
강기석은 선배인 신동민에 대해 “파트너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다”며 “형을 처음 본 순간 함께 줄을 묶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헤쳐 나올 수 있는 사람이다 싶었다”고 얘기한바 있다.
박 대장은 신동민에 대해 “8,000m 위에서도 똑같은 속도로 하켄을 박으며 등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등반실력을 극찬했었다. 강기석은  차분함과 끈기로 ‘차돌 같은 사나이’로 불리며 원정대의 궂은일을 도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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