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숨은 명산] 전국 최고의 억새명소엔 억새가 없었다

  • 글·사진 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 고문
    입력 2020.11.12 09:47

    장흥 천관산
    코로나로 억새 제거…환상적인 다도해 조망, 기암괴석 볼거리로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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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턱에 내려앉아 있는 불영봉은 거대한 불상을 모셔 놓은 듯하다.
    산악회 산행대장들은 연간산행계획을 세울 때 억새산행 대상지 1순위로 장흥 천관산天冠山(723.1m)을 꼽는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억새 명소가 많지만 천관산 억새가 특히 인기 있는 이유는 다도해의 시원한 바다풍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풍광 덕분이다.
    산 정상부 환희대에서 연대봉에 이르는 5만여 평의 대평원에 억새가 은빛물결을 이루며 바다와 어우러지는 파노라마 풍경은 전국에서도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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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산은 바다에 접해 있어 능선만 오르면 사방으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불심 가득한 천관산
    올해는 천관산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비켜가지 못했다. 억새 시즌인 9~10월, 산행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에서 일찌감치 억새를 싹둑 베어 버렸다. 천관산에 억새가 없다는 것은 ‘가을 식탁에 전어가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미인은 삭발을 해도 아름답다. 오히려 머리카락 때문에 숨겨졌던 매력이 더 드러나기도 한다.
    천관산은 곧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지난 8월 ‘명승’으로 지정예고 되었다. 방촌마을 등 역사문화관광자원이 풍부하고 기암괴석과 화강암 지형, 억새군락 등의 식생공간과 다도해 경관이 뛰어나다는 것이 지정 이유다. 억새는 천관산이 지닌 매력의 극히 일부였다고 보면 된다.
    천관산이라는 지명에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이유가 있다. 공원매표소를 지나면 우측으로 ‘지제영산支提靈山’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지제산은 천관산의 옛 이름이다. 화엄경에는 지제산에 천관보살天官菩薩이 산다고 적혀 있다. 천관산 서북쪽 기슭에 있는 천관사天冠寺는 6세기 신라시대 때 창건했으며 미륵불 대신 천관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천관산에는 고려시대까지 89개의 암자가 있었고, 28명의 대사를 배출해 금강산 다음 가는 명산 대접을 받았다. 호남 실학의 대가로 꼽히는 존재 위백규魏伯珪 선생이 쓴 <지제지支提志>에는 천관산에서 신선이 살 만한 6곳의 동천洞天과 89개 암자를 일일이 소개해 놓았다.
    천관산 산행은 장천재를 들머리로 연대봉 정상에 오르고 장안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이번 산행은 장천재에서 출발해 연대봉을 지나 불영봉佛影峯까지 오르고 천관산문학공원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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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기둥을 깎아 구름 속에 꽂아 세운 것 같다고 하는 천주봉.
    연대봉 정상 남쪽에 있는 불영봉은 회진 앞바다와 다도해, 멀리 고흥 거금도, 완도 금당도, 고금도까지 두루 보이는 조망을 자랑한다. 말의 등처럼 부드러운 초원지대도 볼거리다. 불영바위 주변에 있는 거북바위와 책상바위 등 화강암 바위들을 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불영봉의 위치가 제 각각이다. 오래전에 발행된 지도에는 불영봉이 수동마을로 내려가는 중간에 위치한다고 표기되어 있다. 필자는 탑산사 인근에 있다고 안내한 천관산도립공원 측의 기준을 따르기로 한다.
    장천재는 장흥 위魏씨의 정신적인 뿌리다. 장천재 계곡에 있는 500년이 넘는 태고송太古松을 보려면 매표소 지나 장안사 갈림길에서부터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장천교로 직진하지 말고 ‘양근암 1코스’ 이정표 쪽에 영월정迎月亭이라는 팔각정 방향으로 가면 된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계곡에는 아치형 도화교桃花橋가 있다. 다리를 건너니 마치 선계를 건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노거수의 자태는 경이롭다. 태고송 바로 건너편에 장천재가 있다. 존재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강학당이다. 건물 주변으로는 100년, 2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을 이뤄 무게감을 더한다.
    장천재에서 조금 진행하면 체육공원이 나온다. 이곳에서 금수굴 코스와 금강굴 코스가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가는 금강굴 코스가 더 인기 있다. 경사가 급한 거친 오르막이지만 선인봉~종봉~대세봉~선재봉~천주봉으로 이어지는 9개의 암봉을 오를 수 있다. 이 암봉들은 돌기둥으로 변신한 천신天神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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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영봉 가는 길에 만난 억새밭, 반가움이 앞선다.
    기묘한 바위들의 향연
    매표소에서 환희대까지는 4.3㎞ 거리에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환희대에서 남쪽 0.6㎞ 지점에 있는 구룡봉九龍峰을 놓칠 수 없다. 암봉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환상적이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아육왕탑阿育王塔이라는 걸출한 기암이 있다. 커다란 바윗덩이 다섯 개가 포개진 석등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환희대에서 연대봉 정상까지 1㎞ 구간은 완만한 구릉형으로 대평원처럼 사방이 탁 트여 있다. 어느 곳을 쳐다보아도 정상 조망처럼 멋지다. 예전 같으면 바람에 일렁이는 눈부신 억새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겠지만 억새를 배어 버린 올해는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연대봉은 고려 의종 3년(1149년) 봉화대를 처음 쌓은 뒤 훼손되었다가 근래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북쪽으로 무등산을 볼 수 있으며 시야가 좋은 날에는 남쪽으로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림 같은 다도해에 펼쳐진 고흥 거금도, 완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 등을 바라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연대봉에서 불영봉 삼거리까지 1.5㎞ 구간에서 천관산은 근육질의 남성에서 허리가 늘씬한 미인으로 변신한다. 활시위처럼 커다란 포물선을 닮은 능선은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키 작은 관목과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는 초원지대이며, 야자나무매트가 깔려 있어 걷기 좋다. 멀리 정남진전망대를 비롯한 고흥만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연대봉에서 0.7㎞ 지점, 수동마을 갈림길에서부터 불영봉까지 0.8㎞ 구간은 천관산의 기암들을 만들고 남은 재료들을 몽땅 버무려 놓은 듯한 바위들의 전시장이다. 불영봉은 10m 높이로 거대한 돌을 쌓아 놓은 것 같으며, 윗부분은 부처님의 머리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는 구룡암, 탑산사 큰절 등의 경관이 가까이 보인다.
    20여 m 아래쪽에 있는 미타봉까지 가는 길은 천관산 산행의 클라이맥스라 부를 만한 멋진 암릉 구간이다. 기암 전시장 같은 능선에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 형상에 맞게 이름을 지어보며 걷는 것도 재미있겠다.
    미타봉부터 하산하는 길이 매우 사나워진다. 등산로는 분명하지만 천관산문학공원까지 1.1㎞ 정도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이 길 대신 불영봉에서 포봉으로 내려서 탑산사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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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봉에서 불영봉으로 가는 능선길.
    문학의 고장 장흥
    천관산문학공원으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장흥에서는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천관산문학공원에는 이 지역 출신 문인인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등의 글과 문학비를 볼 수 있다. 공원 입구 문탑文塔에는 구상, 박완서 작가 등의 친필 원고 50여 점과 연보 등이 타임캡슐에 묻혀 있다. 주민들의 가훈을 모은 가훈탑 등 돌탑 460여 기도 있어 천천히 구경하며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본다.
    걷기 길잡이  
    주차장~매표소~장천재~선인봉~금강굴~환희대~구룡봉~환희대~연대봉(정상)~수동마을 갈림길~북바위~불영봉~미타봉~험로(묵은 길)~천관산문학관(약 11.3㎞, 약 6시간 소요)
    ※불영봉에서 탑산사로 하산하는 걸 추천한다. 
    교통(지역번호 061)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장흥 직통 버스가 1일 7회(08:00, 09:00, 09:20, 10:30, 14:40, 15:30, 16:50) 운행한다. 장흥읍내에서 관산읍과 대덕읍 방면으로 가는 버스(06:05~19:40)는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문의 공용버스정류장 863-9036, 장흥교통 863-0636. 관산읍내에서 장천재 등산로 입구까지는 2㎞ 거리지만 택시를 타는 편이 낫다. 관산택시 867-2626, 대덕택시 867-0585. 천관산문학공원에서 매표소까지 택시 요금은 1만5,000원 정도다. 
    먹거리(지역번호 061)
    택시기사들과 인근 동네 주민에게 괜찮은 횟집을 물었더니 모두 삭금리에 있는 남촌횟집(867-5091)을 추천했다. 어부가 새벽에 바다에 나가 잡아 온 자연산 생선을 낸다. 여름에는 된장물회, 하모회, 가을에는 전어회 등 제철 음식을 한다. 매월 첫째, 셋째 주 화요일 휴무.
    장흥의 대표음식인 삼합구이는 장흥산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함께 구워 먹는다. 장흥읍내 토요시장 주변에 밀집해 있다. 1층에서 고기를 사 가지고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차림비를 내고 구워 먹는 시스템이다.
    볼거리
    편백나무숲 우드랜드 근처에 있는 귀족호도박물관(010-8844-2825)은 국내에 하나뿐인 호두 전문 박물관이다. 100만 원부터 1,000만 원까지 호가하는 진귀한 귀족 호두를 만날 수 있다. 입장료 무료. 10층 높이의 정남진전망대(867-0399)에 오르면 득량만 일대와 고흥, 소록도, 거금대교, 완도, 금일도 등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장료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월요일, 공휴일 다음날, 설·추석 당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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