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티 로드] 벌교 꼬막, “허벌나게 맛있꼬막!”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김종연, 조선일보DB
    입력 2020.11.09 09:43

    여자만 꼬막 모이는 벌교…한 소쿠리 삶아놓기만 하면 ‘맛 대장’

    찬바람이 불면 영일만 친구는 과메기를 먹고 벌교 건달은 꼬막을 먹는다. 겨울 벌교에선 주먹 자랑 말고 또 하나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생긴다. ‘맛’ 자랑이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벌교 꼬막은 ‘맛 대장’이다. 삶아 먹든, 무쳐 먹든, 튀겨 먹든 상관없이 남도 갯벌의 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꼬막은 겨울을 대표하는 남도, 특히 보성 벌교의 맛이다. 꼬막은 예부터 수라상에 오르는 8진미珍味 중 으뜸으로 꼽혔으며 전라도에서는 으레 제사상에 올랐다. 그래서 꼬막을 두고 ‘제사꼬막’이라 부르기도 했다. 
    ‘꼬막’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꼬막은 ‘고막조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설이다. ‘고막합庫莫蛤’에서 고막조개로, 줄여서 고막으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벌교 출신 소설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고막의 벌교 사투리인 ‘꼬막’이 전국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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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막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다. 깨끗이 씻어 삶기만 하면 근사한 요리가 탄생한다.
    이쯤에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태백산맥>을 내는 출판사 담당자가 조정래 작가에게 ‘꼬막’이라는 표현을 표준어인 ‘고막’으로 고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조 작가는 “전라도에서 나는 것이면 그쪽 말이 표준어이지 무슨 말이냐, 내가 책임질 테니까 꼬막으로 하라”고 고집했다. ‘꼬막’이라는 단어는 그대로 나가게 되었고 <태백산맥>이 인기를 끌자 국립국어원에서는 ‘꼬막’을 표준어로 지정해 기존의 ‘고막’은 비표준어가 되었다.
    꼬막은 여자만汝自灣에서 가장 많이 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감싸는 여자만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갯벌이다. 이런 진흙갯벌에 사는 꼬막은 양질의 미생물을 먹고 자라는 것은 물론, 내장에 모래를 품지 않아 더욱 맛이 좋다.  
    여자만은 전남 여수시와 고흥군, 벌교군에 속한다. ‘여수 꼬막’, ‘고흥 꼬막’이라 부를 만도 한데 유독 ‘벌교 꼬막’이 유명한 이유는 <태백산맥>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채취한 꼬막이 시장으로 나가기 전 벌교로 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벌교군 장암리 갯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꼬막 양식을 시작한 이유도 있다. 그래서 과거 ‘겨울에 벌교 간다’ 하면 으레 꼬막을 먹으러 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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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교에는 한 집 건너 꼬막식당이다. 정식을 주문하면 삶은 꼬막, 꼬막전, 꼬막무침, 꼬막탕수 등 다양한 꼬막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참꼬막
    우리나라에는 16여 종의 꼬막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것은 참꼬막과 새꼬막, 피꼬막이다. 이 중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진짜 꼬막’이라는 의미에서 ‘참’자가 붙은 참꼬막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것도 참꼬막이다. 제사상에 오르지 못하는 새꼬막은 ‘개꼬막’, ‘똥꼬막’ 등으로 불리며 ‘천한 것’ 취급을 받았다.
    뻘에 사는 참꼬막은 아낙들이 뻘배를 타고 갯벌에 나가 일일이 캐야 한다. 여자만의 섬에 사는 아낙들은 뻘배 타기 ‘달인’이다. 오죽하면 뭍에서 섬으로 시집온 새댁들은 밥은 못 지어도 뻘배 타는 법은 제대로 배웠다고 했을까. 아마도 뭍에서 모는 자가용보다 뻘배 타기가 더 수월하리라. 
    새꼬막은 깊은 바다에 살아 형망배를 타고 나가 갈퀴로 바닥을 긁어 끌어올린다. 참꼬막에 비해 잡히는 양도 많지만 자라는 속도도 빠르다. 참꼬막은 3~4년 정도는 자라야 먹을 만하지만 새꼬막은 종패를 뿌린 뒤 1~2년이면 먹을 만큼 자란다. 
    참꼬막과 새꼬막은 껍데기 홈의 차이로 구별할 수 있다. 참꼬막의 홈은 깊고 선이 적은 반면 새꼬막은 홈이 얕고 선이 많다. 참꼬막은 17~20개 정도, 새꼬막은 30여 개의 홈이 나있다. 삶았을 때 새꼬막이 노란빛을 띠는 반면, 참꼬막은 헤모글로빈 성분이 많아 초콜릿색을 띤다. 
    참꼬막은 해가 갈수록 채취량이 줄고 있다. 지난해 겨울 기준으로 벌교에서 참꼬막은 1kg에 3만 원 정도에 팔렸다. 반면 새꼬막은 1kg에 6,000원 정도였다. 가격 차이가 크다 보니 최근엔 새꼬막이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꼬막 좀 먹어본 사람은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참꼬막을 최고로 치지만 새꼬막도 맛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가성비’를 생각하면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새꼬막이 낫다. 요즘 식당에서 내는 꼬막비빔밥에는 으레 새꼬막이 쓰인다. 
    두 꼬막에 비해서 조금은 ‘천대’받는 피꼬막은 피조개라고도 부르는데, 참꼬막·새꼬막보다 크기가 훨씬 크고 속살이 빨갛다. 이것은 피가 아니라 새우 같은 빨간 생물을 잡아먹어 소화액이 빨갛기 때문이다. 피꼬막은 참꼬막이나 새꼬막보다 맛은 덜하지만 압도적인 크기와 저렴한 가격이 매력이다. 특이하게도 피조개는 양식한 것이 자연산보다 더 맛있고 가격도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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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훌륭한 꼬막무침.
    간간하고 쫄깃쫄깃한 맛, 새콤달콤한 꼬막무침도 별미

    꼬막은 물에 살짝 삶기만 해도 짭짤하니 맛있다. 초장이나 간장을 찍을 필요도 없다. 그저 한 소쿠리 가득 삶아 내어 놓으면 그만이다. 맛 좋고 배부르고 술도 잘 취하지 않게 해주니 주당들로선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조정래 작가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꼬막에 대해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고 맛깔나게 표현했다. 벌교청년단 감찰부장 염상구가 젊은 과부 외서댁을 겁탈하면서 “간간하면서 쫄깃쫄깃헌 것이 꼭 겨울 꼬막 맛이시”라고 말한 부분은 강렬하면서도 ‘요상한’ 인상을 남겼다. 
    꼬막은 삶는 기술이 중요하다. 먼저 꼬막을 해감한 후 막 끓기 시작한 물에 넣는다. 이제 주걱으로 저어주어야 하는데 반드시 한쪽 방향으로만 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10분 정도를 쉬지 않고 저으며 삶으면 이내 한두 개씩 입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불을 끄고 물을 한꺼번에 버려야 한다. 
    이렇게 삶으면 꼬막 살이 한쪽에만 달라붙어 까기 쉽고 씹는 맛도 쫄깃하게 딱 먹기 좋다. 꼬막 입이 완전히 벌어질 때까지 오래 삶으면 살이 질기고 맛이 없어진다. 물을 팔팔 끓이다가 찬물을 한 바가지 부어 약간 식힌 후 꼬막을 넣고 다시 끓어오를 무렵에 건져내도 된다. 
    냄비에 물을 붓지 않고 구워내듯 익혀도 맛있다.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도 된다. 꼬막을 종이포일로 감싸 180℃에서 20분 정도 구우면 육즙 가득한 꼬막 구이가 된다. 캠핑할 때 주로 사용하는 더치오븐도 좋은 도구다. 
    삶은 꼬막은 숟가락을 사용해 까면 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꼬막 입에 숟가락을 넣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가 연결된 뒷부분에 숟가락을 끼워야 한다는 것. 숟가락을 끼운 상태에서 살짝 비틀면 연결 부위가 떨어지면서 잘 까진다. 이렇게 깐 꼬막은 살과 함께 껍데기 안 국물까지 후루룩 들이마셔야 ‘꼬막 좀 먹어봤다’ 소리를 듣는다. 
    삶은 꼬막에 숙성막걸리를 넣고 새콤달콤한 양념과 갖은 채소를 넣어 무치면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무당의 딸 소화가 가장 잘 만들고 사모하는 정하섭에게 먹이고 싶어 했던 꼬막무침이 완성된다.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꼬막무침은 그냥 먹어도 좋고 흰쌀밥에 얹어 참기름, 김가루 넣어 쓱쓱 비벼 먹어도 좋다. 
    올해 ‘벌교꼬막&문학축제’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소됐다. 하지만 꼬막 맛을 보는 것은 크게 영향이 없다. 벌교에는 꼬막 요리를 내는 식당이 한 집 건너마다 있을 정도다. 2만 원짜리 꼬막정식을 주문하면 갖가지 꼬막요리가 나온다. 삶은 꼬막과 꼬막전, 꼬막 탕수를 안주 삼아 한 잔 걸친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를 때쯤 따끈한 흰 쌀밥에 꼬막무침을 넣어 쓱쓱 비벼 꼬막된장찌개와 함께 먹는다. 남도의 겨울바다가 입안에 펼쳐지는 맛, 식도락가들이 굳이 겨울 벌교를 찾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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