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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낭만야영] 황금빛 명성산 가을 신고식하다

글·사진 민미정 백패커
  • 입력 2020.11.10 09:51
  • 수정 2020.11.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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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과 1박2일… 멘털·체력 무너지기 직전에 야영 터 닿아

명성산 억새밭. 억새꽃이 은빛 눈꽃송이처럼 펼쳐져 있어, 등산객들이 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명성산 억새밭. 억새꽃이 은빛 눈꽃송이처럼 펼쳐져 있어, 등산객들이 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명성산에서 백패킹은 합법일까 불법일까? 공원으로 지정된 곳에서의 백패킹은 불법이다. 인터넷에는 ‘명성산이 도립공원이다! 아니다!’라는 엇갈리는 정보가 있어 확인이 필요했다. 포천시청 산림과에 문의한 결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니 취사만 하지 않으면 야영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갑작스레 떨어진 기온에 수려한 가을 풍경을 놓칠새라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첫 가을 백패킹은 동생 한예진과 그녀의 반려견 오드리와 함께 억새명산 명성산을 찾았다. 

용이 폭포수의 안개를 타고 승천했다는 등룡폭포. 위쪽으로 또하나의 폭포가 있어 이중폭포 혹은 쌍용폭포라고도 불린다.
용이 폭포수의 안개를 타고 승천했다는 등룡폭포. 위쪽으로 또하나의 폭포가 있어 이중폭포 혹은 쌍용폭포라고도 불린다.

명성산鳴聲山(923m)은 경기도 포천시와 강원도 철원군에 경계한 산이다. 한자 그대로 울음산으로도 불리는데, 지명의 유래는 분분하다. 왕건에게 쫓겨 산으로 들어온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설과, 궁예가 이 산에서 피살되자 신하와 말들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산이 울었든 산이 울렸든 명성산은 궁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산인 만큼 곳곳에서 궁예 관련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계곡에는 아직 푸른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계곡에는 아직 푸른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얼음장 같았던 등룡폭포


명성산 산행은 산정호수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둘레 3.5km, 수심 23m에 달하는 인공저수지인 산정호수는, 100여 년 전 농지개간사업으로 농업용수 충당을 위해 만들었지만, 지금은 국민 관광지가 되었다. 

관광명소인 만큼 주차하려는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산정호수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우고,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예진이는 평소에도 반려견 오드리와 함께 산행을 즐긴다. 보스턴 테리어 품종의 오드리는 짧은 다리로 자기보다 큰 너덜바위를 사뿐사뿐 잘도 뛰어 올랐다. 산 타는 개 오드리가 너무나 귀여웠지만, 예진이는 오드리의 다리에 무리가 갈까봐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오드리는 너덜바위 길이 나타날 때마다 공중부양으로 이동해야 했다.

억새밭 한켠으로 자리한 멋진 나무 한 그루가 억새 구경꾼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억새밭 한켠으로 자리한 멋진 나무 한 그루가 억새 구경꾼들의 쉼터가 되어준다.

초가을의 한낮은 아직 더웠다. 등룡폭포에 다다르자 잔잔한 물줄기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폭포수의 물안개를 따라 용이 승천한 전설이 있어 등룡폭포라고 불린다. 날씨가 화창한 탓에 용 대신 더위에 지친 오드리가 폭포의 고요함을 깨며 거침없이 물속으로 몸을 내던졌지만 금세 놀란 듯 뛰쳐나왔다. 손을 씻으려 담근 계곡물은 얼음장 같았다. 본능에 충실했던 오드리의 행동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반려동물과 함께 오른다면, 반려동물의 배변은 처리해서 들고오는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오른다면, 반려동물의 배변은 처리해서 들고오는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너덜바위 길을 따라 드문드문 억새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광활한 억새밭이 나타났다. 가을이 내려앉은 억새밭에는 은빛 향연이 펼쳐졌다. 오드리는 쉴 새 없이 데크 계단을 뛰어다녔고, 예진이는 놀라운 풍광에 감탄했다. 

난간에 몸을 기대 억새를 바라보았다. 구름 사이로 태양이 비치자 깃털처럼 뽀송한 억새꽃들이 더욱 밝게 빛났다. 고요한 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 물결이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가을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곳에 텐트를 칠까 잠깐 고민했지만, 등산객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예정대로 능선으로 향했다. 

팔각정을 끝으로 억새밭을 빠져나왔다. 가파른 암릉 구간이 나타나자 바람은 차갑고 거세졌다. 지도상에는 팔각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텐트 두 동 칠 만한 공터가 있는데,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힘차게 달음질치던 오드리의 걸음이 더뎌질 즈음 억새밭 명당자리를 떠나온 게 잠시 후회됐다.

팔각정에서 1시간 30분을 더 가서야 공터가 나타났다. 쉽게 생각했던 우리는 멘털이 붕괴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야영지를 발견했다. 산행이 끝난 것을 알고 신난 오드리는 텐트를 치는 내내 숨바꼭질 하듯 텐트 벽 사이로 드나들었다. 재롱둥이의 귀여운 모습에 한껏 웃으며 피곤함을 날려버렸다. 

명성산에서 각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동서로 전망이 트여 있어 연계산행하기에 좋다.
명성산에서 각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동서로 전망이 트여 있어 연계산행하기에 좋다.

사이트가 완성되자 석양이 붉은 띠를 두르며 서쪽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떠올랐다. 달빛에 부서져 나온 듯 하나둘 별이 나타나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모른 채 산 아래 세상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사람 못지않은 오드리의 코고는 소리에 또 한바탕 웃고는 하루를 마무리 했다. 

 명성산은 비교적 산행이 쉬워 초보자를 비롯, 애견 동반산행도 많이 한다.
명성산은 비교적 산행이 쉬워 초보자를 비롯, 애견 동반산행도 많이 한다.

우리의 산행대장 오드리


다음날 아침, 태양은 땅을 반 바퀴 돌아 다시 동쪽 지평선 위로 서서히 솟아올랐다. 따사로운 햇살에 아침의 찬 기운이 녹아 내렸다. 간단히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출발 준비를 마쳤다. 기운을 회복한 오드리는 산행대장을 자처했다. 앞서가며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틈틈이 확인했다. 억새밭은 아침 햇살에 황금빛을 띠며 부지런한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완벽한 가을의 시작이었다. 

등산객이 몰리는 억새밭보다는 인적이 드물고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능선에서 야영하는 것이 좋다.
등산객이 몰리는 억새밭보다는 인적이 드물고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능선에서 야영하는 것이 좋다.

산행 정보


자가용 주차 산정호수 상동 주차장

대중교통 의정부역 건너편 농협 앞에서 138-6번 버스 이용. 산정호수 주차장 하차. 시간당 1대 운행, 1시간 40분 정도 소요.

■ 산정호수 주차장~등룡폭포 ~ 억새밭~팔각정~삼각봉 닿기 전 능선 야영터 ~ 팔각정 ~ 억새밭 ~ 등룡폭포 ~ 주차장: 왕복 11㎞, 상행 3시간 50분 소요, 하행 2시간 10분 소요, 고도차 700m

■ 보통 가을에 억새 축제가 열리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가 열리지 않는다. 산행은 가능하다. 

■ 산행 시 충분한 거리를 두고 걷되 등산인파가 몰리는 구간에선 마스크를 꼭 착용하는 에티켓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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