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촌일기⑥] 포기하는 게 많을수록 시골살이는 편하다

  • 글·사진 이남석 자전거 여행가
    입력 2020.11.11 09:41

    일주일간 자전거 여행 다녀오는 동안 고양이는 집을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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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에 토사가 쓸려나간 길을 보수하고 있다. 우리 집은 산골 중의 산골이라 비포장 길을 거쳐야 올 수 있다.
    긴 장마가 지나자 도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줄었다. 숲 사이로 새끼를 몰고 다니던 새들도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 밤이 되면 부엉이 우는 소리가 골짜기에 선명하게 퍼지고 알밤이 떨어지기 시작한 밤나무 밑으로 다람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샘가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추석이 지나자 아침 기온이 크게 떨어지고 숲은 더 무거워졌다. 이제 한 번만 더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면 단풍이 들 기세다.
    얼마 전,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가 퇴임한 지인이 찾아왔다.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소회를 풀어놓았다. 승객이 모두 내린 기차의 객차에 혼자 앉아 있는 것처럼 직장을 떠난 아쉬움과 서운함이야 똑같았지만, 이후의 삶에 대한 철학이나 출발하는 방식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며, 좋은 땅을 찾는 방법을 물었다. 도시를 떠나 향촌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이 들어서는 사람 마음이 변화되기가 쉽지 않은데, 속내를 털어놓은 그에게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먼 길을 달려온 사람에게 가벼운 말로 응대할 수도 없었다. 다만 포기하는 것이 많을수록 시골 혹은 산에서 편안하다는 말만 했다. 이후 고향 제천에 내려가 양지바르고 물이 잘 나는 곳에 땅을 장만했다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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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산골 집을 벗어나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과거 인도 라다크, 네팔 히말라야, 남미 안데스산맥, 유럽 피레네산맥을 자전거로 여행했으며 퇴직 후 지금은 강원도 홍천 공작산에 정착했다.
    친구 되어준 야생 고양이

    보름 전 산에서 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 봤다. 혹시나 해서 먹이를 놨더니 규칙적으로 와서 먹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아예 집 마루 밑에 움을 텄다. 아내가 오는 주말을 제외하면 항상 혼자 있는 내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비록 말을 섞지는 못하지만 서로 의지하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간 단양 자전거 투어와 명절을 쇠고 돌아오니 야생 고양이의 습성은 버리지 못했는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다.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니 그나 나나 무엇인가에 구속되어 사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패어나간 길을 보수했다. 일부만 보수하고 미루다가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머지 구간을 보수했다. 맨흙을 퍼다 덮었기에 또 비가 내리면 허사였다. 풀도 나고 차량이나 사람이 밟아야 어느 정도의 비에도 견딜 수 있다. 매년 여름이 끝나면 행사처럼 기다리는 도로 보수작업이 올해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희망 사항일 뿐이다. 내년봄에는 배수로를 좀 더 촘촘하게 내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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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싸리재 임도를 달리고 있다. 오르막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으나 내리막은 비포장길이라 짐을 실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기에 위험했다.
    붉은 고추를 따려고 밭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난봄 묵은 밭을 일구고 부식토를 섞었다. 거름을 주지 않았는데도 왕성하게 자란 고추는 기대보다 훨씬 많은 열매를 달았다. 하지만 밭 주변 나무를 베어내지 않은 탓에 잎이 무성해지면서 그늘을 만들었다.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할 작물이 음지에 있으니 줄기와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촘촘히 달리지 않았다. 절기가 변하면서 해가 지나가는 길을 예측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게 장마가 지나가면서 붉어지기 시작한 고추는 조금씩 수확을 했지만, 또 한숨이 나왔다. 완전히 무농약으로 하겠다며 일절 약을 뿌리지 않자 이번에는 벌레들이 달려들었다. 고추의 향긋한 냄새를 맡고 곤충들이 들이닥쳐 익은 고추만 골라 흠집을 냈다. 
    “밭에 가서 고추를 딸 때면 꼭 깊은 산에 간 기분이야.”
    “아니 왜요?”
    “머루나 다래 따듯 산에서 자라는 고추를 따는 느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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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리재 임도에서 야영했다.
    아내와 나는 흠집 난 고추를 반으로 자르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지만, 농약을 치지 않고는 무슨 작물이든 제 양을 수확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었다. 농사를 만만하게 본 것도 원인이었다. 다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에 가을빛이 들던 날 아내가 모처럼 제안을 했다. 단양에서 열렸던 자전거 랠리 코스를 달려보자는 것이었다. 일명 자전거 캠핑. 그냥 평지를 달리는 것보다 새로운 코스를 경험하자는 제안인데 곧장 대답하기 힘들어 뜸을 들였다. 빈 자전거로야 이틀이면 되겠지만 야영장비와 취사도구를 싣고 임도를 가려면 보통 결심과 용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여행이었다. 
    더구나 단양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적 있었던 나로서는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여행 기간을 더 길게 잡고 준비만 잘하면 못 할 것도 없다는 말에 결국 지인 두 명을 더해 도합 네 명이 차에 자전거를 싣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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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백석리 사당의 산신령 초상.
    야영으로 임도 자전거 여행하기
    단양 공설운동장에서 그간의 결의를 확인한 후 랠리 선수들이 달리던 코스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그런데 출발하고 얼마 안 가서 어째 진행 방향이 이상했다. 아내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랠리코스의 GPS 트랙을 반대로 진행했던 것이다. 코스를 반대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 밀고 나갔다. 자잘한 고개를 넘고, 오후에 도로의 가장 높은 고개인 죽령 정상에 오르자 모두 등과 어깨에 땀이 배고 감정은 고조되었다. 
    첫날은 도로만 이동하다가 날이 저물어 외딴 공원에서 야영했다. 다음날 임도로 들어서자 이제 올 것이 왔다며 모두 환호했다. 최소한 20㎏ 이상의 짐을 자전거에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와 아내뿐이었다. 
    어느 구간에서는 위험하기도 하고 힘은 들었지만 처음 경험하는 임도 자전거 여행이라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달릴 때도 유쾌했으며 쉴 때도 즐거웠다. 임도를 오르내리는 경사가 급해 오르막에서는 힘이 많이 들고 반대로 내리막에서는 위험했다. 숲에서 일어나는 기운과 각자의 허파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가 뒤섞이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싸리재 임도가 시작되는 예천의 백석리에 이르자 마을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멀리서 봐도 그 풍모가 범상치 않았다. 휘어졌다가 하늘로 곧게 뻗어나간 가지와 신장神將을 닮은 굵은 몸통에는 금줄까지 둘러쳐져 있었다. 옆에는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섬겨온 당이 있는데 이름이 숙령사肅靈祠였다. 말하자면 ‘영험한 신령을 모시는 사당’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소망과 뜻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였다.
    “저 안에 계신 분은 누굴까? 한 분은 남자이고 그 옆에 계신 분은 여자인데.”
    “남자 신령님의 부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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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의 한 마을에서 만난 민가의 모습. 코뚜레 한 소를 오랜만에 보았다. 과거에는 일을 시키기 위해 소는 반드시 코뚜레를 했다. 요즘은 고기를 얻기 위한 사육이라 코뚜레를 하지 않는다.
    사당 안에 모셔진 탱화를 닮은 그림에는 남자 신령과 여자 신령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이 그럴듯한 대답을 했지만 사실 나도 이런 형식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당에는 대부분 신주만 모셔져 있는데 숙령사처럼 당에 그림이 걸려 있는 경우는 처음 봤다. 
    워낙 늦은 시각에 출발했는지라 능선에 도착하기 전에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임도 옆으로 넓고 평평한 자리를 골라 모두 짐을 풀고 주변을 정리한 후 야영 준비를 했다. 숲 한가운데서의 야영은 특별했다. 더구나 힘든 하루를 마치고 텐트에서 듣는 숲의 소리는 다른 야영지에서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짐승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능선으로 달아나고, 차오르기 시작한 달이 힘차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임도에는 이따금 국유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탄 차가 지나갔다. 불법으로 임산물을 채취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요즈음 깊은 산에는 능이나 송이 같은 버섯이 나올 때니 그걸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산을 오르는 모양이다. 관리원의 눈을 피해 채취꾼들이 산을 타는 것은 능이와 송이값이 비싸 채취만 하면 하루 일당 이상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산에 사는 사람들이 야산에서 버섯이나 나물을 채취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절이 바뀌어 이제 그것도 허락을 얻지 않으면 불법인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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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백석리의 오래된 느티나무와 숙령사 사당. 마을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원과 뜻이 아직 보전되고 있다는 증표였다.
    직장 압박감에서 벗어나
    다음날은 임도 싱글 구간은 건너뛰고 도로를 따라 우회하기로 했다. 임도는 충분히 즐겼으니 평범한 도로를 따라 백산 주변을 반 바퀴 돌아 월악산으로 가는 길을 달려보자는 게 중론이었다. 
    오랜만에 임도를 벗어나 마을과 들판을 지나는 도로를 달렸다. 사과와 벼가 익는 냄새를 맡으며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즐겼다. 단양과 예천, 풍기에 이르기까지 소백산 자락과 월악산 주변 산간지대는 온통 사과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예천은 산 전체가 사과밭처럼 보일 정도였다.
    소수서원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단양 영춘으로 출발했다. 자전거 위에서 앞을 보니 멀리 소백산 줄기가 뻗어나간 모습이 의연하고도 활달했다. GPS를 따라가는데 어째 길이 자꾸만 하늘로 솟는 게 심상치 않았다. 물론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을 넘는다는 예상은 했지만, 죽령과는 다른 힘과 기운이 느껴졌다. 
    마구령(매기재)과 베틀재를 연달아 넘자 도로도 임도 못지않게 힘들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월악산 상·하·중선암과 사인암까지 두루 구경하고 6일간의 자전거 여행이 끝났다. 다양한 길을 따라 달리니 시간 가는 것도 잊을 정도로 유쾌한 여행이었다. 일행 모두 뿌듯한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단양 강변 야영장에서 하루를 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산속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산수 좋은 땅의 절경을 여행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도 직장의 압박감에서 벗어나니 행동과 생각이 모두 자유로웠다. 그뿐인가?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것은 더 자세하고 풍성하며, 마음에 닿는 것은 더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그나저나 집 나간 고양이는 언제 돌아올지 몰라 마루 밑에 고양이 밥은 버리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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