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숨은 명산] 묵은 길 개척해 오르면 이국적인 산간 들판

  •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입력 2020.11.17 09:53

    영천 화산
    봉우리가 해바라기 닮아…화산산성·한광사 등 볼거리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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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2.9m봉을 지나 묵은 고랭지 채소밭을 헤치고 내려서면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화산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곧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이다. 이때쯤이면 하늘이 맑고 쾌청한 날씨가 많지만 밤에는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국화가 활짝 피며, 산에는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경북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고로면 경계에 자리한 화산華山(828m)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지역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팔공지맥의 산이다. 산정은 평탄한 분지로 울창한 숲이 있어 예로부터 산수가 좋기로 유명하다. 〈교남지嶠南誌〉 신녕군 편에 ‘봉우리가 해바라기꽃葵花과 같아 화산花山이라 하였다’고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북쪽 3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라고 기록했다. 옛 신녕현의 별칭이 화산花山으로 읍치는 신녕면 화성리에 있었다. <여지도서(의흥)>에는 ‘화산華山은 청송부 보현산에서 뻗어 나와 공산(팔공산)의 으뜸 줄기를 이룬다’고 기록해 산줄기의 근원까지 밝히고 있다.
    화산 일대는 1960년대에 개간돼 밭이 조성됐고, 이 밭을 중심으로 해발 700m 분지에 마을이 형성됐다. 이 마을은 이른바 ‘하늘 아래 첫 동네’로 화산 바로 아래에 있어 ‘화산마을’로도 불린다. 화산을 중심으로 육군3사관학교 유격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규모는 줄었다. 동시에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고, 통행 제한구역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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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6.9m봉 능선에서 뒤돌아보면 발아래로 화남지와 갑현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팔공산의 펼쳐진 산릉이 하늘금을 이룬다.
    최근 이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아 군위댐 등지를 배경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풍차전망대가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또 TV교양프로그램에 한 귀촌인의 사연이 방영되면서 주변 풍광이 입소문을 타게 됐다.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화산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어 산행을 목적으로 이 산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간혹 팔공지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이 있지만 이젠 지맥 길도 많이 묵었다. 그래서 원점회귀가 가능한 코스를 상정해 개척하다시피 산행해야 한다. 등로는 화남1리 버스정류장에서 갑현마을~화남지 수로〜476.9m봉~팔공지맥〜갑령~722.9m봉~화북4리 마을회관〜풍차전망대〜화산산성 북문~유격장 위병소〜팔공지맥(828강의장 갈림길)~화산 정상~임도~혈암산~한광사~갑현 마을~화남1리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오는 약 15km 거리다.
    화산 산행의 들머리는 화남1리 버스정류장. 갑현마을로 향하는 냇가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즐비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탈환한 의병장 권응수 장군을 기리는 경충사와 충훈각, 장군의 유적비가 세워진 유적관이 있다. 마을길로 올라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 화남지에서 물을 흘려보내는 수로를 만난다. 여기서 왼편 산자락에 철망을 두른 묘지를 보고 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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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6.9m봉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가야 할 화산과 혈암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처음부터 산길이 없지만 묘지 옆으로 올라 매실나무가 심어진 묵밭을 헤집고 산 능선으로 향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능선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야 한다는 점이다. 길은 없지만 오르기에는 그런대로 큰 어려움이 없다. 잡목에 약간의 경사도는 있지만 때때로 전망도 열린다. 뒤돌아보면 가야 할 화산과 혈암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발아래로 화남지와 갑현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팔공산의 펼쳐진 산릉이 하늘금을 이룬다. 한바탕 땀을 쏟으며 올라선 476.9m봉에서부터는 경사가 완만하다. 잠시 후 팔공지맥을 만나면서 그나마 뚜렷한 산길을 만나게 된다.
    능선 길에서 갑령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은 독도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갑령으로 내려서는 길은 짧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거칠다. 갑령에서 722.9m봉까지의 오름길도 보통이 아니다. 가파른 경사에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산봉우리가 가까워지면서 묵은 고랭지 채소밭이다. 성인 키를 훌쩍 넘는 잡초가 우거진 채소밭 뒤로 군위 조림산이 우뚝하다. 통신탑이 서 있는 722.9m봉을 왼쪽에 두고 제법 널찍한 길을 따라가면 곧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난다. 건너편 화산 풍력발전기를 바라보고 진행하면 곧 포장도로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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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지붕의 풍차 옆 전망대에 서면 먼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 너울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화산벌은 산이 아니라 넓은 들판이다. 산간오지에 펼쳐진 드넓은 밭이며, 띄엄띄엄 들어선 소박한 집들이 이국적인 풍경이다. 개망초 꽃이 지천으로 핀 묵은 고랭지 채소밭을 헤치고 내려선다.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화산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폐교된 화수초등학교 화산분교 정문 앞에 다다른다.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는 화북4리 마을회관을 지나 갈라진다. 북쪽의 풍차전망대를 바라보고 방향을 꺾는다.
    풍차전망대는 군위군 고로면 화북4리 화산마을의 소문난 명소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빨간 지붕의 풍차 옆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군위댐이 시원하다. 주변에는 새가산과 절뒷산, 너치레산 등 이름부터 특이한 고만고만한 낮은 산들이 댐을 둘러싸고 있다. 모양도 뾰족한 각시봉(옥녀봉) 뒤로는 선암산과 뱀산이 돋보이고, 뒤로는 의성의 금성산과 비봉산이 아슴푸레하다. 댐 오른쪽으로 팔공지맥의 마루금 따라 경림산, 방가산이 달려간 영천의 보현산을 비롯해 기룡산도 조망된다. 실로 먼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 너울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제 화산산성으로 향한다. 멀리 펑퍼짐한 화산 일대는 풍력발전기가 한가롭게 돌아간다. 이정표가 선 마을 갈림길에서 계곡 쪽으로 향해 곧 저수지 아래 수로를 건너 오르면 정자 쉼터다. 뒤이어 계곡으로 접어들어 수구문을 본 후 성벽을 따라가면 아치 모양의 화산산성 북문에 닿는다. 산성은 생각보다 짧고, 많이 허물어진 모습이다. 안내판을 읽어 보니 애초부터 미완성의 성城으로 옛 모습 그대로란다. 흉년과 질병이 만연하여 백성들에게 계속 부역을 시킬 수 없어 공사를 중지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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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산성 북문은 애초부터 미완성의 성城으로 옛 모습 그대로다.
    성문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경운기가 지날 만큼 넓은 숲길이다. 초입에 민간인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으나 출입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다. 완만하고 고즈넉한 이 울창한 숲길은 단풍으로 물들면 꽤 운치 있을 것 같다. 이 길을 벗어나면 곧 유격장 입구의 위병소를 만난다. 위병소에서 콘크리트 포장길 따라 직진한다. 고갯마루를 넘어 갈림길을 무시하고 내려서면 ‘828강의장’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강의장 건물을 지나 팔공지맥을 따르는 능선 길이다.
    능선 길은 덤불에 가려져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는 무너지고 녹슨 채 나뒹구는 유격장 시설물도 보인다. 그다지 심하지 않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다가 삼각점(화북 315, 2004 재설)과 안내판이 서 있는 화산 정상에 이른다. 나뭇가지에 걸린 준·희의 팔공지맥 팻말도 보인다. 그러나 덤불에 잡목과 수풀이 뒤덮여 정상에서의 조망은 어렵다. 하산은 남서쪽 능선을 따라 혈암산으로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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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문을 지나면 만나는 넓은 숲길은 단풍이 물들면 꽤 운치 있을 것 같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이동한다. 임도로 내려서는 능선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임도로 내려서는 능선은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빽빽한 숲속으로 산길이 뚜렷하다. 경사진 내리막길은 화산과 혈암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가로질러 혈암산으로 오른다. 경사가 가파르지만 이내 올라선 혈암산穴岩山(559m)은 정상석도 조망도 없다. 영천시 신녕면 가천리와 화남리 경계의 혈암산은 구무덤 또는 용암산이라고도 한다. 혈암산은 바위에 굴이 있어 이름이 붙었다지만 그 굴은 찾을 수 없다.
    산길은 서쪽으로 능선 따라 제법 뚜렷하다. 그렇지만 424.3m봉을 지나면 산길은 오리무중이다. 길 없는 산릉을 따라 개척하듯 한광사 쪽으로 내려선다. 간혹 한광사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 ‘대승불교 법왕종 총본산’이란 현판이 걸린 한광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석탑과 석불좌상이 있다. 절집을 벗어나 화남지를 만나고 저수지 끼고 도로를 따르면 산행을 시작했던 원점으로 되돌아와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길잡이
    화남1리 버스정류장~갑현마을(권응수장군 유적지)~화남지 수로 옆〜476.9m봉~팔공지맥〜갑령~722.9m봉~화북4리 마을회관〜풍차전망대〜화산산성 북문~유격장 위병소〜팔공지맥(828강의장 갈림길)~화산 정상~임도~혈암산~한광사~갑현 마을~화남1리 버스정류장 <7시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4)
    영천 버스터미널(1666-0016)에서 시내버스(333-3552) 281-1, 291, 293, 294번을 타고 화남1리(권응수장군 유적지)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시내버스가 자주 없는 관계로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면 운행이 잦은 신녕까지 시내버스로 가서 신녕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숙식(지역번호 054)
    영천역 인근에 칸모텔(334-0000), 쇼모텔(334-1000), 하얏트모텔(335-7858) 등이 있다. 영천은 옛날부터 우시장이 크게 발달해, 영천역 인근의 영천공설시장에는 역사가 깊은 곰탕 가게가 즐비하다. 시장 안의 영남 보리밥뷔페는 모든 재료가 국산인데도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성내동의 화평대군(334-2514)은 한자리에서 40년을 운영해 온 영천 육회 맛집으로 육회·소불고기·비빔밥 전문점이다.
    볼거리 
    화산산성&한광사 경북도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된 ‘화산산성華山山城’은 화산 일대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조선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해 먼저 홍예문虹霓門을 세우고, 혜후와 두청 스님으로 하여금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기 위한 사찰인 군수사軍需寺를 짓게 했다. 성벽을 구축하던 중 심한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어 공사가 헛되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북문과 수구문 터는 축성을 시작했던 옛 모습 그대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 화산산성은 조선시대 축성 기법과 공사 순차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파악되고 있다. 산행이 끝날 무렵 만나는 한광사에는 화남동 삼층석탑(보물 675호)과 화남동 석불좌상(보물 676호), 들머리 갑현마을에는 ‘권응수 장군 유적(보물 제668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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