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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셰르파 스토리 ‘눈표범’ 앙 리타]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10회 세계 최다기록

글 서현우 기자
  • 입력 2020.11.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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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5월 7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앙 리타 셰르파(왼쪽)와 피터 하미에슨. 사진 게리 로치.
1983년 5월 7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앙 리타 셰르파(왼쪽)와 피터 하미에슨. 사진 게리 로치.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로 등정한 이후 ‘무산소’ 여부는 산악인들의 등반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로 자리매김했다. 고산등반 최대의 난적인 산소 결핍은 기구를 통해 해결하면 비교적 등반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가이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이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른 이는 200여 명에 지나지 않으며, 무산소 한국인 등정자도 2013년 고故김창호 대장, 서성호 대원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토록 어려운 무산소 등정을 10차례나 성공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셰르파가 있다. 전설적인 셰르파앙 리타다. 앙 리타는 지난 9월 21일 향년 72세의 나이로 오랜 지병인 뇌부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앙 리타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 외곽 조르파티 지역의 딸의 집에서 잠든 채로 사망했다. 시신은 카트만두의 곰바사원으로 옮겨진 뒤 셰르파 전통에 의해 9월 23일 화장됐다.

 한 조문객이 앙 리타 셰르파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 프랑스24
한 조문객이 앙 리타 셰르파의 시신이 담긴 관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 프랑스24
앙 리타는 1948년 에베레스트 인근인 네팔 동부 일라중Yillajung의 산악 마을 타메Thame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등산 장비를 옮기는 포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포터에 머물지 않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고산 등반 가이드가 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결과 앙 리타는 다른 셰르파들에 비해 이른 나이인 20세에 처음 8,000m급 고산인 초오유(8,188m) 정상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에베레스트, 로체,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등 유명한 8,000m급 고산을 포함해 히말라야 일대의 수십 개 산 정상에 올랐다. 8,000m급 고산을 등정한 횟수는 총 18번이다. 이처럼 뛰어난 등산 기술을 갖고 있어 동료 셰르파들은 그를 ‘눈표범Snow Leopard’이라 불렀다.

2017년 기네스북 인증서를 들고 있는 앙 리타 셰르파. 사진 헤드토픽
2017년 기네스북 인증서를 들고 있는 앙 리타 셰르파. 사진 헤드토픽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동계 등정


앙 리타가 처음 에베레스트를 오른 건 1983년 5월 7일이다. 이후 1996년 5월 23일 마지막 정상 등정까지 13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총 10회 성공했다. 10번의 등정 중 8번은 남동릉 루트를 이용했고, 나머지 두 번은 각각 남릉과 북릉 루트를 이용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기록으로 지난 2017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또한 앙 리타는 무산소, 유산소를 포함한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도 보유했다. 리타는 1990년 6번째 등정에 성공하면서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 기록을 갱신한 뒤, 1996년 10번째 등정을 기록하며 10년간 에베레스트 최다 등정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 기록은 2000년 5월 11일 아파 셰르파가 11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깨졌다.


또한 앙 리타는 1987년 12월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동계 등정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등반은 한국의 허영호 대장과 함께했으며, 허 대장은 에베레스트 한국 제2등이자 동계 초등을 기록했다. 앙 리타에 따르면 허 대장과 앙 리타는 등반 중 악천후로 원정대와 분리돼 정상 바로 아래인 8,600m 지점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밤새 유산소 운동을 했다고 한다.

앙 리타의 가족과 친척들이 사원에서 앙 리타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사진 니란잔 세레스타
앙 리타의 가족과 친척들이 사원에서 앙 리타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사진 니란잔 세레스타

앙 리타는 1996년 은퇴 후 히말라야 환경을 보존하고 생물 다양성을 홍보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건강 문제로 활발히 활동하진 못했고, 말년을 자녀들에게 의존하며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네팔등산협회 등에서 보조금을 받았으나 정부 차원의 지원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트만두포스트>에 의하면 2012년 셰르파로 일하던 장남이 고산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건강이 크게 악화했으며, 2017년 뇌부종의 증세가 악화돼 몇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네팔 각계에선 추모와 슬픔의 말이 이어졌다.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 네팔 총리는 트위터에 “그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고 적었다. 앙 체링 네팔등산협회 전 회장은 <카트만두포스트>에 “그의 죽음은 네팔과 등산인 사회에 크나큰 손실이다”고 말했다. 앙 리타는 국제적 명성을 얻은 최초의 셰르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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