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술 칼럼] 山을 위한 행진곡

  • 글·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입력 2020.12.30 09:26

    찾아간 은행은 을씨년스러웠다. 이래저래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Untact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이 안쓰러웠는지 주판알 튕기며 북적이던 살가운 1970년대가 응답했다. 추억 속의 상고商高 다니는 동네 형은 은행원이 꿈이라 주판을 끼고 살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그 형은 주판 놓는 손가락을 다칠까봐 그 당시 최고의 공놀이인 ‘찜뿌’도 안 하고 오른손은 바지 주머니에 깊게 찔러 넣고 다녔다는 것.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손은 너무나 소중했으니까.
    나도 그랬다. 다치면 산에 못 갈까봐 발 건사에 늘 새가슴이었다. 빈 깡통을 걷어차거나 앙감질, 공차기 한번 안 했다. 그 덕에 산행은 이어지고 현재진행형이니 큰 복이다. 산은 내 삶의 곁다리가 아닌 잉카의 쿠스코cusco마냥 내 세상의 배꼽이다. 그렇다고 탁월한 등반가 김미곤 대장이 이룬 히말라야 14봉 완등이나, 엄청난 멘탈과 내공으로 910m의 엘캐피탄을 프리솔로로 오른 알렉스 호놀드처럼 큰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산을 누군가도 좋아하고 산행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한평생 산을 전하는 길라잡이 산돌이일 뿐이다.
    몇 해 전, 꽃밭에 오매불망하는 아내의 채근에 숲 근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왔다. 큰 산이 멀고 오가는 게 귀찮기도 하여 꿩 대신 닭이라고 집 뒤 둘레길을 2년 정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북한산 리지 산행 중 무릎이 위로 잘 올라붙지 않고 깨금발에서 종아리가 쩌릿쩌릿했다. 내리막 슬래브에서는 오금hamstring에 힘이 실리지 않아 방향전환과 속도제어가 어설펐다. 아뿔싸! 중력을 치받으며 경사를 오르는 수직운동과, 평지를 걷는 수평운동에서 만들어진 힘의 차이가 이리도 큰 줄 몰랐다. 바로 근력과 균형의 문제였다.
    나는 충격에 빠졌고 기본체력으로 산행이 어렵다는 결론에 계획을 짰다.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새벽 수영을 시작했고, 근력을 키우려고 지하철에서 뒤꿈치 들고 서있기,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무릎 올려 걷기와 균형을 위한 스트레칭도 짬짬이 챙겼다. 더하여 산을 향한 상상을 키우니 시나브로 몸이 강해지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이는 산을 잘 타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산에 들고자 하는 그리움과 행복, 건강 등을 잃음으로써 내 삶이 자칫 피폐해질 수 있음을 지극히 경계한 것이다. 마치 은행원을 꿈꾸며 해찰하지 않고 나아갔던 그 형처럼.
    과학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인간은 34, 60, 78세에 극적인 노화가 생긴다’고 했다. 선천적 통뼈가 아니라면 노력으로 노화를 극복해 당당하고 넉넉하게 산을 만나야 한다. 산이 늘 그 자리에 있어도 산을 쉽게 얻을 수 없다. 간절히 구해야 얻는다. 이는 자연과의 동반이 삶의 질을 높여 주기 때문에 필요한 다짐이다.
    새해 새날, 나는 눈 쌓인 북한산 하루재에서 큰 바위 인수봉을 우러르며 새 산을 향한 새 마음으로 새 노래를 부르련다. 산격 높은 입산으로 빛날 우리의 삶, 그 선善을 위해 산山을 위한 행진곡을 대차게 부르련다. 산山자여 따르시라~.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 교장/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건누리병원 고문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국립강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초청강사/사)대한산악연맹 트레킹스쿨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장/월간山 대한민국 등산학교명강사1호 선정
    윤치술 교장은 ‘강연으로 만나는 산’이라는 주제로 산을 풀어낸다. 독특하고 유익한 명강의로 정평이 나있으며 등산, 트레킹, 걷기의 독보적인 강사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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