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티 로드 | 대하] “맛있게 ‘대하’면 되겠니?”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조선일보DB
    입력 2020.10.07 09:53

    가을 제철…서해 남당항의 대하

    가을이 무르익고 덩달아 먹을거리도 무르익었다. 산이고 바다고 어딜 가나 가을 먹거리가 풍성해 전국의 식도락가는 물론, 주당의 입이 근질근질해지는 때다. 
    새로 연재하는 ‘테이스티 로드’는 제철 맞은 전국의 맛을 찾아 소개한다. 그 첫 번째로 이번 달에는 가을 바다의 진미 대하를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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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쪼름한 대하장은 뜨거운 쌀밥과 함께 먹으면 반찬으로 그만이다.
    수족관 대하는 양식
    ‘가을 대하는 굽은 허리도 펴게 한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집안에만 있느라 허리가 굽어 간다는 사람이 많다. 이런 시기에 굽은 허리를 펴준다니 대하는 여행과 식도락에 목마른 이에게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내는 보약인 셈이다. 
    대하는 이름 그대로 ‘큰大 새우蝦’를 말한다. 별명도 있다. 해로海老다. 등이 굽은 모습이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과 비슷하다고 달린 별명이다. ‘바다 해海’의 음이 ‘함께 해偕’와 같아 새우를 ‘해로偕老한다’에 빗대어 쓰기도 한다. 문인화에 새우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의미에서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의 남당항은 조그만 포구지만 미식가에게는 ‘성지’이다.  남당항 앞바다가 천수만. 천수만은 안면도를 방패삼은 만이다. 생물이 살기 좋은 천혜의 환경 덕분에 계절마다 주꾸미, 전어, 새조개 등 다양한 어패류가 잡힌다. 천수만은 손꼽히는 대하 서식지다. 우리나라 서해 연안에는 80여 종의 새우가 살고 있는데, 그중 대하는 20~30cm까지 자라는 대형 새우다. 
    예전에는 자연산 대하를 바닷가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1970년대 천수만에서 잡은 대하는 대부분 일본으로 팔려나갔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차량 소유가 늘어나면서 도시 사람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대하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당항에는 파라솔을 펴놓고 해산물을 파는 포장마차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대하축제를 열 만큼 명성을 알리게 되었다(올해 대하축제는 코로나 사태로 취소). 
    남당항에서도 살아 있는 자연산 대하는 구경하기 어렵다. 몸값이 귀해서이다. 만약 수족관에 살아 있는 새우가 있다면 99.9% 자연산 대하가 아니라고 보면 된다. 자연산 대하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순간 죽는다. 그나마 가을에는 조금 더 오래 산다고 하지만 소비자에게 전해지기까지 거의 100%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대부분 잡자마자 급속 냉동시킨다. 
    그렇다면 수족관에서 팔짝팔짝 헤엄치는 것들은 뭘까. 바로 양식한 ‘흰다리 새우’이다. 언뜻 보면 자연산 대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뿔(액각), 수염, 눈, 다리, 꼬리의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 가령 뿔이 코끝보다 길면 대하, 짧으면 흰다리 새우이다. 수염도 대하가 훨씬 더 길다. 대하가 눈이 들어간 반면, 흰다리 새우의 눈은 툭 튀어 나와 있다. 다리의 색도 대하는 붉은색, 흰다리 새우는 투명한 흰색이다.   
    그럼에도 흰다리 새우가 대하로 둔갑한 배경에는 양식 환경과 소비자의 선호도 등의 요인이 있다. 한때 대하도 양식했었으나 2000년 후반, 대하에 치명적인 흰점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양식업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와중에 흰다리 새우가 흰점바이러스에 강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양식업자들은 대하 대신 흰다리 새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흰다리 새우는 바이러스에 강할 뿐 아니라 대하보다 성장속도가 빨라서 사료값을 아낄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았다. 
    이렇게 자연산 대하는 점점 양식 흰다리 새우에 자리를 뺏기게 되었고 지금은 으레 흰다리 새우가 대하로 알려지게 되었다. 소비자도 수족관에 살아 있는 새우를 선호하는 탓에 ‘진짜’ 자연산 대하는 아는 사람만 맛보는 특미가 되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흰다리 새우가 자연산 대하에 비해 결코 맛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냉동된 자연산 새우보다 맛이 좋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맛 차이가 별로 없으니 같은 가격에 양 많은 놈이 더 좋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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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굵은 소금 위에 놓고 구운 대하 구이. 대가리를 모아 튀겨 먹은 게 ‘신의 한 수’이다.
    한 대가리에 소주 한 잔, 칼칼한 대하탕으로 마무으~리!
    자연산 대하를 먹느냐, 양식 흰다리 새우를 먹느냐는 결정은 소비자의 몫이지만 먹는 방법은 똑같다. 구워 먹고 튀겨 먹고 회로 먹고 끓여 먹는다. 하지만 미식가는 “모름지기 대하는 소금구이가 정석”이라고 말한다. 
    큰 냄비에 굵은 소금을 깔고 새우를 얹는다. 뚜껑을 닫고 불을 붙이면 끝이다. 살아 있는 흰다리 새우는 뜨거운 열에 몸을 비틀면서 타닥타닥 팝콘 튀기는 소리를 낸다. 반면 자연산 대하는 그런 재미는 없다. 
    크기와 양에 따라 적당하게 구웠다 싶으면 뚜껑을 연다. 비릿하고 짭짜름한 바다향이 수증기와 함께 확 올라온다. 침샘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따로 준비할 것은 없다. 초고추장 하나만 놓고 ‘먹방’ 시작이다. 
    고운 주황색 대하의 대가리를 가위로 잘라낸다. 모름지기 해산물은 내장이 맛있는 법, 새우는 대가리에 내장이 다 들어 있다. 통째로 먹어도 상관없지만 대가리만 따로 모으는 이유가 있다. 대하구이의 화룡점정, 이것은 뒤에 밝히겠다. 
    대가리를 제거하고 껍질을 벗긴다. 새우를 오래 익히면 껍질이 살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삼겹살 굽기 달인의 노하우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굽는 것이라면 대하 굽기의 달인은 속은 잘 익고 껍질은 잘 까지는 타이밍을 잘 맞추는 이다. 이른바 ‘상남자’ 스타일은 이것에 상관없이 껍질째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사실 새우 껍질에 영양 성분이 많고 소금기도 잘 배어 있어 술안주로는 껍질째 먹는 게 더 좋다.  
    예전 남당항의 한 식당에서 대하를 먹었을 때 주인장은 “가을대하는 노인한테는 좋고 총각한테는 해롭다”고 말했었다. 허리 굽은 새우가 노인의 굽은 허리를 펴줄 만큼 영양가가 많지만 그 때문에 혼자 사는 총각한테는 ‘외로운 밤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는 농담이었다. 그때는 총각이어서 못내 서운했지만 지금은 결혼했으니 마음껏 먹어도 된다. 많이 먹고 칭찬 받아야겠다.  
    담백하고 고소한 대하구이는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새우에 많이 함유된 키토산과 타우린 성분은 간 해독에 좋다. 대하 회도 제철에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흰다리 새우는 생물을 바로 잡아 회를 만들 수 있지만 잡으면 죽는 대하는 대하잡이 배가 들어오는 타이밍을 잘 맞추면 먹을 수 있다. 
    대하 회는 단단한 속살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난다. 진짜 맛을 아는 이는 구이보다 회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여기에 짭조름한 대하장을 곁들이면 푸짐한 대하 세트가 완성된다. 
    대하구이로 배와 흥을 채울 즈음 히든카드가 등장한다. 바로 대하 대가리 튀김이다. 따로 모아두었던 대가리를 모아 버터를 입힌 다음 바싹 튀겨내는 식이다. 대가리 속 내장이 잘 튀겨져 고소하다. 딱 새우깡 맛이다. 이게 또 ‘한 대가리에 소주 한 잔씩’이다. 
    이렇게 대하 안주에 술 마시다 보면 정신줄 놓기 일쑤다. 이때쯤엔 대하탕을 구원 등판시켜야 한다. 제철 새우와 꽃게에 무, 콩나물 등 갖은 채소를 넣고 된장·고추장 풀어 끓여낸 대하탕은 속풀이에 그만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엄청난 ‘술 도둑’이니 주의할 것. 
    식당 가기도 꺼려지는 코로나 시대, 이번 주말엔 대하를 주문해 집에서 대하 파티를 즐겨보자. 서해안 선창가의 낭만은 없겠지만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가을 미식회를 열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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