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17> 우석주] 한국 알피니즘의 길 한국 산에 있다

  • 글 서현우 기자
  • 사진 황문성 사진가, 우석주 제공
    입력 2020.10.19 09:29 | 수정 2020.10.19 09:36

    한국과 서구 알피니즘 결합한 알피니즘 추구

    “저는 암벽등반에 정말 소질이 없었습니다. 간현의 난이도 5.9 루트에서 선등을 섰다가 너무 무서워서 오도 가도 못하고 한 시간 넘도록 매달려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실력이 늘어 5.10, 5.11 난이도도 등반할 수 있게 됐고, 어느 순간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결합한 새로운 알피니즘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흔히 편의상 알피니즘을 서구식 알피니즘과 한국식 알피니즘으로 구분한다. 서구식은 라인홀트 메스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처럼 소수 엘리트의 극한도전으로 요약된다면, 한국식은 부산산악연맹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위해 조성한 다이내믹 부산 희망원정대처럼 철저하고 안전한 계획과 끈끈한 대원 간의 정에 기반을 둔 원정스타일로 표현된다. 
    우석주(33)는 이러한 한국과 서구의 알피니즘을 모두 체현하며,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자신만의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차세대 알피니스트다. 그는 강원대 산악회 활동을 통해 대규모 히말라야 원정도 경험했으며, 선배와 단 둘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키르기스스탄 알라메딘산군을 탐사 등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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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2012년 에베레스트 원정이 끝난 후 동기들과 베이스캠프에 모였다. ② 2018년 키르기스스탄 알라메딘봉 등반 중. ③ 2012년 알프스 타퀼 삼각북벽을 등반하고 있다.
    “처음부터 산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멋지게 오버행을 오르는 모습에 반해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우고 싶어 멋모르고 대학산악회에 들어갔어요. 입회하고 나니 선배들이 ‘산을 오르기 위해 암벽과 빙벽을 배우는 것이지, 벽 등반을 하려고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쳐줬죠. 평일에는 매일 세미나를 갖고, 주말에는 어깨가 부서져라 짐을 메고 능선을 종주하고, 무수한 자연바위 루트를 오르내리며 선후배 간의 정과 술에 젖어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하중훈련을 하겠다고 산악회실에 있는 옛날 장비들을 하네스에 주렁주렁 단 채 인공암벽에 붙곤 했어요.” 
    우씨는 대학 생활 중 ROTC를 지원해 합격했지만, 설악산 하계훈련에서 허리를 다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됐다. 그는 “ROTC를 계속 했다면 지금처럼 산에 매진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출퇴근하는 군생활 특성 덕분에 저녁에 인천클라이밍센터를 다니며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웠다. 자다가도 양 팔에 심한 근육통이 올 정도로 미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올랐다. 덕분에 2011년 강원연맹회장배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 출전해 일반부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산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높은 산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2012년 에베레스트 동릉 등반이 티베트와 중국의 분쟁으로 연기되자 동기와 함께 알프스를 찾았다. 그는 “우리 둘 다 완전 초보였기에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계획을 재차 점검하고서야 원정을 떠날 수 있었다”며 “발레브랑쉬 설원으로 올라가 1주일 동안 타퀼 삼각북벽과 코스믹 리지를 등반하고 마지막 날엔 몽블랑 북동릉을 등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내친김에 아이거 북벽까지 오를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고산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마터호른을 오르면서 악천후를 만나 식량을 다 소진하고, 버너도 없어 눈을 수통에 담아 녹여 마시며 버틴 끝에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아, 이게 고산이구나’하고 개념 정립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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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알프스 타퀼 삼각북벽을 향해 걷고 있다.
    알라메딘 원더러스로 고유 알피니즘 실현
    알프스를 다녀온 직후, 우씨는 강원대 산악회로 구성된 에베레스트 평화원정대에 합류했다. 근 두 달 동안 학교 산악회실에서 합숙하며 훈련했다.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 수영, 턱걸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난 뒤 각 대원별로 맡은 직책에 따라 원정 관련 업무를 진행했다.
    원정대는 시간이 흘러도 현지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자 동벽이 아닌 남동릉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故아르투어 하이저가 이끄는 폴란드대와 故구리키 노부카즈의 일본대밖에 없어 루트 및 캠프 작업에 시간이 걸렸다. 캠프3까지 루트 작업을 마쳤으나 이미 10월 말이 되어 포스트 몬순에 접어들었다. 셰르파들은 더 이상 등반하지 않겠다고 했고, 폴란드대 셰르파 한 명이 사망하고 구리키가 조난하는 등 악재가 겹쳐 철수를 결정했다.
    원정대행사는 등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이듬해 자신들이 별도로 조직한 에베레스트 상업등반대(셰르파나 산악인들이 요금을 받고 국제적으로 대원을 모객해 만든 원정대)에 강원대 원정대 대원 중 최대 두 명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원정대는 내부 논의 끝에 단 한 명의 대원을 선발했다. 그가 바로 우씨다.
    “당시 국제상업등반대에는 후일 낭가파르바트 동계 초등으로 스타덤에 오른 알렉스 치콘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가 부족해 외로웠지만, 다행히 당시 베이스캠프에 머물고 있던 故김창호 대장의 0 to 8848 원정대가 많이 챙겨 줘서 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아 정상까지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봄에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후 가을에는 로체 서벽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가을 등반과는 영 인연이 없었다. 직전 해 에베레스트에서 실패한 것과 똑같이 등반이 지연되며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산 중 대학 시절에 다쳤던 허리가 다시 악화됐다.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습니다. 화장실에 한 번 가려면 이를 악물고 기어가야 했어요.”
    우씨는 귀국 후 수술을 받은 뒤 복학해 졸업하고 2017년 ㈜안나푸르나에 취직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등반에 대한 관점을 정리했다. 대규모 원정과 소규모 원정을 모두 경험하면서 각각의 장단점과 걸러야 할 것과 유지할 것,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것들을 구분했다. 그 결실은 2018년 키르기스스탄 알라메딘 원더러스 원정대로 맺게 된다.
    “사실 스스로 알피니스트를 자처하기는 부끄럽습니다. 그저 등반이 재밌고 산이 좋은 흔한 등반가 중 하나입니다. 단지 등반이란 것이 우리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민할 따름입니다. 그 고민으로 추진한 알라메딘 원정은 한국적이면서도 서구권의 장점을 받아들여 만든 가볍지만 무겁고, 재밌으면서 진지했던 등반입니다. 또한 지속가능한 등반을 위한 아이디어도 가미해 뜻이 맞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해서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는 등반 방식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로 해외 원정길이 막힌 현재는 설악산, 북한산 등지에 눈을 두고 있다. 우씨는 “국내에서도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루트, 새로운 시도 등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산에서도 늘 새로운 시도를 했던 산악인들이 있었고, 이들이 했던 것 중에서 본받을 만한 것들이 많은데 맥이 끊긴 것들이 많다. 국내 등반을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더 창의적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한국 알피니즘이 가야 할 길은 한국의 산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봤다.
    “알피니즘을 논할 때 너무 형식에 국한해 해외 고산만을 좇고 있지 않은가란 생각이 듭니다. 정작 우리 산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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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① 2013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한 우석주. ② 2012년 에베레스트 상행 캐러밴 중 동기들과 현지 마을에 들렀다. ③2012년 알프스 몽블랑 정상.
    소속 ㈜안나푸르나 
    2008 강원대학교 산악회
    2011 강원연맹회장배 스포츠클라이밍 일반부 2위
    2012 알프스 몽블랑, 마터호른 등반
    2012 에베레스트 평화원정대
    2013 에베레스트 평화원정대 2차 원정 등정
    2013 로체 서벽 원정대
    2016 요세미티 엘 캐피탄, 러버스 립 등반
    2018 키르기스스탄 알라메딘 등반
    2019 시에라네바다 인크레더블 헐크, 타키즈 락 등반
    2020 스코틀랜드 벤네비스 외 동계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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