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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하이원 챌린지 특집 르포] 백패킹 문화를 바꿀 새로운 클래식의 시작!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이신영 기자
  • 입력 2020.10.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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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과 백패커가 주인공이 되는 ‘하이원 하늘길 챌린지’에 참가하다

하이원 하늘길을 따라 걷는 백패커들. ‘하이원 챌린지’는
하이원 리조트가 주최하는 백패킹 행사로 매달 열린다.
하이원 하늘길을 따라 걷는 백패커들. ‘하이원 챌린지’는 하이원 리조트가 주최하는 백패킹 행사로 매달 열린다.

‘돈 주고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물론 큰 비용은 아니지만, 내 장비와 내 발로 얻은 것이지만, 대자연의 한가운데 있어 행복했다.

새벽 5시, 눈을 반쯤 감은 채 70리터 배낭을 차에 싣고 핸들을 잡았다. 밀려오는 졸음을 떨쳐내길 반복하며 들었던 후회는 얼마가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졌다고 여겼지 ‘가을’이란 단어를 실감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산처럼 엄청난 높이로 치솟은 해일이 덮쳐오고 있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와중에 “우와”하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거대한 산 사면 벽을 이루고 있었다. 올해 비가 많이 내려 단풍이 선명할 수 있겠다 짐작했지만, 이토록 찬란한 가을일 줄은 몰랐다. 임도를 한 굽이 돌아들 때마다 거대한 가을의 물결이 밀려와 감각을 뒤흔들어 놓았다.

가을인 줄 알았지만 이토록 황홀한 단풍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과거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라 하여 ‘운탄고도’라고 불리는 고산 임도를 하이원리조트에서 걷기길로 탈바꿈시켰다.
가을인 줄 알았지만 이토록 황홀한 단풍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과거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라 하여 ‘운탄고도’라고 불리는 고산 임도를 하이원리조트에서 걷기길로 탈바꿈시켰다.

가을의 전설 앞에 스마트폰의 유희들은 다 시시해져 버렸고, 힘겨운 세상살이도 산뜻한 빛깔로 바뀌어 있었다. 잎갈나무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온갖 꼼수가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올곧게 뜻을 펼쳐, 정직한 왕국을 만들어 놓았다. 노랗게 물든 잎갈나무 숲길은 묘한 안정감을 주며, 뾰족한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걷고 또 걷자, 뭔가 툭툭 떨궈져 나왔다. 속에 쌓인 자잘한 분노와 불만 같은 마음의 노폐물이 밀려나왔다. 큰 배낭을 메었음에도 걸음은 갈수록 홀가분해졌다.

‘하늘길 챌린지’에 참가했다. 7~8월 1~2회 행사가 열리며 백패커들 사이에서 ‘럭셔리 백패킹’으로 소문나 있어,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하이원 챌린지는 강원도 정선군 백운산(1,426m)에서 열리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와 잔디밭 슬로프를 결합한 합법적인 백패킹 대회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장소를 잠시 빌려 여는 이벤트가 아닌, 리조트에서 여는 행사라 기대되었다. 트레킹 코스, 호텔, 콘도, 야영장 등 제반시설을 보유한 하이원리조트에서 매달 백패킹 행사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 자체가 놀라웠다.

화려한 잎갈나무숲을 배경삼아 셀카를 찍는 민미정(왼쪽부터)·김혜연·김정미씨.
화려한 잎갈나무숲을 배경삼아 셀카를 찍는 민미정(왼쪽부터)·김혜연·김정미씨.

실제로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일시적인 이벤트는 아닌지, 하이원리조트의 진심이 궁금했다.

의뭉스러웠던 마음은 미소로 바뀌었다. 별 다른 대화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백패커들이 충분히 거리를 두고, 만항재(1,330m)를 출발한다. 1,000m대 7~9부 능선 사면을 따라 이어진 운탄고도를 따라 하이원리조트 마운틴콘도까지 19㎞ 트레킹에 나섰다.

임도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아름다운 단풍의 해일이 밀려와 감각을 녹아내리게 했다.
임도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아름다운 단풍의 해일이 밀려와 감각을 녹아내리게 했다.

초보자와 베테랑이 어우러진 백패킹 축제

운탄고도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트럭이 다닌 길이었으나 대부분 폐광되었고, 석탄을 나르던 고산임도라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폐광된 백운산은 거대한 폐허에 가까웠다. 검은 흙이 지배하는 불모지를 강원랜드와 산림청, 지자체가 꾸준히 가꿔 지금의 풍요로운 숲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강원랜드는 백운산을 중심으로 기존의 광산 임도를 활용해 ‘하이원 하늘길’을 조성했고, 사계절 인기 있는 걷기길이자 백패킹 성지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임도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운탄고도는 철저히 뒤엎는다. 시야가 터지는 곳이 많아 형형색색 백운산 사면이 화려한 배경을 이루었고, 영월·태백·봉화의 첩첩산중 단풍왕국이 파티의 선남선녀마냥 화려한 빛깔로 늘어섰다. 여간한 정상 경치보다 시원한 풍경이 30분 간격으로 축포마냥 뻥뻥 터진다. 첫날 19㎞로 비교적 긴 거리임에도 백패커들 얼굴엔 웃음과 만족감이 가득하다. 꾸밈없는 자연 자체로 백패킹 축제인 것이다.

  

오늘만큼은 눈치 볼 필요 없이 백패커가 주인공이란 것도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백패커들은 항상 눈치를 봐야했다. “오물 쏟아내고 고성방가 하러 왔냐”는 시선의 주민들 눈치를 봐야했고, “왜 산에서 자연을 파괴하며 잠을 자냐”고 쓴 소리하는 등산객 눈치를 봐야 했고, “또 장비를 샀냐”고 캐묻는 가족 눈치를 봐야 했다. 이 땅의 백패커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이처럼 떳떳하게 환영받는 날도 있고, 이런 행사가 매달 열린다니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하이원 하늘길은 이름처럼 시원한 경치가 있는 걷기길이다. 도로가 지나는 만항재에서 하이원 마운틴콘도까지 19㎞ 거리이다.
하이원 하늘길은 이름처럼 시원한 경치가 있는 걷기길이다. 도로가 지나는 만항재에서 하이원 마운틴콘도까지 19㎞ 거리이다.

화려한 단풍도 출출함을 달래 주진 못한다. 월간<산>에 ‘낭만야영’ 코너를 연재 중인 민미정씨와 백패킹 전문점 마이기어 김혜연 점장, 초보 백패커 김정미씨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백패킹 전문가부터 초보자까지 모두 격의 없이 어울리고, 장비에 대한 이야기도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다. 점심은  하이원리조트에서 제공한 비화식 발열식품이다. 찬물만 부어도 따뜻하게 비빔밥을 데워 먹을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배낭 무게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사실 배낭이 무거우면 19㎞를 당일에 걷기 힘들다. 주최 측에서 식사를 제공하니, 버너와 코펠을 뺄 수 있고, 야영장에 식수가 있어 물도 메고 갈 필요가 없다. 운행 중 마실 물만 챙기면 되는 것. 배낭이 비교적 가벼우니 몸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친환경 실천을 위해 지급받은 쓰레기봉투에 트레킹 중 마주친 쓰레기를 담아오면 사은품을 준다.

편안한 임도지만 부상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 하이원리조트 차량이 순찰하며 참가자들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오늘의 야영지인 해발 930m 하이원 마운틴콘도 잔디밭에 닿으니 오후 4시다. 7시간을 걸어 몸은 살짝 노곤하지만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컨디션은 최고다. 깨끗한 화장실과 온수 나오는 샤워장이 있는 것도 ‘하이원 챌린지’가 럭셔리 백패킹이라 불리는 이유다.

하이원 마운틴콘도 잔디밭에 텐트를 친 참가자들.
하이원 마운틴콘도 잔디밭에 텐트를 친 참가자들.

럭셔리 백패킹은 저녁과 아침식사로 완성되는데, 저녁만찬으로 하이원 5성급 그랜드호텔 셰프가 조리한 도시락을 먹고, 다음날 아침은 주최 측에서 갓 조리한 따뜻한 소시지 샌드위치가 나왔다. 누군가 해주는 음식은 내가 조리한 것보다 한결 맛있고, 여유롭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좋다.

해발 930m의 저녁은 쌀쌀하다. 익숙하게 다운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또는 한두 명씩 모여 백패킹의 골든타임인 저녁식사를 즐긴다. 오토캠핑장의 고성방가도 자동차 소음도 없다. 늘어가는 별을 조명삼아 가족들과 밀린 이야기를 풀어낸다.

1970년대 광부의 아내들이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던 곳인 도롱이연못.
1970년대 광부의 아내들이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던 곳인 도롱이연못.

초교 5학년 고유안군, “치유 받는 느낌”

화창한 아침, 익숙한 손길로 텐트를 정리하고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오늘 20㎞, 내일 11㎞로 2박3일간 50㎞를 걷는 일정이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가 있어, 곤돌라를 타고 곧장 스키장 꼭대기인 하이원탑으로 올라가 내리막길만 걷는 등 단축 코스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극기 훈련처럼 고통스런 시간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모든 코스를 완주한 참가자에게는 기념품으로 메달을 제공하며, 각 월별 매달, 코스별 메달 등 다양한 도전과제를 제공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부러움을 산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청주에서 온 고강호·고유안 부자는 한 달에 한두 번은 함께 백패킹을 다니며, 하이원 챌린지는 처음 참가했다. 긴 코스임에도 밝은 미소로 마주치는 백패커들에게 인사해 ‘예절 바른 아이’로 소문이 난 고유안(초 5)군은 “코로나 때문에 나가서 놀기 어려웠는데 여기 오니 너무 좋다”며 “멋진 경치를 보며 걸으니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고 어른스럽게 얘기해 성인 백패커들을 놀라게 했다. 유안군은 “아빠랑 단 둘이 다닐 땐 조용한데, 여긴 사람도 많고 분위기가 활기차서 재미있다”며 “다음번 하이원 챌린지도 꼭 참가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이원 하늘길은 7~9부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하늘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하이원 하늘길은 7~9부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하늘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신석승·이지혜·신건·신겸 가족. 신석승씨는 피엘라벤 클래식 5개국 완주자다.
신석승·이지혜·신건·신겸 가족. 신석승씨는 피엘라벤 클래식 5개국 완주자다.

4인 가족이 참가해 부러움의 눈길을 받은 이는 대전에서 온 신석승·이지혜 부부와 신건(12세)·신겸(10)군이다. 신석승씨는 스웨덴, 덴마크, 홍콩, 미국, 코리아 클래식을 완주한, 한국 최초의 5개국 피엘라벤 클래식 완주자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하는 백패킹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며 “평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데 힘겨운 트레킹을 함께 해내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되어 우리 가족을 더 끈끈하게 만들어 준다”고 가족 백패킹의 장점을 알려 주었다. 특히 “하이원 챌린지는 2박3일의 장거리 트레킹이 있어 좋고, 다른 백패킹 행사에 비해 효율성과 가성비가 높아 행사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늘길 챌린지에 참가해 함께 땀 흘리고 즐겨보니, 한국 백패킹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꿀 만한 월례 행사가 생긴 것 같아 반가웠다.

고강호·고유안 부자. 한 달에 한 두 번은 부자가 백패킹을 다닌다.
고강호·고유안 부자. 한 달에 한 두 번은 부자가 백패킹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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