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00년 전 지리, 700m이하 저지대는 민둥산

입력 2020.12.10 09:38

박석곤 교수, 일제강점기 문헌 통해 당시 고증… 소나무 크게 줄고 신갈나무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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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논문에서 조선총독부와 규슈제국대학이 각각 1915년과 1934년에 작성한 식생분포도를 중첩해 지도에 표시했다. 자료 국립공원공단
‘어머니의 산’ 지리산의 100년 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논문이 발표됐다. 지난 11월 16일 국립공원 논문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일제강점기 문헌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국립공원의 시대적 상황 고찰>이다. 논문 저자는 박석곤 국립순천대학교 산림자원·조경학부 교수로, 일제강점기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과 제국대학 연습림 관계자가 기록한 지리산 관련 문헌 4권을 번역해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00년 전 지리산의 모습은 지금의 식생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어수선한 정국이 지속된 조선 말기, 산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지역 주민이 퇴비나 땔감, 농기구 재료 등을 얻기 위해 산림벌채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동경제국대학 연습림보고서는 1925년 당시 지리산 일대의 약 70%가 일시적 혹은 영구적 무입목지(나무가 거의 없는 산림)며, 수림을 형성하는 곳은 28%였다고 했다. 가장 인위적 생태 교란이 심한 곳은 전남 구례군 광의면·마산면·토지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인가와 인접해 있는 산지라고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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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덕평봉 일대의 화전마을. 자료 국립공원공단
식물군락 역시 현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조선총독부와 규슈제국대학이 각각 1915년과 1934년에 작성한 식생분포도와 2018년 국립공원공단 정밀식생도를 비교해 보면 소나무림은 18.18%에서 7.29%로 급감했고, 신갈나무군락은 11.87%에서 41.78%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오랫동안 지리산권이 보존되며 자연스러운 숲의 천이 과정이 진행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당시 저술된 문헌들은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대학이 지리산에 연구 목적으로 연습림(현재의 학술림)을 설치하고, 조림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 주민의 화전과 산림벌채를 금지해 산림 보호에 기여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박석곤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단편적으로 해석하면 일본 제국대학이 지리산 보전에 이바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 진실은 그것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당시 지리산에 연습림을 설치한 대학 중 규슈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은 관련 학과인 농학부가 없는데도 연습림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연구목적보다 경제적 이익 창출을 위해 연습림을 설치했다는 뜻이죠. 실제로 지역 주민에게 연습림에서 벌채한 나무나 생산한 숯을 판매한 기록도 있어요. 즉 연습림은 식민지 수탈 수단이었다는 뜻입니다.”
박 교수는 덧붙여 “현재의 잣대로 당시 지역 주민들의 산림 이용을 판단해선 안 된다”며 “당시 조상들에게 저지대 산지는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유일한 생계의 수단이었다. 일본인들은 식민지 지배층의 인식으로 이들을 마치 미개한 환경파괴범인 양 몰았다”고 말했다.
“연습림 설치로 인해 지리산에 깃들어 살았던 조상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됐습니다. 저는 이 조상들과 지금 국립공원 내부나 인근에서 사는 지역주민들이 겹쳐 보여요. 과거 역사를 교훈 삼아 지역민을 관리대상이 아니라 국립공원 보전을 위한 협력자로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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