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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클린하이킹 | 금정산] 바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글 김강은 벽화가 사진 클린하이커스
  • 입력 2020.10.1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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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째 클린하이커스, 쓰레기 덕후들의 금정산행

금정산 정상 고당봉에 오른 클린하이킹 참가자들.
금정산 정상 고당봉에 오른 클린하이킹 참가자들.

늦여름, 더위를 가르고 부산으로 향한다. 클린하이커스 영남팀 호스트 전성태씨가 쓰레기가 많다고 벼르고 있던 금정산 고당봉을 청소할 계획이다. 몇 차례나 청소를 했는데도 아직 쓰레기가 많다고 한다.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서 들머리인 범어사로 향했다. 

범어사 주차장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조금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친해질 것을 알고 있었다. 

 16번째 클린하이킹에는 부산을 비롯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16번째 클린하이킹에는 부산을 비롯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못 말리는 쓰레기 덕후들

각자 준비해 온 쓰레기봉투를 꺼내어 금정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범어사 코스는 육산의 부드러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었다. 은은한 안개 속이었다. 흙냄새가 진동하는 동시에 나무의 숨결이 느껴지는, 자연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길이었다. 숲의 서정을 느껴보려는 것도 잠시, 아름다운 것만 보일 리 없었다. 각자 흩어져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의 작전을 보는 듯했다.

“여러분! 쓰레기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거워야 계속 할 수 있어요. 땅만 보지 말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사진도 찍고. 즐기세요!”

하지만 내 말이 통할 리 없었다. 클린하이커스는 쓰레기를 보물 찾듯이 열정적으로 찾았다. 이런 쓰레기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피식 웃었지만, 나도 열의가 불타오른다.

범어사를 출발해 고당봉으로 이어진 산길을 걸었다.
범어사를 출발해 고당봉으로 이어진 산길을 걸었다.

페트병과 술병, 유리 파편, 담배꽁초… 오만 가지의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신발 밑창을 주웠다. 클린하이킹을 할 때마다 신발 밑창이 꼭 1개 이상은 나온다는 것이 실로 불가사의다. 돗자리와 가격표, 스틱 2개, 수건 등 이제 놀랍지도 않게 쓰레기를 담았다. 그런데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이 있었다. 남자 바지가 널브러져 있던 것. 찰진 노래의 한 구절이 뇌리를 빠르게 스친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쓰레기들. 신데렐라는 구두를 놓고 간다지만, 바지를 벗고 간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니, 어떻게 내려갔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참가자들이 수거한 쓰레기.
참가자들이 수거한 쓰레기.

금정산 정상 고당봉은 북새통이었다. 흐린 날씨에도 정상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테지만, 전국 각지에서 온 클린하이커스의 추억을 저장하고 싶어서 단체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남은 목표는 하산해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 수십, 수백 차례 허리를 굽히고, 땅을 파다 보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도 쓰레기는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하산 시에는 안전에 주의하기 위해 아주 큰 쓰레기를 제외하고는 줍지 않는 것이 우리의 규칙이지만, 다들 규칙을 어기고 있었다. 

 클린하이킹 때마다 신발 밑창을 최소한 1개 이상은 줍는다.
클린하이킹 때마다 신발 밑창을 최소한 1개 이상은 줍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들

금정산성으로 내려오는 길, 돌 밑에 묻힌 아주 큰 천 조각을 발견했다. 집게로는 어림없었다. 진흙탕 투성이의 쓰레기였지만 모두  손을 모았다. 더러워진 손바닥을 한 군데 모아 보았다. 도시에서는 깔끔 떨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 뭉클했다. 예쁘지도, 깨끗하지도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들이었다!

“피로 한번 싹 풀고 가시죠?” 

돌 밑에 묻힌 쓰레기를 합심하여 수거했다.
돌 밑에 묻힌 쓰레기를 합심하여 수거했다.
새로운 클린하이커이자 트레일러너 수진님이 하산길 계곡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양말을 벗어던지고 계곡에 발을 담갔다. 차갑고, 시원하고, 상쾌하고! 발만 담갔는데 샤워를 한 것마냥 개운하다. 호텔 스파 부럽지 않은 자연족욕이다. 물장구도 치고 차디찬 물로 고양이 세수도 하고, 약 10분 동안 클린하이커들은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산에 오면 단순해져서 좋다. 그런데 산청소를 하고 나면 그 단순하고 뿌듯한 마음이 배가 된다. 클린하이킹을 통해 산만 청소한 게 아니라 우리 마음도 치유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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