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촌일기⑧] 청설모 건망증이 멧돼지를 먹여 살린다

  • 글·사진 이남석 자전거 여행가
    입력 2021.01.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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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과 겨울이 섞여 있는, 초겨울의 숲.
    산에 살면서 산에 올라간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파른 산길을 타고, 산을 오르는 일은 언제나 특별하다. 일상의 또 다른 공간이고 사색의 이탈을 경험하는 일이며, 무엇보다도 숲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일을 멈추고 뒷산을 오르며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여름이나 초가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에 수북이 떨어졌던 가래나무 열매나 도토리는 거의 사라지고, 낙엽도 두께가 점점 얇아져 가고 있었다. 
    가을비를 맞아 수분을 흡수하면서 잎이 곧게 펴지고 부드러워지자 땅에 닿은 부분이 썩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나뭇잎을 조심스레 들춰보면 겨울을 나려는 벌레나 곤충들이 꼬물거리면서 몸을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숲에는 수만 종의 생명이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위의 이끼는 죽은 듯 검은색이지만 그 뿌리와 포자를 숨긴 줄기로 단단히 바위를 움켜쥐고 있다. 초가을에 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찾으려고 해도 뵈지 않았던 싸리버섯이나 깨금버섯도 이따금 보이는데, 바짝 말라 있어도 먹는 데 아무 지장 없다. 따다가 물에 불린 후 삶으면 오히려 생버섯보다 더 식감이 쫄깃하고,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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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가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굴뚝으로 연기가 흘러나온다. 연기를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월동준비 첫 단추, 김장 200포기 
    “아랫마을에서 신고가 들어와서 왔는데. 멧돼지 안 나타났어요?”
    이따금 우리 집을 찾아오는 포수다. 마침 김장을 하고 있던 나는 잠깐 숨을 돌리며 차를 나누었다. 포수는 숲에서 동물들이 겨울 나는 법을 구성지게 풀어냈다. 요즘은 사냥개 목에 헨 추적 장치를 걸어서 예전처럼 사냥꾼이 직접 산을 헤매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는 군청과 협력 하에 농작물에 피해를 주거나 역병을 옮기는 멧돼지를 포획하는데, 아무리 잡아도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다. 
    “멧돼지는 이쪽 산에서 총을 쏘면 저쪽 산으로 도망가고, 저쪽 산에서 사냥을 시작하면 다시 이쪽 산으로 오기에 막을 방도가 없어요. 잡는다고 잡는 게 아니고 그냥 쫓아내는 거지요.”
    “요즘엔 멧돼지는 안 보이고 청설모가 많이 돌아다닙니다.”
    “청설모라… 아 그 청설모가 멧돼지를 먹여 살려요.”
    포수 말에 따르면 청설모는 가래나무 열매나 도토리, 밤 등 열매란 열매는 모두 주워서 적당한 위치에 감춰놓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는 셈이다. 다람쥐와 비슷한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다람쥐는 제가 겨울을 날 굴 속에 먹이를 감추지만, 청설모는 주변 적당한 곳에 대충 땅만 파고 감춘다. 
    “그런데 이 청설모가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너무 욕심을 부려서 그런 건지 몰라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밤이나 도토리를 물어다가 열심히 숨기기만 해요. 그러면 멧돼지가 그걸 찾아서 홀랑 파서 먹어버리거든. 그거 찾는 데는 멧돼지가 귀신이라니까요.”
    얘기를 듣고는 큰 소리로 웃어넘겼지만, 동물들 세계에서는 그것이 숲에서 살아가기 위한 질서일 것이다. 그런데 웃자고 한 그 얘기를 듣고, “세상에는 돈 버는 놈 따로 있고 그거 빼앗아 쓰는 놈 따로 있다”며 비웃던 어른들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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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포기 김장을 위해 배추를 씻고 있다. 아내가 주말에 내려와 김장을 함께 했다.
    내가 이 산 전체를 훑어봤는데 버섯은 뵈질 않았다. 송이버섯 두어 개와 싸리버섯 조금 딴 거밖에 없었는데, 그는 “이 근처에서 버섯이 많이 나온다”며 “찾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버섯을 따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나는 곳까지 자세히 설명하는데, 아무래도 그에게 수강료를 내야 할 것 같았다. 내년에는 틀림없이 포수가 시킨 대로 할 것이다. 
    사람이 숲과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亂(어지러울)의 시작은 결국은 리利(이로울)이다. 어느 쪽이든 차지하고 가지려는 마음을 조금씩 포기한다면 편안해질 것이다.
    며칠 전 집 뒤에 죽은 오소리 한 마리가 있어 혹시 병으로 죽었는지 의심이 갔다. 근자에 돼지 열병이 멧돼지에게까지 번져 북쪽에서 내려오는 멧돼지가 남하하지 못하도록 화천 내면 양돈농가 주변의 야산 길목에 수 ㎞씩 철책을 둘렀다. 병으로 죽은 것은 아닌가 싶어 자세히 보니 엉덩이에 다른 동물의 깊은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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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감자를 수확하는 사람들. 옛날 먹을 게 귀하던 시절, 들판에서 나던 돼지감자를 캐 먹은 기억이 있다. 요즘은 약재로 쓰일 정도로 귀한 몸이다.
    포수에게 물어보니 흔하지는 않지만, 오소리가 먹이를 찾아서 떠돌아다니다가 영역을 주장하는 멧돼지에게 물려서 죽는 일도 있다고 했다.
    동물들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데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수는 없다. 먼저 11월에는 김장이 중요하고, 12월에는 장을 담그기 위한 메주 쑤기를 한다. 올해 다른 농사는 모두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그나마 수확을 한 것은 뒷밭에 심은 100여 포기 배추다. 
    아랫마을 엄씨네서 발효시킨 쇠똥을 날라다 펴고 배추 모종을 심었더니 때마다 농약을 치거나 비료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포기가 들었다. 오후에 그늘이 져서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너른 밭에서 상업적으로 기른 배추처럼 한아름의 포기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단단하게 속이 찬 것이 수확하는 내내 마음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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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장작을 준비하는 촌부.
    따로 노천에서 산 배추 100포기까지 합해 200포기 넘는 김장을 했다. 자르고 소금에 절이는 것까지는 그래도 수월했다. 절인 배추를 씻고 물을 빼는 것부터 시작해서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든데 내가 신나는 노동요라도 불러줄까?”
    “됐고, 배추 씻는 일이나 확실하게 해줘요. 낙엽 들어가지 않게!”
    아내는 작은 체구로 소금에 절인 무거운 배추를 들어서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겉으로 보면 김장이 하루 이틀이면 뚝딱 해치울 것 같지만 일단 100포기가 넘어가면 보통 고달픈 노동이 되는 게 아니다. 
    남자인 나도 허리가 아플 정도니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오죽했겠는가. 사실 요즘 같은 겨울에도 시장에 나가면 시퍼런 푸성귀들이 널려 있어 부지런하다면 김장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옛날에는 사정이 달랐다. 겨울이 되면 성한 채소를 구하지 못하니 채소를 먹기 위해 김장은 필수였다. 말하자면 월동준비의 첫 번째 단추 끼우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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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뚜레를 한 소와 나무로 만든 구유통 (여물통). 요즘은 고기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소박하고 선하게 살고 싶다
    지난주에는 고추밭에 가서 뽑아놓은 고춧대를 정리하고 쇠스랑으로 두둑을 정리했다. 돌아오는 해에 무슨 작물을 심을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미리 밭을 골라놓고 거름을 펴야 흙의 힘도 강해지고 씨를 뿌리기 편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책을 가까이하고 훌륭한 옛글을 읽으면 마음이 단단하고 고결해지듯 숲에서 흙과 더불어 살다 보면 생활은 검소하고 질박해지며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지금까지 흙만 파면서 살았지만 애들 따라서 도시로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혼자 사시는데 적적하시잖아요.”
    “더러 심심하기도 하지만 때 되면 밭에 나가 푸성귀 뜯어다가 반찬 만들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니 그거보다 더 좋은 데가 어디 있수?”
    동면 노천의 수타사 인근을 자전거로 둘러보다가 오래된 민가가 있어 들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농가가 그렇듯 노인 부부, 혹은 사별 후 노인 혼자 사는 집이 많은데 이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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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장에 나온 도루묵(은어). 도루묵은 동해에서 잡히는 생선으로 제철에 홍천장에 가면 볼 수 있다. 마리 단위로 파는 게 아니라 바가지 단위로 판다.
    방 한편에 말린 고추를 쌓아놓고 이번에 빻아서 자식들에게 나눠줄 계획이라며 노파는 거친 손으로 무릎을 쓰다듬었다. 봄가을로 누에를 치면서 손이 부르트도록 뽕잎을 따던 얘기부터 시작해서 팥이나 콩을 머리에 이고 동면 장에 가던 얘기까지, 한번 풀어놓기 시작한 얘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그때는 어디 돈 나올 데가 있수? 밭농사니, 논농사니 지어봐야 그걸로 일곱 식구 먹고사는 것도 부족한데. 그래도 애들 옷이나 집안 어른 잡숫게 고기라도 사려면 돈을 만들어야 하는데 조금씩 모아놓은 팥이나 콩을 자루에 담아 머리에 이고 장에 가서 팔아 샀지.”
    비스듬하게 기운 옛날 세 칸짜리 집에서 혼자 사시는 노파는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어머니와 가장 많이 닮은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기르면서 시부모 봉양은 물론이고 남편과 함께 농사일까지 해야 했던 질곡의 인생을 산 우리의 어머니 바로 그 모습이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얻으려 하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질문을 받고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대답은 아마 열이면 열 모두 일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밤에 생각을 가지런히 한 후 깊이 생각하면 또한 열이면 열 다를 것이다.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경전이나 성현 말씀의 궁극은 결국 소박하고 선하게 일생을 살라는 말씀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행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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