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산행결산] "산? 재밌잖아요!" MZ세대는 지금 등산 홀릭

입력 2020.12.18 09:42

마이산 11km 동행 취재
MZ세대의 산행 특징
• 등산은 운동! 돌아가는 비효율적 코스도 살 더 빠지니 이득!
• 등산을 부모님 세대와 소통 수단으로 삼기도
• 아웃도어 제품과 애슬레저 제품 혼합해 기능성과 스타일 동시 추구
• 산행 사진으로 개성 표현
• 산행의 여행화. 구도적 등산보다 유람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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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강사인 이윤나씨가 일출 감상 포인트에서 요가 동작을 취하고 있다.
“왜 산에 가세요?”
목탁 두드리는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오는 한밤중의 산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칠흑같은 어둠 속의 산중에서 넘어가는 숨을 되삼키며 유명 산악인에게나 할 법한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는 허공 속에 흩날리듯 던진 질문의 가닥을 누군가 낚아채 메아리처럼 답을 들려준다. 대답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명쾌했다. 어렵게 포장하지 않고,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솔직한, 핵심적인 대답이다.
“산요? 재밌잖아요!”
이것이 MZ세대의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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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랜턴 불빛에 의존해 어둠 속의 마이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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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제품과 애슬레저 제품을 혼합해 기능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MZ세대 등산 패션의 특징이다
언택트 산행 위해 잠을 버린 이들
올해 등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MZ세대’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등산이 MZ세대의 핫한 취미가 된 것은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MZ세대의 산행은 근교산이 주 대상이다. 이들이 더 먼 산, 시나 도 경계 밖의 산을 오르는 방식이 궁금했다. 한 인플루언서에게 물으니 보통 SNS를 통해 친한 지인을 매개로 사람을 끌어 모아서 안내 산악회처럼 버스를 대절해 간다고 했다. 마침 아웃도어 동호인 윤용만씨가 인원을 모집해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687.4m)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MZ세대의 산행을 엿보기 위해 발열 체크를 마친 후 같이 버스에 올랐다. 자정에 서울을 출발해 새벽 4시에 산행 시작, 오전 11시에 하산하는 무박 일출산행이었다. 산행 계획이 정식 고지된 후 금방 만차가 됐다. 
“무박 일출산행이면 부담스러울 텐데 인기가 많네요.”
“오히려 평범하게 아침에 출발하는 것보다 이게 더 인기가 좋아요. 새벽에 산을 올라야 일출도 볼 수 있고, 아침 햇빛에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까요. 언택트 산행도 즐길 수 있죠.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하룻밤 정도 새우는 건 큰 문제가 아니거든요.”
윤씨는 덧붙여 “총 27명의 인원 중 올해 등산을 시작한 사람은 10명 정도 된다. 등산 초보에게 무박 일출산행은 제법 난이도가 있는 편이지만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들이라 체력과 젊음으로 극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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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을 받아 단풍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MZ세대에게 산은 운동장이자 놀이터
마이산 북부주차장에서 내려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은 북부주차장에서 출발, 비룡대를 거쳐 탕금봉을 지나 처음 나타나는 무명봉에 올랐다가 되짚어 비룡대로 돌아와 탑영제, 탑사를 거쳐 북부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굳이 탕금봉 너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일반적인 등산인 시각에선 비효율적인데 게다가 암마이봉 정상도 오르지 않는다.
“탕금봉 다음 무명봉에서 바라보는 마이산 일출이 절경이거든요. 여기서 일출을 보고, 다시 고금당古金塘에서 풍경風磬과 함께 운해에 잠긴 마이산을 바라보는 것이 또 예뻐요. 또 비룡대飛龍臺에서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고금당이 예술이고요. 암마이봉 정상은 덤입니다. 전체 스케줄에 맞춰야 되니깐 빨리 갔다 올 수 있는 사람만 갈 생각이에요. 꼭 정상을 갈 필요는 없잖아요?”
코스에서도 MZ세대의 뚜렷한 산행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에게 비효율적인 등산 동선은 그저 운동량이 더해지는 것일 뿐, 불편함이 아니다. 좋은 풍경을 만나기 위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등산 3개월차인 정수연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올해 등산을 시작했다. 원래 운동을 싫어했는데 친구들과 같이 땀 흘리는 재미, 좋은 경치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일주일에 다섯 번은 산에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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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는 각양각색의 개성을 담아 인증사진을 찍는다.
등산을 소통과 재도약의 수단 삼기도
마이산생태수변공원을 지나 성지동골 방면으로 길을 잇는다. 낙엽이 새벽이슬을 잔뜩 머금은 탓에 발이 쭉쭉 밀린다. 간혹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벌떡 일어나 다시 오른다. 넘어져도 금세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는 세대다. 인생도 마찬가지. 코로나19로 휴직한 이들이 많지만 등산으로 힐링하며 인생의 재도약을 엿보고 있다. 정수연씨도 올해를 휴식의 기회로 삼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다가 올해 처음 쉬게 됐어요. 소중한 사람들과 제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등산을 부모님과의 소통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많았다. 정수연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부모님과 같이 등산을 간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올해 산행을 시작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투자, 멘토링 등을 담당해 주는 일종의 컨설턴트) 길은진씨도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등산을 시작하게 됐다. 걸으면서 대화도 많이 하고, 힘든 곳에선 서로 끌어 주기도 하며 부녀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봉암(527m)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 비룡대에 오른다. 어렴풋한 암마이봉의 봉긋한 산그리메가 하현달빛 아래 보일 듯 말 듯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장 예정된 일출 조망지로 향한다.
고금당을 지날 땐 혹여 스님들을 방해할까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다. 고금당은 마이산도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금당사가 본디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다.
고금당에서 광대봉 방면으로 난 길을 따른다. 탕금봉(528m)을 우회해서 도는 가파른 철제 계단과 미끄러운 바위를 한참 허덕이며 돌파하자 즉각 암마이봉 쪽으로 전망이 탁 트인 너른 바위가 나온다. 지난해 이들이 발견한 마이산 일출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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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당의 한가로운 풍경소리를 들으며 마이산 운해를 바라본다. 힘들었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잠시 멈추는 순간이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일출은 보지 못했다. 날씨가 흐렸다. 그래도 언젠가는 구름 너머로 해가 뜰 것을 알기에 모두들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일출산행이 처음이라는 멍뭉산악회 류지영씨는 “무서움 반 기대 반이었는데 비록 일출은 못 봤어도 재밌다”고 말했다. 내년에 다시 오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새벽이 밝아온다. 두껍게 쌓인 구름 위가 조금씩 붉게 물들어온다. 1994년 개띠 산악회 모임인 ‘멍뭉산악회’의 회장이자 요가 강사인 이윤나씨가 멋진 요가 동작을 선보인다. 뒤이어 너도나도 자기들만의 트레이드마크인 포즈가 있다며, 암마이봉을 배경으로 재치 넘치는 동작을 취하고 사진을 남긴다. 흔한 산행 사진이 아닌 자신만의 개성을 듬뿍 담은 나만의 사진으로 재창조해 내는 셈이다.
한 시간을 봉우리에 머무르며 각기 휴식과 식사, 인증 사진을 남긴 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가파른 철난간 길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 다시 돌아온 고금당, 이제 구름 위로 확실히 떠오른 태양 빛이 마이산 골짜기마다 가득한 운해와 결부돼 환상적인 경치를 선사한다. 마침 절 밖을 지나던 고금당 주지스님이 마이산에 대한 해설을 들려 준다.
“마이산의 타포니Tafoni(암벽에 벌집처럼 구멍이 생긴 형태) 지형은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힙니다. 1억 년 전 물 속에 있던 바위 층이 지각운동에 의해 수면 위로 솟아난 것이라고 해요. 고금당은 이처럼 신비로운 마이산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이산 최고의 명당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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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대 바로 앞 바위 능선에서 점프샷을 찍는 윤용만씨. 점프샷은 윤용만씨가 산행 사진을 찍을 때 주로 취하는 동작이라고 한다.
주지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마이산 일대를 바라본다. 바로 앞발치에는 금당사와 탑영제가 얼핏 엿보인다. 용마산과 나도산 골짜기에는 운해가 자욱해 신비롭다. 
주지스님은 덧붙여 “마이산은 워낙 영험한 곳이라 아무리 산행해도 다음날 피곤하지 않다”며 고금당을 떠나는 일행을 배웅해 주었다.
다시 비룡대로 되돌아가 고금당을 바라본다. 고금당에 있을 때는 몰랐던 화려한 황금빛 지붕이 이채롭다. 비룡대에서 더 후진을 하자 야간에는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갈림길이 보인다. 금당사 방면으로 하산하는 능선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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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대에서 이윤나씨가 최혜승씨에게 물구나무서기 요가 동작을 가르쳐 주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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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에게 산행은 여행과 같다. 이윤나, 최혜승, 소다혜씨가 탑영제를 둘러보며 걷고 있다.
산행을 여행처럼
점점 고도를 내려 이윽고 평지를 만나자 모두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진다. 금당사를 순식간에 지나 탑영제를 흘끔 보고는 이내 탑사에 닿는다.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았다고 전해져 오는 일자형과 원뿔형 모양의 80여 개 돌탑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진씨가 탄성을 지른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국내여행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산을 다니니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과 풍경, 그리고 사람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탑사를 가볍게 돌아본 뒤 이제 남은 건 암마이봉 정상. 그러나 대부분 정상을 지나친다. 마이산을 ‘등정’할 생각이 아니라 그저 잠시 자연을 친구 삼아 놀기 위해 들렀기 때문이다. 산행을 여행화하는 MZ세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본 기사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1단계일 때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취재 및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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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사 대웅전 대적광전 뒤편에 수마이봉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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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주차장~비룡대~고금당~탑사~암마이봉~북부주차장 11km. 고금당부터 탕금봉으로 이어지는 광대봉 일원의 등산로는 가을철 산불방지기간 입산통제로, 12월 15일 이후 산행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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