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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DIN] 215m 나지막한 산인데 쓰레기는 역대 최다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이한솔 기자
  • 입력 2020.10.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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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1주년 환경 캠페인 <1> 현장
클린하이커스, 서울 백련산 ‘산스장’ 인근 집중 정화

정크아트 ‘거북한 쓰레기’와 클린하이커스. 왼쪽부터 곽신혁, 강문희, 김강은, 이은민, 김정연, 이동은씨. 김강은씨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하고 먹는 바다거북이들. 소화되지 않는 플라스틱 및 쓰레기들 때문에 속이 거북합니다”라고 작품해설을 덧붙였다.
정크아트 ‘거북한 쓰레기’와 클린하이커스. 왼쪽부터 곽신혁, 강문희, 김강은, 이은민, 김정연, 이동은씨. 김강은씨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하고 먹는 바다거북이들. 소화되지 않는 플라스틱 및 쓰레기들 때문에 속이 거북합니다”라고 작품해설을 덧붙였다.

선한 영향력.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 말은 착하고 이타적인 행동의 파급력을 격려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등산을 위해 전개하는 월간山 클린하이킹 캠페인 ‘Do it Now’의 선한 영향력도 전국의 산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번 달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찾은 곳은 서울 서대문구 백련산白蓮山(215m)이다. 주말이면 응암동과 홍은동 일대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이다. 신라 경덕왕(747년) 진표율사가 창건하고 무학대사 중건한 백련사란 절에서 산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함께한 이는 벽화가 김강은씨와 클린하이커스 이은민, 이동은, 곽신혁, 강문희, 김정연씨다.

나무 밑둥에 박아둔 박카스병. 처음 이를 발견한 곽신혁씨는 “나무에 약을 주는 건 줄 알았다”며 황당해 했다.
나무 밑둥에 박아둔 박카스병. 처음 이를 발견한 곽신혁씨는 “나무에 약을 주는 건 줄 알았다”며 황당해 했다.

들머리는 녹번역 3번 출구. 출구를 나서니 아파트 건설현장의 거대한 가림막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일부 지도앱에는 출구에서 바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지만 지금은 건설로 인해 일대 길이 전부 막혔다.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니 “관음선원으로 오르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출구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가파른 마을길로 오른다.

“이곳 주민들은 등산 잘하시겠네요.”

삐거덕거리는 높은 나무 계단과 아스팔트 비탈길을 오르자 절로 농담이 나왔다. 길 끝 3m가량 높이의 불상에서부터 비로소 흙길이 나온다. 등산로 안내 표지판에는 백련산 초록숲길과 은평둘레길, 일반 등산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길이 많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나갈 것이고, 그만큼 등산객들이 만들어놓은 생채기도 많으리라 생각하며 능선을 따라 백련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했다.

수거한 맥주병과 차 페트병을 들어 보이는 김강은씨.
수거한 맥주병과 차 페트병을 들어 보이는 김강은씨.

“백련산이라고 해서 클린백도 작은 걸로 갖고 왔어요. 산도 낮고 코스 길이도 짧아서 쓰레기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클린하이킹 중 처음으로 전구가 수거됐다. 수거자는 강문희씨.
클린하이킹 중 처음으로 전구가 수거됐다. 수거자는 강문희씨.

8년 된 막걸리통, 20년 된 사이다병…

늘 그렇듯 등산로 초입은 깨끗하다. 은평정 방면 이정표를 따라 능선을 오른다. 지도상에 성시경숲 바로 위에 위치한 데크 전망대까지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등산 커뮤니티와 사전에 백련산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정자마다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제보를 받고 온 터라 당황스러웠다.

“어, 저기 우산 있어요. 나 리지화 아닌데…”

쓰레기를 찾아 배회하는 클린하이커스에게 데크 옆 바위사면에 위태롭게 펼쳐진 우산이 포착됐다. 순간 머뭇거리는 사이, 클린하이커스의 정화 활동을 묵묵히 지켜보던 한 등산객이 성큼성큼 걸어가서 순식간에 우산을 수거해 클린하이커스에게 던져줬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에 쿨하게 한 차례 손사래를 치곤 그대로 길을 따라 산행을 이어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선한 영향력’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가득 쓰레기를 들고 걷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클린백이 무거워질수록 마음과 발걸음은 더 가벼워진다.
한가득 쓰레기를 들고 걷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클린백이 무거워질수록 마음과 발걸음은 더 가벼워진다.

능선을 따라 한 번 안부로 내려서자 공공체육시설인 ‘산스장’이 있는 교차로가 나타난다. 표지판 고유번호에는 ‘13-5’라고 적혀 있다. 최근 언론에서 휴점한 헬스장 대신 운용하는 곳으로 조명 받은 백련산 산스장과는 다른 곳이다.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곳이라 곳곳에서 쓰레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등산로 한가운데 박혀 있던 막걸리 통의 유통기한은 2012년 11월 30일. 장장 8년이나 등산로 한가운데서 등산객들의 안전 보행을 위협한 것이다. 누군가는 마시고 남은 박카스병을 나무 둥치에 연달아 박아놓기도 했다.

정크아트를 만들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정크아트를 만들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심지어 한 벤치 뒤에서는 스티로폼을 비롯해 맥주병, 페트병, 유리, 전구 등 온갖 쓰레기가 잔뜩 쏟아졌다. 김강은씨는 “이 지점은 역대 클린하이킹 중 단일면적당 최다 쓰레기 매립지”라며 혀를 내둘렀다. 쓰레기들의 제작연도도 제각각이다. 1997년에 출시된 축배 사이다도 나왔다. 벤치에 앉아 무심코 등 뒤로 휙 던진 쓰레기들이 켜켜이 쌓여 비양심 지층을 만든 셈이다.

더 이상 클린하이킹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클린백이 가득 차버려 산행을 진행할 수 없었다. 더 진행하지 않고 LNTLeave No Trace 정신을 강조하는 문구를 선정해 피켓드로잉을 하고 정크아트를 진행했다. 플라스틱으로 고통 받는 거북이들을 형상화한 ‘거북한 쓰레기’다. 클린하이커스 모두 더 이상 거북이들이 쓰레기들로 거북할 일이 없길 한마음으로 기원했다.

그린피플 곽신혁.
그린피플 곽신혁.

“등산객들이 경치 볼 때 나는 등산길을 본다” 

그린피플 곽신혁

클린하이커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늘 나타나는 이가 있다. 작년 4월부터 우수 클린하이커스로 활동하고 있는 곽신혁씨다. 클라이밍과 워킹산행 마니아인 그는 물류회사에 다니고 있어 직업 특성상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내서 활동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부터 등산을 좋아했지만 환경보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친동생이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전기를 쓰지 않고 커피를 만들어 파는 친환경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친동생이 ‘페트병 생수 사서 마시지 말고 수돗물 마셔라, 휴지나 물티슈 말고 손수건 사용해라’ 등 하나 둘 잔소리를 했죠.”

자연보호 취지에 공감한 곽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등산에서도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이때 친동생이 나서서 SNS에 게시된 김강은씨의 클린하이킹 모집 공고문을 소개해 줬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산행할 때도 혼자서 쓰레기를 줍고 다녀요. 등산객들이 경치를 볼 때 저는 그들의 발치를 보며 쓰레기를 찾고 다니죠.”

쓰레기를 많이 줍다 보니 관심은 버리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가, ‘분리수거’의 문제다.

“산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은 이것저것 많이 섞여 있어 일반인이 올바르게 배출하기 힘듭니다. 잘못 버리면 다른 쓰레기들까지 같이 소각시킬 우려가 있어요. 많은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되가져가서 올바르게 버리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자’는
구호를 피켓에 적고 LNT정신을 다시금 다짐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자’는 구호를 피켓에 적고 LNT정신을 다시금 다짐했다.
'Leave Good Trace'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LNT를 넘어
선한 영향력을 남기자는 의미다.
'Leave Good Trace'는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LNT를 넘어 선한 영향력을 남기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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