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tch by Pitch] ‘설악산 없는’ 설악산 하계 훈련!…등반보다 값진 ‘동반’, 양손 가득했던 후배사랑

  • 글·사진 대학산악연맹 권시인(중앙대) 재학생 회장
    입력 2020.11.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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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일. 속초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마친 후 찍은 기념사진.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산악연맹은 명실공히 한국 알피니즘의 산실이자 건전한 산악문화 창달에 기여해 온 핵심 단체다. 최근 MZ세대의 등산 열풍에 힘입어 대학산악연맹도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번 호부터 ‘한 피치 한 피치Pitch by Pitch’ 앳된 오름짓을 이어가는 대학산악부원들의 진솔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를 연재한다._편집자주
    코로나19로 대학산악연맹 활동이 확연히 줄었다. 원래라면 큰 산 곳곳에서 대학마다 구호를 외치며 암벽을 오르고, 거대한 능선을 며칠이고 탔을 테지만 들쭉날쭉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선뜻 장기 훈련을 계획하기 어려웠다.
    이번 연맹 공식 하계 아카데미도 인수봉에서 작게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재학생 회장으로서 꼭 설악산 하계 등반을 기획하고 싶었다. 시간과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만 모인다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는 시점을 틈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대구경북 학생산악연맹(이하 학산)도 설악산으로 들어간다고 해 우리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큰 행사는 주로 OB 형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막상 우리끼리 등반을 기획하려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각 학교 참가자를 파악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설악산 야영장은 코로나19로 인원 제한이 걸려 연맹 차원으로 신청한 것은 전부 취소됐고, 등반지 예약도 매우 어려웠다.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경일대 OB 동욱이형(15학번)이 나서서 참가자도 파악해 주고 등반 루트 예약도 알아봐 줬다. 회장이 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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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일. 야영장에서 이화여대 신입생 빌레이 교육 중. 왼쪽부터 권시인(중앙대 18), 정명해(이화여대 20), 박도원(이화여대 19), 김정현(이화여대 19).
    8월 2일
    어깨 짓누른 책임감에 남몰래 흘린 눈물

    우여곡절 끝에 기획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8월 2일 12시 30분. 우린 속초 고속터미널에 모였다. 터미널 바로 옆의 마트에서 이화여대에서 제시한 식단표를 토대로 일주일치 식량을 샀다. 표를 보고 인원수와 식수일에 맞춰 물건만 구매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살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 빠르게 장보는 것도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전국에서 부원들이 속속 집결했다. 반가운 얼굴들. 일단 모인 사람들이 먼저 버스를 타고 야영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버스에는 사람이 없어 짐을 실어도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었다.
    야영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장마를 대비해 배수로도 깊게 팠다. 학산에서도 하나, 둘 따로 온 부원들이 집결했다.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또 야영지를 구축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됐다. 
    계명대에서 들고 온 커다란 타프 아래 20여 명이 옹기종기 앉아 비좁지만 즐거운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에는 개인 정비. 텐트에서 쉬거나 짐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밤이 조금 더 깊어지자 삼삼오오 모여 조금씩 술을 마시는 기척이 느껴졌다.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홀로 텐트 안에 누워 체력도 보충하고 생각도 정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첫 발을 뗀 하계 등반 첫 날. 사실 한 일은 별로 없었다. 장보고 밥 먹고 텐트 치고 짐 정리. 
    늘 야영할 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유달리 오늘따라 힘들고 버거웠다. 재학생 회장으로서 처음 기획해 본 대형 훈련이기에 그런 것 같았다. 기획하면서 부족했던 점, 오늘 하루 중에 또 미숙했던 순간들이 계속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흘러내렸다. 
    하필 그 순간, 밖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울음소리를 꾸역꾸역 안으로 삼키고 자는 척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한흠이형이 전화해 나는 이제 깨어난 듯 기지개를 펴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있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회오리쳤던 우울감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비우니 언제 그랬냐는 듯 훌쩍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우울감과 함께 시간도 같이 사라졌다. 계속 자리를 지키다 보니 어느덧 임원진 중 한 명인 도완이(숭실대 19)와 단 둘이 작은 타프 밑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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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일. 속초 해수욕장 방문 당시 참여했던 국립등산학교의 인공등반 체험교실. 등반자 권시인, 아래 대기 중인 사람은 박도원.
    8월 3일
    일주일치 식량이 안주로

    어제 흘린 눈물은 오늘 내릴 비의 예보였나 보다. 결국 비로 인해 설악산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래도 교육은 해야 하니 야영장 내에서 신입 부원들을 대상으로 기초 교육을 진행했다. 이화여대 부원들은 거의 다 처음인지라 기본 매듭과 확보 교육을 진행했고, 나머지는 선등법과 추가적인 매듭을 알려줬다.
    앞으로 암벽을 오를 때면 평생 알아두고 숙달해야 할 내용들이라 무척 중요한 순간, 야속하게도 눈꺼풀은 걷잡을 수 없는 무게로 내리 감겨왔다. 술은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밤새 이야기를 나눈 탓에 피곤이 몰려왔다. 어찌어찌 계획대로 오전 내에 교육은 마쳤지만, 내가 선배고 회장인 만큼 더 책임감을 갖고 교육에 임했어야 했다.
    오후에는 가벼운 산행이라도 할까 했지만 이젠 설악산 전체가 입산 통제됐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꼭 산악부라고 산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기에 버스를 타고 동해바다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해수욕장에 도착하자 우리의 눈길을 끈 건 푸른 동해바다가 아니라 한편에 들어서 있던 인공등반 체험장이었다. 마침 손이 근질근질한 참이라 모두들 이렇게라도 등반을 하자며 홀드를 붙잡았다.
    우리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도 쑥쑥 올라가는데 산악부로서 추락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암벽화가 아닌 샌들이라 발을 오롯이 쓰기 어려웠고, 심지어 홀드도 미끄러웠다. 왠지 등 뒤로 다른 사람들의 못미더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추락하면 위신도 추락한다는 생각에 한껏 자존심을 불태워 악착같이 완등에 성공했다.
    충청북도 연맹에서 형이 한 분 오셨다.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석현형(청주대 17)이 직접 요리해 주셨는데 평소 산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진수성찬이었다. 정말 감동했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음식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 때문에 늘 맛없는 것만 먹어야 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엄청난 향의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이니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있는 저녁이 있었기 때문인지 빈 술병은 빠르게 늘어났다. 결국 옆 가게에서 추가로 더 사오게 되었고 다들 엄청나게 먹고 마신 뒤 늦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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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 국립등산학교 내부 실내 클라이밍장. 왼쪽에서는 실제로 빌레이를 하기 위해 알려 주고 있으며 오른쪽에서는 한 명은 빌레이를 보고 한 명은 등반을 하는 중이다.
    8월 4일
    따뜻한 숙소와 샤워, 이곳이 천국!

    계속되는 비 소식에 어김없이 입산 통제 소식이 날아왔다. 야영장에서의 교육도 한계가 있으니 이번에는 국립등산학교를 찾기로 했다. 우리 인원이 많았고, 야영장에서 생각보다 가까워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국립등산학교에는 실내 클라이밍장이 있어 그곳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서로 빌레이를 봐주고 선등자 확보 연습도 했다. 설악산에 와서 등반을 한 번도 못 했던 탓에 사람들 모두 운동에 정신이 팔려 여기저기 붙기 시작했다. 단피치 루트가 있는 곳은 줄 서서 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친구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분은 올라가다 무서워 포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등반에 함께했던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지만 될 때까지 노력 결국엔 완등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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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 저녁. 설악산장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버스를 타고 먼저 야영장으로 돌아갔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폭우 소식으로 야영장을 폐쇄하게 되었으니 우리 모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오후 6시 정도 되어 빠르게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들 듯했다. 특히 대구 쪽은 버스가 끊길 수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중 얼마 전 창완형(단국대 91)께서 “설악산장 사장님과 아는 사이니 필요하다면 연락하라”고 하셨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형께 전화로 “설악산 하계 등반을 들어왔는데 오늘 야영장에서 나가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형은 이미 눈치를 채셨다. “설악산장 사장님 전달할 테니 거기서 하루를 보내라”고 해주셨으니… .잘 곳이 해결되었으니 빠르게 짐만 싸면 된다. 다들 저녁도 못 먹고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국립공원공단 직원 분께서 트럭과 함께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그 덕에 트럭으로 설악산장까지 짐을 빠르게 옮길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한 달여 전 우리 연맹과 공단이 함께 천화대 등반을 진행했었는데 그때 내가 갔던 것을 기억하시고 와주셨다고 한다. 당시엔 정신이 없어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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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5일. 설악산장 뒷문에서 본 전경.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도움의 손길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시간과 체력을 많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준비하려던 때가 밤 10시쯤 되었을 것이다. 아직 숙소에 도착하지 못한 인원이 꽤 되어 먼저 온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했다. 휴식을 취하며 따뜻한 물로 그간의 피곤을 씻어냈다. 따뜻한 숙소와 샤워 공간, 쾌적한 부엌이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짐을 정리하며 식량을 챙겨봤더니 일 주일분이라 그런지 양이 엄청났다. 군말 없이 메뉴를 생각해 저녁을 차려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똑같이 피곤했을 텐데 투덜거림 하나 없이 해줘서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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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 국립등산학교에서 등반 중 왼쪽에서 형들이 알려 주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한동욱, 박대현, 박도원.
    어느 정도 개인 정비가 끝나자 술판이 다시 벌어졌다. 잘 공간도 충분하니 다들 엄청나게 먹기 시작했다. 중간에 석현이 형이 잠깐 나갔다 왔는데 우리가 ‘회와 수박이 먹고 싶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정말로 사오셨다. 형이 “산에 갈 때는 언제나 후배들을 위해 양 손 가득 들고 가는 것”이라고 감동적인 말을 하셨다. 이렇게 후배를 위하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수박에 음료를 넣어 화채를 만들었다. 화채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행복한 마음과 함께 술자리는 밤새 계속되었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뜨게 되었다. 흔한 술자리였는데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
    창완형이 병태형(강남대 91)과 대구에 계신다며 오라고 하셔서 학산과 함께 대구로 내려가기로 했다. 학산은 오전 9시 40분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여 아침도 먹지 않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비가 꽤 내렸다. 축축한 몸과 짐을 안고서 버스를 탔고, 5시간 정도를 달린 뒤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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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일. 속초해수욕장.
    고마운 선배님들 친구들… 잊지 못할 여름
    유래 없는 장마로 설악산 소공원에 발 한 번 들이지 못했던 하계 등반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순간들이 즐거웠기에 만족한다. 회장이 되고 처음으로 기획했던 것이었다. 서투른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옆에서 늘 형들이 조언을 해주고 도움을 주었기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난 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내게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은 형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또한, 후배들은 너무 잘 따라 주었고 나서서 행동하는 모습들에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등반도 아쉽지만 내가 행동을 잘하지 못했던 것들이 아른거려 그게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다음엔 날이 좋아 등반도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도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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