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장거리 종주ㅣ한강기맥] 강원도 횡으로 가르는 ‘167km의 힘’

입력 2020.10.06 09:51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고, 오대산 두로봉 출발해 양평 두물머리에 이르는 능선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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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동부의 제왕이자 한강기맥이 빚은 명산 용문산. 멀리 철탑 솟은 봉우리가 정상이다.
산줄기 중에서 은둔고수를 꼽는다면 단연 한강기맥이다. 백두대간과 정맥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위용만큼은 높이 100m대까지 낮아지기도 하는 정맥들을 압도하고 남는다. 첩첩산중의 강원도 영서를 횡으로 가르는 힘의 산줄기로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높은 계방산(1,579m)과 경기 남동부의 제왕 용문산(1,157m)이 한강기맥의 대표적인 산이며, 1,000m대 고봉이 10개가 넘는다.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갈라져 나와 서쪽으로 뻗어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167㎞의 산줄기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길러낸 중부지방의 젖줄이자 강원도를 횡으로 지탱하는 상징적인 능선이다.
산줄기 종주는 발원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다. 산줄기가 시작된 곳에서 출발해 맥이 다하는 곳에서 종주를 마치는 것. 그런데 시작부터 국립공원이다. 산줄기 종주꾼에게 국립공원은 경치 좋은 명산이 아닌, 종주를 어렵게 하는 어려운 문제에 가깝다. 비법정 구간이 많아 불법을 자행해 무대포로 종주하거나, 퐁당퐁당 능선을 건너뛰는 효율성 떨어지는 종주를 해야 한다.
발원지인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두로령과 상왕봉을 지나 오대산 정상까지만 종주 가능하다. 다음 산인 계방산 역시 일부 구간만 열려 있어, 산줄기 진도(진척의 정도)를 빨리 뽑기는 어렵다. 운두령에서 보래령까지 국립공원 비법정 구간에 속해 보래령부터 합법적인 종주가 가능하다.
보래령 이후 구간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따질 것 없는 고독한 산행이다. 하루에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기 어려운 구간이 흔할 정도다. 발길이 적으면 풀이 높고, 길찾기도 어렵다. 등산지도를 준비해 예민하게 길을 찾아야 알바를 면할 수 있다. ‘알바’는 본업인 기맥산길을 벗어나 엉뚱한 산길로 잘못 들어 발품 파는 것을 뜻하는 산꾼들의 은어다. 알바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평소 점잖은 선비 같은 성품이라 해도 욕이 나오는 건 물론이고, 속에서 천불이 난다. 오르내림 많은 기맥 특성상,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스스로의 우매함이 만든 고행 중의 고행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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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기맥의 인기 명산 유명산.
불확실성 도전하고 싶다면 한강기맥으로
산줄기 종주가 명산 산행과 다른 점은, 호젓하지만 조망이 아쉬운 것이다. 짙은 숲이 많아 온 종일 걸어도 제대로 경치 한 번 구경하기 힘든 날이 많다. 하지만 조용히 오지산행을 여한 없이 할 수 있다는 점, 내 능력만으로 산길을 찾아 예정했던 코스로 하산했을 때의 성취감은 등산인파로 들끓는 명산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달콤하여 첫술에 입맛을 확 끌지는 않지만, 된장처럼 깊이 있는 고생스런 맛이 있다. 기맥은 주로 대간과 정맥을 완주한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 대상지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등산 경험적인 면에서나, 육체적인 면에서나 고수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는 셈이다.
그렇다고 초보자가 가서는 안 될 곳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어차피 ‘구간 종주’다. 당일 종주 거리를 짧게 끊어, 산행 난이도를 줄이고, 철저한 예습과 준비, 갈림길에서 신중히 길을 택하면 초보자도 금방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 있는, 비기 탐독 같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또 적당한 알바가 쌓여야 산에서 겸손의 미덕을 강제로 갖추게 된다. 등산 고수가 되기 위해선 알바가 어느 정도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종주 특성상 산 입구까지의 이동과 하산 후 귀가하는 교통편도 힘든 숙제다. 택시가 많지 않은 시골이고, 차를 세워둔 출발지까지 돌아오는 택시요금도 적지 않다. 대중교통은 시골 특성상 더더욱 까다롭다. 시간, 돈, 체력, 산행실력을 모두 갖춰야 완주할 수 있는 것이 한강기맥이다.
한강기맥은 결코 쉽지 않다. 산행이 세고, 개척산행에 가까운 곳도 많고, 길찾기 어려운 알바의 함정도 많다. 하지만 순도 높은 진짜 자연과 어려운 산행 속에서 만나는 귀한 경치의 후련함, 기댈 곳 없으나 성취도 높은 길찾기 등 깊이 있는 즐거움 또한 여럿 따라붙는다. 등산의 목적이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성취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 배낭 꾸려 등산화끈 질끈 묶고 한강기맥으로 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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