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우리 땅 걷기] 양평 물길과 걷는 길, 57km 코스가 짧다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0.10.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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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나무나루께길의 강변길은 버드나무가 흐드러지게 춤을 춘다. 길은 흙길이라 푹신해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코로나19로 모든 활동이 줄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이 모이기 힘든 요즈음 사회 분위기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당연히 신체활동이 줄어들고 신체활동이 줄어들면 호르몬 분비도 줄어서 자칫하면 우울과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걷기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주변을 걸어도 좋고,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차를 타고 조금 멀리 야외로 나가면 기분전환에는 최고가 아닐까? 햇살이 가득한 야외를 걷는 것만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D도 만들어지니 ‘일석이조’이다. 마음 맞은 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지만 홀로 가을의 햇살과 바람을 친구삼아 오롯이 자신의 두 발에 의지해 걸으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걷기의 매력이다.
    ‘양평 물소리길’은 물 맑은 양평이 자랑하는 걷기길이다. 북한강에서 남한강으로 흑천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시골마을의 골목과 숲을 걷는다. 양수역에서 첫 번째 코스가 시작돼 신원, 아신, 양평, 원덕, 용문역을 연결하는 6개 코스는 접근하기도 쉽고 모든 코스가 10km 내외라 한나절이면 한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양평 물소리길은 양평의 역사가 자연과 함께 숨 쉬는 ‘문화유적길’, 자전거와 함께 길을 걸으며 옛 철길터널을 지나고 기차 갤러리를 경험하는 ‘터널이 있는 기찻길’, 남한강의 풍경을 한가로이 바라보며 마을과 산길을 따라 걷는 ‘강변이야기길’, 강변 버드나무 숲과 4월에는 만개한 벚꽃 터널을 지나는 ‘버드나무나루께길’. 검은 물빛의 흑천과 추읍산의 매력을 느끼며 걷는 ‘흑천길’, 양평의 자랑인 천년은행나무를 찾아 물소리와 더블어 산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용문산 은행나무길’로 총 6개의 코스이고 전체 길이는 57km이다.
    6개의 코스를 차례대로 걸어도 좋겠지만 모든 코스가 경의중앙선과 연계 되므로 개인의 상황에 맞게 코스를 선택해서 걸어도 무방하다. 6개의 코스 중에서 특히 권할 만한 코스는 3코스부터 5코스까지이다.
    물길이 들려 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3코스의 시작지점인 아신역으로 향한다. 태풍과 태풍 사이 맑게 갠 날이라 그런지 유독 하늘이 예쁘고 맑다. 경의 중앙선 창밖으로 녹색의 물결이 춤을 춘다. 회색빛 도시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다. 벌써 가슴이 뛴다. 생동감이 가득한 초록 들판을 만나러 가는 시간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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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나무나루께길의 백미인 배다리 주변의 아름다운 남한강 풍경
    3코스, 강변이야기길
    아신역에서 아신2리 마을로 들어서니 드문드문 자리한 집들이 참 정겹다. 논에는 벌써 벼들이 익어가고 있다. 바람에 출렁거리는 벼를 바라보니 추석이 가까이 왔음이 느껴진다. 마을을 지나 작은 산으로 들어선다. 무성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걸러 주니 그늘이 시원하다. 바람이 내 곁에 머문다. 뜨겁고 따가웠던 강렬한 여름 햇살이 어떻게 이렇게도 부드럽고 향기로운 가을 햇살로 변했을까?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산길을 내려와 잠시 마을길을 걷는가 싶었는데 다시 산길. 흘러가는 바람에 물소리길 리본이 펄럭거린다. 밤새 이곳을 지나가는 이를 기다렸던지 반가운 몸부림이 격하다. 
    산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물소리길 인증대가 있다. 인증수첩이 없어서 가지고 있던 책의 빈 페이지에 스탬프를 찍는다. 아주 사소한 이벤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번거롭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스탬프를 찍는 순간 설렘과 흥분감이 나를 감싼다.
    나무로 우거진 산길이 끝나니 옥천레포츠 공원의 축구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바로 앞에는 그 유명한 옥천냉면. 대학시절 은사님께서 옥천냉면의 동그랑땡을 무척 좋아하셔서 모시고 왔던 추억이 성큼 앞선다. 대학시절의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징검다리로 강을 건너야 하는데 물이 불어서 강을 건널 수 없다. 깊은 산도 아니어서 길이 모두 보이니 징검다리로 건너지 않고 조금 더 내려가서 다리로 건넌다. 자전거도로라 바닥이 잘 관리되어 있어서 걷기는 더욱 좋다. 주말이면 엄청난 숫자의 라이더들과 걷는 이들로 붐비는 길인데 평일이라 너무 조용하다. 오늘만큼은 이 길의 주인은 나다.
    곤충박물관 이정표도 지나고 남한강 물길을 따라 쭈~욱 걷는다. 장마와 태풍으로 여느 때보다 수량이 풍부해서 강의 풍경은 더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남한강의 모습에 흠뻑 취해서 걷다 보니 들꽃수목원 곁을 지나고 양근성지.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성당은 크지도 작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절제의 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아쉽게도 미사시간에만 개방을 한다. 문 밖에서 외부 모습만 사진으로 담는다.
    힘들지 않아도 적당히 쉬어 주는 것이 피로를 누적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양근성지 앞의 카페에서 달콤한 스무디를 마시며 마음도 몸도 정리를 하고 쉰다. 남한강 길만큼이나 예쁘게 가꾸어진 정원에서 주인장의 마음을 느낀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양근섬. 지도에 표시된 길은 아닌데 물소리길 표식이 이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경로가 바뀌었나보다. 산책로와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걷는 도보 여행자들은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양근섬을 지나고 천변을 따라 걸으니 어느새 양평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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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이야기길이 시작되는 아신2리. 물소리길 안내표식이 잘 되어있어서 길 찾기가 쉽다.
    4코스, 버드나무나루께길
    버드나무나루께길은 이름부터 무척이나 정겹다. 나루께는 나루터라는 의미, 즉 버드나무 나루터가 있는 길이다. 3코스의 설렘은 4코스에서도 계속될까? 4코스는 3코스와는 달리 반은 남한강을, 반은 남한강 지류인 흑천의 물길을 따라 걷는다. 지난여름 자전거 라이딩으로 왔던 흑천의 묘한 매력에 빠져서 다시 이 길을 오고 싶었다. 남한강 자전거길로도 유명한 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고요한 풍경에 묻어든다.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소리가 스친다. 양평역을 지나 강변도로를 타고 갈산체육공원에 들어선다. 이미 익숙한 길이라 마음은 저 멀리 걷는다, 갈산공원에서 강가로 들어서니 바로 곁에는 강이 흐른다. 버드나무들이 드리워준 그늘 아래, 바람을 즐기며 흙길을 걷는다.
    춤추는 버드나무를 벗 삼아 길을 걷다 보니 배다리이다. 이번 장마로 물이 너무 불어서 출렁거리는 배다리를 건너갈 수 없다. 자전거도로로 올라갔다가 다시 강가로 내려오는 수고로움을 겪고서야 건너편으로 들어선다. 나룻배도 있고 그네도 있다. 오랜만에 그네를 타고 굴러보지만 마음처럼 하늘로 오르지 않아서 못내 섭섭하다.
    이번 장마에 꽃밭은 모두 엉망이 되었다.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드나무와 함께 친구하며 걷다 보니 영혼까지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움을 너무 즐겼던 걸까? 아직 제대로 굳지 않은 진흙땅에 발이 푸욱 빠졌다. 빼려고 힘을 쓰니 발은 더욱 깊이 들어간다. 다행히 신발만 진흙 옷을 한가득 뒤집어쓰고 신발 안으로는 진흙이 들어가지 않았다. 또 다시 발이 빠질까봐 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걷는 길 곳곳에 아름다운 액자에 쓰인 글귀들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로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난 항상 네 편이야’ ‘아무런 조건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길을 걸으며 감사하는 마음도 점점 커진다.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강가에서 자전거도로로 올라선다. 갈산공원을 지나며 줄 서 있는 벚나무 행렬은 현덕교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진다. 벚꽃이 피는 시기엔 인산인해로 조용히 걷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길을 홀로 걸으니 발걸음이 더욱 신이 난다. 가을로 들어서니 꽃 대신에 잎이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를 만든다. 귀가 즐거워진다. 물소리길의 낭만이 가득하다.
    현덕교를 지나서 흑천을 따라 걷는다. 이곳 모두 벚나무길이다. 지난봄 남한강 자전거길 종주 라이딩으로 바로 이 길에서 꽃비를 맞았다. 꽃비를 맞으며 행복했던 추억을 잠시 꺼내본다.
    벚나무길이 끝나니 흑천교. 그리고 그 유명한 신내해장국거리이다. 식사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바로 곁의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갈증을 푼다. 걷다가 잠시 쉬는 시간은 꿀맛이다.
    이젠 마을 사이 길을 지난다. 바로 곁에는 집들이 있다. 고개만 돌려도 집안의 사람들이 보인다. 집안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온다. 구수한 삶이 있는 길이다. 물소리길 도보인증대를 지나고 흑천길을 따라서 원덕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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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천길. 현덕교를 지나면 흑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벚나무 길이 이어진다. 4월이면 흐드러지게 벚꽃이 핀다.
    5코스, 흑천길
    물소리길 전 코스 중에서 가장 짧은 길로 흑천과 추읍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원덕역을 출발해  딸기농장이 가득한 동네를 지나니 흑천과 추읍산이 나란히 곁을 지켜준다. 가로수는 온통 벚나무. 걸어가는 이의 길동무가 되어준다.
    삼성교에는 솟대들이 반겨준다. 장마에 태풍에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솟대는 몇 개 되지 않지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누군가 따사로운 손길로 만져 주겠지. 삼성교를 지나니 낯익은 동네이다. 여름에 자전거 라이딩으로 왔던 ‘무인찻집 별내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주인장에겐 연락하지 않았지만 무심코 별내이야기로 발길을 옮긴다. 주인장이 계시면 차 한 잔 마시고 가야겠다. 별내이야기로 들어서니 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신 주인장이 반겨준다. 그녀는 양춘모 여사.
    카페는 마치 시골집 같다. 지난번에 몇 시간 눌러 앉아서 놀다갔는데 오늘은 잠시 차 한 잔만. 주인장인 양춘모 여사는 귀농 전에는 프로덕션의 PD였다고 한다. 그녀가 고향으로 내려와 정착하고 무인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수익금은 양평의 문화 활동에 쓰인다. 차 한 잔에 3,000원. 걷기 여행자들에겐 시원한 청량음료만큼이나 반가운 장소이다. 물소리길을 걷는 여행자라면 꼭 별내이야기에 들러 쉬어가기를 추천한다.
    별내이야기에서 나오면 수진원농장이 앞을 가로막는다. 물소리길은 농장 옆의 샛길로 들어서야 한다. 흑천 바로 곁에서 흙길을 걷는다. 무장애길로 계단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이었는데 지난 태풍으로 길이 많이 유실되었다.
    백산교를 지나서 흑천 옆의 길로 내려선다. 강변 산책길이다. 선선하게 부는 흑천의 바람이 도보객들의 피로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이제 용문역이 저만치 보인다. 용문장이 열리는 날(5일, 10일)이라면 시골장을 들러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
    물소리길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초록의 대지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단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길이다. 이번 주말엔 모든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고 경의중앙선을 타고 물소리길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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