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18] 유석재, 한 시즌 초오유를 두 번 그는 스피드 王이었다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황문성 사진가, 유석재 제공
    입력 2020.11.18 09:34 | 수정 2020.11.18 15:36

    고산등반가에서 클라이머로… 가치있는 등반이 꿈

    유석재(53). 그의 등반경력은 짧고 굵다. 젊은 시절 산이 좋아 고산등반을 했지만 그것이 알피니스트의 길이었는지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하지만 특출했던 그의 재능은 그의 젊음만큼이나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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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돌로미테의 치마 피콜로Cima Piccolo (2,856m)를 등반하는 유석재.
    책이 좋았던 소년, 산악부원 되다

    유석재는 경기도 안성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시골 아이들이 그러했듯 산은 소년 유석재의 놀이터였다. 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고, 때로는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산을 올랐다. 아이에겐 고된 일이었지만 산꼭대기에 올라 산 너머를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왔다. 자신이 사는 마을 너머의 세상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그는 도서관에 취직하면 평생 책을 읽으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1989년 성균관대학교 도서관학과(현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했고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렸다. 산을 놀이터 삼아 자란 그에게 산악부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당시 산악부는 군기가 셌어요. 장기산행을 다녀오면 동기 대부분이 탈퇴했죠. 새로운 동기가 들어와도 이내 나가떨어지고 늘 저 혼자, 아니면 한두 명만이 남아 있었어요.”
    그 역시 탈퇴할 생각을 했다. 등반이 힘들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농번기 때면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도와야 했지만 산악부 선배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휴일엔 무조건 산에 가야 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버텼다. 산악부 주장을 맡은 후 입대해야 ‘진짜 대학 산악부 출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군 입대를 미루고 대학 3학년 때 비로소 산악부 주장을 맡았다. 
    OB선배들은 그런 유석재가 기특했다. 그리고 큰 선물을 주었다. 가셔브룸2봉(8,035m) 원정이었다.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한상국씨와 당시 국내 최고의 고산등반가로 꼽히던 김창선씨, 김수홍씨로 이루어진 단출한 원정대였다. 
    “큰 선물이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했어요. 입대를 다시 한 번 미루어야 했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죠. 하지만 살면서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싶어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1991년 7월 나선 첫 8,000m급 고산등반은 만만치 않았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캠프를 구축한 다음 고소적응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내려서면 요상하게도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나타나 기운을 뺐다. 다시 캠프로 오르면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베이스캠프 도착 45일 만인 8월 19일, 4명의 대원 전원이 정상에 올라 한국 초등 기록을 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첫 고산등반에 성공한 그는 이듬해 특전사로 입대해 1994년 4월 제대 후 1995년에 복학한다. 산악인으로서 재능을 보였던 그를 선배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거벽등반이었다. 그해 대학산악연맹이 구조대를 조직한 기념으로 미국 요세미티 엘캐피탄 원정대를 꾸렸고 그에게 동참을 제의했다. 
    원정대는 16피치 길이의 인공등반루트인 ‘조디악’을 선택했다. 이곳에서도 그의 재능과 센스가 빛을 발했다.
    산악부에서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 봤던 그는 좁은 크랙에 너트를 끼워 간단히 첫 피치를 올랐다. 다음 피치들도 미국에 도착해 구입한 코퍼헤드 같은 장비를 이용해 문제없이 올랐다. 이런 그를 선배들은 16피치가 끝날 때까지 선등하게 했다. 
    “16피치에서 루트를 헤매는 바람에 다시 15피치로 되돌아와 포타리지에서 비박한 후 다음날 정상에 올랐습니다. 식량도 물도 다 떨어져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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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은 유석재가 등반지로 좋아하는 곳이다. 유선대를 등반하고 있다.
    1년 동안 8,000m급 6개 봉 등반

    고산등반에 이어 인공등반에서까지 재능을 보이자 이듬해부터 고산등반 기회가 줄을 이었다. 그는 1996년 한중 우호등반협정을 기념해 마련된 충모강리·릉보강리 합동원정에 참여해 중국 내 미답봉을 등정했다. 이 원정에서 그는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충모강리 등반에서 2차 공격조 지원을 맡았어요. 2캠프에서 공격조가 정상공격에 나선 후 저는 한참 뒤에야 2캠프에 도착했어요. 이때쯤이면 공격조가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확인해 보려고 캠프에서 100여 m 위까지 올라갔어요. 그런데 공격조가 아직도 정상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바로 장비를 챙겨 공격조를 뒤따라갔죠.”
    유석재는 빠른 속도로 공격조를 따라잡아 결국 그들과 함께 충모강리 정상에 올랐다. 이은 릉보강리 등반은 사정상 빨리 등정해야 했기에 등반속도가 빠른 대원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여기에서 유석재는 두 대원과 함께 제2캠프를 출발해 릉보강리 정상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이 두 번의 연속등정으로 유석재는 1997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1997년은 그의 고산등반 경력이 꽃을 피운 해였다. 2월에는 대한산악연맹이 꾸린 안나푸르나·캉첸중가 원정에 참여했고, 6월에는 대학산악연맹 가셔브룸1봉·2봉 원정에 나서 1봉을 등정했다. 
    유석재는 원정을 끝내고 귀국한 지 20일 만에 성균관대 초오유 원정대에 참여해 다시 히말라야로 향했다. 이 원정에서 그는 두 개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첫 번째는 초오유를 연속으로 두 번 등정한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초오유를 19시간 50분 만에 등정한 최단시간 등하산 기록이다. 
    “1차 공격 때 등정을 마치고 1시간쯤 내려서서야 올라오고 있는 다른 대원들을 만났습니다. 마침 날씨가 나빠져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대원들을 설득해 베이스캠프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공격에서는 대원이 먼저 등반에 나선 후 이틀 뒤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다시 한 번 등정했습니다. 며칠 전 등정했기에 길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욕심도 있었죠.” 
    한 번도 힘들다는 8,000m급 고산을 며칠 만에 두 번이나, 그것도 최단시간으로 등정한 것이었다. 이후 귀국한 그는 그해 겨울 박영석 대장의 마나슬루 원정대에 합류해 다시 한 번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4차례의 해외원정에 나서 8,000m급 6개봉을 등반한 한 해였다. 
    장래가 기대되는 새로운 알피니스트의 탄생이 이루어지나 싶었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고산등반 경력의 끝이었다. 
    “초오유를 두 번 등정한 후 현지에 있던 외국 원정대로부터 시샤팡마와 에베레스트를 함께 올라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어요. 결론적으론 성사되지 못했어요. 여러 사정이 있었죠. 벌겋게 달아오른 도끼에 차가운 물을 붓는 것처럼 열정이 식어버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마나슬루 원정 이후 그는 더 이상 고산등반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1999년 결혼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실내암장을 차렸다. 8,000m급 고산을 오르내리던 그의 세상은 3m 남짓한 인공암벽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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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화산의 전설’의 크럭스인 천장 오버행을 등반하고 있다.
    즐겁게 등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

    그는 실내암장을 운영한 이후 주말이면 회원들과 자연암장에 나가 암벽등반을 즐긴다. 또한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로 일하며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실내암장 자체에서 운영한 등산학교를 통해 배출한 졸업생도 꽤 많다. 산에 갔을 때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기는 졸업생들은 그의 재산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 산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산, 어느 바위, 설사 그것이 인공암벽이라 하더라도 즐겁게 등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만약 초오유에서 해외 원정팀을 따라 계속 고산등반을 했다면 알피니스트의 길을 걸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잖아요. 후회 안 해요. 가치 있는 등반, 내가 좋아하는 등반을 한다면 그걸로 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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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6월, 가셔브룸1봉 정상에 올랐을 때의 모습.
    유석재
    소속 성균관대 OB
    직업 클라이밍클럽 더탑 센터장, 코오롱등산학교 강사
    등반 경력
    1991년 가셔브룸2봉 등정 
    1995년 엘캐피탄 조디악 등반 
    1996년 충모강리·릉보강리 연속 등정 
    1997년 안나푸르나·캉첸중가 원정 
    1997년 가셔브룸1봉(등정)·2봉 원정 
    1997년 초오유 한 시즌 2회 등정 
    1997년 마나슬루 동계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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