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섬 무의도] 용과 호랑이의 은밀한 춤사위

입력 2020.10.08 09:53

호룡곡산 원점회귀 5km, 소무의도 둘레길 3km 짧고 쉬운 섬 여행지…연륙교 있어 접근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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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 만든 단순명료한 아름다움. 큰 조수간만의 차로 사막처럼 드넓은 갯벌이 있는 하나개해수욕장은 무의도를 대표하는 경관이다.
낚시 바늘에 걸린 고기처럼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인천 앞바다의 섬, 무의도 말이다. 섬으로 태어났으나 강제로 육지화되는 과정은 혹독했다. 기존의 소박한 길은 모두 옛 것이 되고, 산의 살점을 깎아 작은 섬에겐 지나치게 큰 옷 같은 신작로를 내고, 곳곳에 건물이 올라가고, 흙이 시멘트로 바뀌고. 무위자연 없는 무의도가 되었다.
용과 호랑이가 싸웠다는 예사롭지 않은 전설이 있는 호룡곡산虎龍谷山(244m)에 공사 소음이 울려 퍼지자, 검은 능선이 고통스러운 듯 펄떡였다. 시선을 움켜쥔 바다는 잔잔하다 못해 적요했으나 해무를 풀어내며, 산이 견뎌내는 고통을 차분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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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는 썰물이 되면 바닷길이 열리며 걸어들어 갈 수 있다. 실미도를 비롯한 해변 일대는 사유지이며 별도의 걷기길은 없다.
편한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릴 시간이지만, 이미 입도해 섬 깊숙이 차로 내달리고 있었다. 무의도舞衣島는 안개가 낀 날 배에서 바라보면 섬의 형상이 아름다운 춤사위인 듯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섬 최고봉이자 BAC 인증지점은 호룡곡산으로 10여 년 전부터 수도권 등산인들이 즐겨 찾아온 섬 산행지다. 간단한 바다 여행을 겸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데다, 큰 무리 없이 한나절 산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치고받은 용과 호랑이처럼 무의도는 경쟁하는 명물이 2개씩 있다. 산은 호룡곡산과 국사봉(230m)이 있고, 해변은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도해수욕장이 있고,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부속 섬으로 소무의도와 실미도가 있다. 6곳의 명소를 차례차례 음미하는 것이 무의도를 정독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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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 인증지점인 호룡곡산 정상 표지석
무의바다누리길 3km
몸 풀기로 소무의도를 찾았다. 인도교 지나 작은 섬으로 든다. 영종도에서 무의도로, 다시 소무의도로 들었으니, 섬의 섬의 섬으로 드는 것. 설레는 얼굴로 다리를 건너는 이는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손창건씨와 강태선나눔재단의 변별씨다. 완전한 여름도 완연한 가을도 아니었으나 모호한 계절의 변화는 낯선 섬을 둘러보기엔 제격이었다.
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3km의 무의바다누리길을 걷는다. 안내판에는 소무의도로 드는 인도교가 1구간임을 알려 주었다. 해안 트레킹 길도 있지만, 지금은 만조라 갈 수 없다고 커피 파는 아주머니가 일러 주었다. 관광객들이 연신 비슷한 질문을 하는데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해 주고 있었다. 왠지 이곳 작은 무의도 사람들은 정이 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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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 가득한 소무의도의 울창한 숲. 해안선을 한 바퀴 도는 걷기길이 있다.
숲으로 드는 데크 계단이 눈에 띈다. 대부분 이곳을 들머리로 8구간부터 섬 구경을 시작하지만, 2구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번호 순서대로 돌면 뭔가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얕은 수 읽기였다.
식당이 늘어선 작은 항구를 지나고 1년 후 편지를 전해 준다는 느린 우체통을 지나 숲으로 든다. 으레 섬이니 소사나무가 많을 거란 선입견을 아까시 나무가 무너뜨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소사나무와 참나무 형제들이 마중 나온다. 닭의장풀이 파란 꽃으로 산길을 수놓았다. 순수한 꽃의 파랑은 희망을 닮아 있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위축된 마음을 위로한다.
정글 숲이 끝나는 곳에서 시선이 풀려난다. 해안 전망데크가 멀리 송도신도시까지 가닿는다. 과거 섬 주민들이 풍어제를 지냈다는 신성한 곳, ‘부처깨미’ 전망대. 소무의도는 뱀이 똬리를 튼 모습인데 이곳이 뱀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풀어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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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빼기에서 호룡곡산 정상으로 이어진 오름길. 비탈길이지만 정상까지 1.2㎞로 비교적 짧아 산행이 어렵지 않다.
작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몽여해수욕장, 순박한 민박 간판 몇 곳 지나도록 아무도 없이 햇볕만 내리쬔다. 기분 좋은 공허가 파도에 실려 하염없이 밀려오고, 해변이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꺾자 다른 해변이 시작된다.
모래와 바위가 섞인 ‘명사의 해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휴양한 곳이라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해안 둘레길의 미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흰 조개더미가 우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다른 영화가 시작된 기분이다. 초록에 가까운 물빛과 토실토실 살이 오른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걸을 때마다 기쁨이 차오른다.
다시 숲길로 들어 계단을 올라선다. 모처럼 나타난 오르막에 몸이 뜨거워진다. 모질지 못한 소무의도는 얼마 안 가 정자가 있는 정상을 내어 준다. 솔잎 향 그윽하지만 터가 좁아 시원한 맛은 없다. 내리막을 빠져나오자 인도교가 나타나며 짧은 트레킹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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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의도 해변길은 썰물일 때만 갈 수 있다. 무의도와 다리로 연결된 소무의도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단순명료함의 미학, 하나개
몸 풀기는 끝났다. BAC 인증지점이자 섬 최고봉인 호룡곡산으로 든다.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인 재빼기에서 오르막에 몸을 담근다. 모처럼 땀을 쏟아내자, 개운한 맛이 있는 전망데크가 마중 나온다.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숨 돌리고 가라 권한다. 맞은편, 국사봉 옆구리를 파헤치는 신작로 공사마저 익숙한 풍경이 되어 가고 있다. 검정에 가까울 만큼 짙은 초록의 여름산이 내리쬐는 땡볕을 삼켜내며 조금씩 솟구치는 것만 같다.
정상은 호룡곡산이란 비범한 이름에 비해 가볍게 다가온다. 오르막 산행에 이제야 몸이 최적화되었는데 싱겁게도 정상이다. 재빼기에서 1.2㎞ 거리의 정상은 고맙게도 해발 244m보다 더 풍성한 경치로 성심성의껏 산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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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실미도로 가는 길이 열린다. 물이 살짝 덜 빠졌을 때에도 징검다리를 이용해 건널 수 있다.
너른 전망데크는 등산객 여럿이 올라와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기 제격이다. 먹음직스런 백반 상차림처럼 바다·섬·산·해변이 어우러진 경치가 어지러운 세상살이를 지워버린다. 용과 호랑이가 싸운 산이 아니라, 이젠 용과 호랑이가 해무 속에서 춤추는 섬이 맞을 것 같다.
눈길을 끄는 녀석들이 있다. 등산객이 떨어뜨린 간식을 먹고 사는 야생 고양이는 비교적 흔한데, 갈비뼈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야위었다. 한 녀석은 아픈지 침을 계속 흘리고 있다.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먹이를 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한다.
야생동물이든 아니든 생태계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곧 죽을 것 같은 녀석들이 안타까워 간식을 던져 준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고양이 3형제와 이별하고 내리막 숲길로 든다. 빠르게 고도를 내려 무의도 백미로 통하는 하나개해변을 만난다. 소무의도에서 만난 해변과는 급이 다르다. 모텔과 7성급 호텔을 비교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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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해변을 걷는 강태선나눔재단의 변별씨와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손창건씨. 하나개해변과 소무의도해변, 실미도해변은 각각 다른 매력이 있다.
소사나무·상수리나무숲 사이로 드문드문 너른 해변이 드러난다. 20평쯤 되는 너른 데크 쉼터에 배낭을 내려놓자, 바닷가와 상수리숲을 지나온 바람이 살랑거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짠내와 숲내음 묘하게 섞인 기분 좋은 바람과 햇살을 누린다. 한 시간쯤 낮잠을 자면 묵은 피로가 씻어질 것 같은 건강한 느낌의 숲이다.
붉은 해벽등반으로도 유명한 하나개해변의 유혹을 참을 수 없다. 산길은 해안선 숲을 따라 이어지고, 해변으로 가려면 10m 정도의 급비탈을 내려서야 한다. 고정로프가 있는 샛길을 놓치지 않고 해변으로 내려선다. 무의도의 하나밖에 없는 갯벌이라 하여 ‘하나개’란 독특한 이름이 생겼다.
정리벽이 있는 썰물은 단순한 갯벌만 남겨놓았다. 사막처럼 드넓은 해변을 걷는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름도 썰물처럼 씻겨 내려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하나개의 단순명료함에 스스로 점이 된 사람들이 드문드문 흘러간다. 고인 물웅덩이에 솟은 바위는 아무런 치장 없이 작품이 된다. 서해안 해넘이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이다. 노을에 취해 무작정 걷는 동안 밀물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밀려온다. 무의도의 춤사위가 빠른 템포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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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개해변의 바윗길. 밀물이 되면 바다가 되는 곳이다. 고가다리 형태의 해상관광탐방로가 있어 밀물 때도 둘러 볼 수 있다.
해가 지고서야 하나개를 두고 야영 가능한 실미도해변으로 이동했다. 실미도를 포함한 이곳 해변은 사유지라 입구에서 주차료와 입장료, 야영료를 받는데 당분간 야영금지라고 알려 준다. 인천국제공항 근처의 숙소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다시 찾은 무의도.
실미도해변 입구에서 직원이 해선 안 되는 것들만 30초 넘게 일러 준다. 여간하면 다 안 된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런 시절인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소나무숲 짙은 해변에서 실미도 바닷길이 열리길 기다린다. 주변 식당 주인에게 물어도 어떤 이는 4시간 뒤, 어떤 이는 2시간 뒤라며 말이 조금씩 다르다. 소나무 숲을 걷고, 해변 끝까지 걷기도 하며 바닷길이 열리길 기다린다.
영화 ‘실미도’가 유명해지며 한때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는데, 지금은 파도 소리만 분주하다. 그 많던 비행기도 드물게 지나고, 자연도 일상에도 여백이 늘었다. 멈춘 것 같은 시간을 받아들이자, 바다 속에서 길이 나왔다. 하염없던 기다림은 새로운 길이 되었고, 또 다른 섬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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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과 아웃도어에 관심이 많아 강태선나눔재단에 들어왔다는 3개월차 신입사원 변별씨.
섬 가이드
반나절 정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호룡곡산 원점회귀 산행을 권한다. 산행도 즐기고 BAC 인증도 하고, 하산길에 무의도의 백미인 하나개해수욕장도 둘러볼 수 있다. 산행은 구름다리가 있는 재빼기 고개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하나개해변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썰물일 때는 해변 쪽으로 내려가 걷는 것이 더 운치 있다. 데크길인 해상관광탐방로를 이용하면 밀물일 때도 해변을 걸을 수 있다. 재빼기 고개 부근 ‘호룡곡산 산림욕장’ 간판 있는 곳에 주차공간이 있다. 총 4km 거리이며, 하나개해변에서 재빼기고개는 도로 따라 1km 더 가면 닿는다.
광명항에서 소무의도를 한 바퀴 도는 걷기길은 3km 거리이며 1시간 30분이면 끝난다. 실미도해변과 실미도는 개인사유지이며, 입장료 2,000원, 주차료 1일 3,000원을 받는다. 당일 야영료는 5,000원이며 현재 일시적으로 야영은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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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해변은 수도권의 차박 성지로 꼽힌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로 야영이 금지된 상태다.
교통
용유역에서 무의1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용유역을 출발해 실미도해변~재빼기~하나개~광명항을 거쳐 용유역으로 돌아간다. 30~40분 간격으로 운행(06:00~21:00) 한다. 공항철도 인천공항1터미널역에서 용유역행 자기부상열차로 갈아탈 수 있다. 자가용으로 갈 경우 인천대교 통행료가 편도 5,500원 정도 나온다. 
숙식(지역번호 032)
소무의도 골목안 뗌리(752-3814)는 잔치국수(4,500원)와 비빔국수(5,500원), 해산물을 첨가한 뗌리국수(1만2,000원), 해물파전이 별미다. 작은섬식당(0507-1422-8553)은 물회, 해물칼국수(8,000원), 활어회가 별미다. 하나개해수욕장 바다나라횟집(752-5561)은 바지락칼국수(8,000원) 해물칼국수(1만2,000원), 굴밥(1만5,000원)이 별미다.
실미도해변은 차박캠핑(5,000원) 성지로 통한다. 현재 일시적으로 야영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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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했다는 소무의도 명사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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