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할 것이 없다. 차에서 자면 차박이다. 간단한 정의만큼 필요한 장비도 간단하다. 시트를 넘기고 매트리스를 깔거나, 도킹텐트를 치고 자면 된다. 차라는 공간의 안락하고 안전한 느낌은 흉흉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크나큰 위안이 된다.
차박을 몇 번 하다보면 아쉬운 부분, 불편한 부분이 하나, 둘 드러난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를 ‘튜닝’으로 해결한 차박 고수 3명을 초청했다. 차박지는 시원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충남 태안 채석포항 인근의 한 해변. 한가로운 금요일 오후,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겨 주는 파도소리와 함께 자리를 펴고 차박 고수들의 3인 3차 아웃도어 스토리를 청해 들었다.
*구체적인 차박지의 위치는 밝히지 말아 달라는 현지의 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신준식·닷지 램밴
장비보다 에티켓 먼저 챙겨야
신준식씨는 2004년부터 오프로드를 즐기면서 차에서 자기 시작했다. 오프로드에 한창 빠져 있을 땐 곧잘 차박을 했지만 이후로는 캠핑을 했다. 본격적으로 차를 튜닝해 차박을 다니게 된 건 2014년부터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같이 아웃도어를 즐길 방안을 생각하다가 수입 밴을 구입하고 아이와 함께 차박을 다니기 시작했다.
“유명한 차박지는 거의 안 갑니다. 카페나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기록해 뒀다가 가끔 인근을 지나갈 때 한 번 정찰하고, 나중에 최종적으로 가는 식입니다. 장소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찾는 사람과 차량운행이 적으며 전망이 좋은 곳입니다. 가장 좋았던 장소는 이 조건에 부합하는 경남 남해의 한 도로변이었습니다.”
차박 인구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에티켓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구도 늘었다. 오랜 내공의 신 씨에게 차박 에티켓을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박지 주민에 대한 예의입니다. 차박하는 사람은 놀러가는 곳이지만 현지인은 일상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집 앞에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노상방뇨를 하고, 소음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따라서 자신이 발생시킨 쓰레기는 전부 회수해서 자신의 거주지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명·스타렉스
차박 7년차… 9인승 갤로퍼 개조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재명씨는 2013년부터 갤로퍼 9인승을 개조해 차박을 시작했다. 처음 찾은 차박지는 경기도 지장산계곡. 첫 차박의 기억이 달콤해서 이후에도 계속 차박을 다녔다. 이전에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과 캠핑을 자주했다. 북인도 라다크 지역을 여행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인 해발 5,602m의 카르둥 라Khardung la도 넘어 봤다.
“가을에 찾은 경기도 화악산자락, 서해에선 노을, 동해에선 일출, 남해에선 외국에 온 듯한 다도해의 멋진 풍경, 맑은 공기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까지 전국 곳곳에 좋은 차박지들이 많습니다.”
이씨가 차박지를 선택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위성지도’다. 위성지도를 통해 대략적인 경관과 위치를 파악한다. 인근에 로드뷰가 제공된다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씨는 “내가 탐색해서 찾은 아무도 모르는 차박지에서 혼자 술 한 잔 하며 힐링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차박의 매력은 텐트를 설치하고 걷는 번거로움이 없고, 비나 눈, 바람, 야생동물로부터 안전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백패킹이나 캠핑은 막상 갔을 때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더럽고, 뷰가 안 좋아도 머물러야 되는 반면, 차박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시동 걸고 떠나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잠자리도 생각보다 아늑합니다.”
최애장비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장착한 ‘냉장고’다. 이씨는 “최근에 들인 장비인데 정말 신세계다. 사실 아이스박스로 식량을 보관할 때도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얼음을 보충해 주거나 할 필요 없이 어떤 음식이나 음료수를 사서 넣어도 계속 시원하게 유지된다는 점이 너무 좋다. 꼭 차박이 아니라 일반 주행 중에도 활용할 수 있어 이번 여름 더위를 잘 견딜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장비다”라고 말했다.
이보현·체로키XJ
차박의 완성은 조명! 비오면 감성 UP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봉고를 타고 밤낚시하며 차에서 잤던 기억이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차박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었기에 2년 전 체로키XJ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차박에 빠지게 됐죠.”
이씨는 “가장 좋았던 차박지는 동해 구산해수욕장이다. 눈을 뜨면 바로 앞에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오션 뷰가 펼쳐졌다”며 차박의 매력으로는 “어디서든 트렁크 문만 열면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아늑한 차 안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차박 중 최고의 순간은 이처럼 여유와 감성을 즐길 때입니다. 이 감성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장비가 조명 등불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비 중 하나죠. 차 안에는 은은한 조명이 감돌고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를 때의 감동은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죠. 또 비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의 차박도 좋습니다. 차안에 누워 차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드는 것도 무척 즐겁죠. 차박의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하게 누렸으면 좋겠습니다.”추천 걷기길
신두리해안사구 품은 태안 해변길 걷기
‘한국의 사막’과 솔숲, 그리고 노을 감상 최적
모든 길들이 각각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으나, 가장 추천하는 코스는 태안해변길 1코스 ‘바라길’이다. ‘한국의 사막’으로 불리는 신두리해안사구를 포함해 해당화 군락지, 구릉성 산지, 소나무숲,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두웅습지 등 태안해변길 전체 코스를 압축해 놓은 듯 다양하고 독특한 경관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길이다.
바라길은 학암포자연관찰로에서 시작해 구례포해변, 태안 신두리해안사구를 지나 신두리해변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 10.2km로 소요시간은 약 4시간.
전체 노정을 다 걷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신두리해안사구 일대만 둘러보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 최대 사구인 신두리사구는 전체 길이 3.5km에 달하고, 폭 1.3km, 최대 높이 4.6m쯤 되는 모래언덕이다.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돼 있으며, 웅장한 모래언덕의 모습과 다양한 사구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여름이면 제주도 오름 같은 초지로 변했다가, 겨울이면 다시 사막으로 변한다.
신두리해안사구 탐방로는 각각 30분, 60분, 120분 정도 소요되는 3가지 코스로 구분돼 있지만, 굳이 이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발길 가는 대로 걸으면 된다. 해안사구의 훼손을 막고자 나무 데크를 깐 탐방로를 설치했기에 누구든지 큰 어려움 없이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 가을에는 억새밭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