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피스테라까지, 0.00km 이정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1.01.07 10:41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강물처럼 눈물이… 그곳에서 90㎞를 더 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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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오브라도이로광장은 완주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순례자들로 북적거린다.
    걷기가 무엇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힘든 길을 나서는 것일까? 니체, 루소, 다윈, 간디 등 유명한 사상가들조차 매일 힘들게 먼 길을 걸었다. 걷는 행위는 어떤 누구의 도움 없이 100% 자신의 힘만으로 하는 운동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나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찾기를 원할 때가 있다. 가장 쉽게 접근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걷기이다. 
    천 년 이상 수많은 사람들이 사색과 치유의 길로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선택했다. 그 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며 첫 순교자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다. 이 길은 홀로 걸어도 혼자가 아니다. 외로움이 충만한 길이지만 그 길에선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때론 홀로 때론 함께 걸으며 대화 속에서 순례길을 걷게 된 이유를 말하고 듣게 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되며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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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리시아 지방의 곡식 저장 창고인 오레오. 주로 옥수수를 보관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 그리고 이별
    거의 한 달을 걸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날. 2~3일 전부터 로이, 펠릭스, 아리시아 등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산티아고 도착이라는 두근거림과 기대감 속에는 이별의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조금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다른 날보다 일찍 서둘러서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밖은 컴컴했지만 오늘만 같이 걸을 수 있다는 아쉬움에 어둠속에서도 우리들은 마지막 열정을 나누며 걸었다. 우리들처럼 함께 가면서 즐겁게 걷는 순례자들 모습은 그리 흔하진 않았다. 세 번이나 바에서 쉬면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면서 빵까지 먹었는데도 22km 넘는 길은  5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오브라도이로광장Plaza de Obradoiro에는 수많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영혼까지 털릴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하는 순간 환희의 기쁨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어깨를 서로 감싸 안고 춤을 추고 있고, 어떤 이들은 한 달 가까이 어깨에 멨던 배낭을 베게삼아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습은 달라도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누구나 전쟁영웅처럼 자랑스럽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하는 순간 감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너무나 덤덤한 나 자신에게 놀랐다. 그러나 함께 걸은 친구들과 한 사람씩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면서 눈물은 강물처럼 쏟아졌다. 길에서 받았던 배려와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20여 일간 나의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준 로이가 “No, Crying!!”이라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한동안은 로이의 모습을 나에게서 떼어내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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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향로미사를 매일 낮 12시에 봉헌한다. 향로미사는 향로를 줄에 매달아서 대성당 내부 전체를 왔다 갔다 하며 향을 퍼뜨린다.
    피스테라를 향하다
    순례길의 종착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지만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로 0.00km가 새겨진 돌비석이 있는 피스테라Fisterra를 향했다.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약 90km.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산티아고까지 걸었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걷고 싶었다. 피스테라에서 더 이상 걸어야 할 길이 없음을 확인하면 나의 걸음도 멈추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길의 끝에서 지나온 길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신발이나 옷을 태우거나 대서양에 띄우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환경문제로 금지하고 있다. ‘0.00km’의 이정표를 마주하며 심장의 소리를 확실하게 듣고 싶었다. 대서양이 보이는 길의 끝에 서서 내가 걸었던 길을 다시 기억하고 싶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출발해 만난 첫 이정표에는 피스테라까지 거리가 쓰여 있다. 88.139km. 그동안 900km 가까이 걸었으니 88km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걷다가 가끔씩 뒤돌아보면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부모 곁을 떠나는 아이였다.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서 떠나는 마음이었다. 
    네그레이라Negreira로 가는 길은 어제처럼 따스하고 화사했다. 녹색의 화사로움이 너무 예뻤다. 투명하다 못해 시린 파란 하늘이 너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투명한 파란 하늘이 사랑스러웠다. 하늘이 내 어깨 옆에 내려앉았다. 세상 끝이라는 피스테라로 가까이 갈수록 하늘은 더욱 낮게 내게로 왔다. 지난 수십일 동안 걸으면서 파란 하늘이면 만족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매일 걸으며 원하고 탐하는 것들이 줄어들었다. 마음도 몸도 가벼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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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곳곳에서 이 길을 걸었던 이들을 추모하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페인어를 거의 모르는 나를 걱정하며 토닌이 함께 동행했다. 우연하게 프리미티브 길을 걷다가 만난 친구.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의 삶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온 그는 휴가 때는 어김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가 걷지 않은 순례길이 없을 정도. 모든 알베르게 호스트들은 그를 기억했다. 길을 걸으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나의 인문학 선생님이자 가이드였다. 
    옥수수를 말려서 저장하는 오레오Hórreo도 설명해 주고 아우가페사다Augapesada라는 마을의 이름은 영어 뜻으로는 heavy water라고 알려주었다. 얼마나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지 알 수 있었다. 오레오는 갈리시아Galicia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눈에 많이 띄는 건축물인데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옥수수 저장 창고이다. 비가 많이 오는 갈리시아에서 곡물이 습해지는 것을 막고 쥐 같은 동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다. 여행이 곧 학교임을 다시 느꼈다.
    네그레이라에서 출발해서 만난 두 갈래 길. 토닌이 숲으로 향한 길을 선택했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지만 토닌은 이미 여러 번 걸었던 길이라 능숙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단지 총총 걸음으로 그의 뒤를 좇았다. 북쪽길을 걸으며 종종 만났던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이곳에서 만났다. 숲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마음은 항상 바다보다는 숲을 더 사랑했다. 
    쎄에Cee.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햇살을 받는 마을이 앉아 있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의 평온이 잦아드는 곳이었다. 해안가의 바다와 만 그리고 수많은 보트들. 토닌과 함께 바닷가에 앉아서 밀려드는 바닷물을 응시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피스테라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만났던 친구들, 순례길에 대한 나의 열정, 지난 나의 삶…, 되돌려 감기를 하며 하나씩 정리했다. 길의 끝에 서기 위한 순례자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7km가 채 안 남았을 때부터는 이정표가 더 눈에 잘 뜨였다. 1km씩 줄어들 때마다 심장 박동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바닷가에 있는 바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등산화를 잠시 벗었다. 나를 조이고 있었던 굴레들이 날아간 것처럼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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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끝 피스테라에 있는 0.00km 이정표,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0.00km 이정표 앞에 서다
    성스러운 마지막 의식을 위해서 알베르게에 배낭을 풀고 빈 몸으로 피스테라 0.00km를 향해서 걸었다. 언덕을 올라서면 밀밭이 펼쳐지거나 또 다른 언덕을 마주하곤 했는데 이젠 바다만 펼쳐져 있다. 대서양이었다. 진짜 길의 끝이었다.
    0.00km 이정표 앞에 섰다. 세상의 끝, 피스테라. 내 두 발로 900km 이상을 걸어서 32일 만에 도착했다. 막연하게 오고 싶었던 곳. 가슴에만 품고 있었던 곳.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황홀한 태양이 나를 맞아 주었다. 지도에서 보아도 멀고 먼 길인데,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너고 두 발로 걸어서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걷다 보면 도착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멈추지 않고 이곳까지 오길 정말 잘했다.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룬에서 오비에도까지는 북쪽길, 오비에도부터 멜리데까지는 프리미티브길, 멜리데이에서 산티아고까지는 프랑스길, 그리고 피스테라까지. 비로소 나의 길이 완성되었다.
    삶은 조급하지도 조급할 필요도 없었다.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두 개의 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두 개의 길 또한 길지 않은 시간 후에 종종 만나게 됨을 보았다. 다시 원래 가던 길로 돌아가더라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길게 삶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순례길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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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피스테라 이동경로
    대서양의 일몰. 밤 10시가 넘어서니 맑은 하늘은 점점 어둠이 밀려들고 태양은 조금씩 바다를 향해서 내려가고 있다. 오렌지색으로 물들여진 바다는 점점 붉어지다가 태양이 바다 밑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니 다시 어두워졌다. 황홀했던 시간은 지났다. 파도만 끝없이 밀려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태양이 사라지자 일몰을 보기 위해 모여 있던 순례자들이 모두 함께 소리 지르고 박수를 쳤다. 모두가 비슷한 감정이었겠지. 함께하는 감동이 쓰나미처럼 나를 에워쌌다. 
    피스테라에서 꿈같은 휴식을 보내기로 한 날 이른 아침, 갑자기 토닌이 서둘렀다. 일출이 너무 예쁠 것 같다고 나가자고 했다. 일출시간이 오전 9시 전후여서 아직 해는 바다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게으름뱅이 햇님. 한국에서 일출은 아주 잠깐이어서 어느새 두둥실 하늘 위로 떠오르는데 이곳에선 태양이 아주 서서히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제 일몰과는 색도 분위기도 달랐다. 하얀 솜털 같은 구름과 주홍빛이 참 멋지게 어울렸다. 빛에 취해서 한참을 머무르고 있는데 토닌이 큰 소리로 부르며 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돌고래Dilphin였다. 잠시 바다 위로 뛰어올랐다가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놈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주시했지만 참 어려웠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한 번은 찍었다. 저 멀리 바다에 있어야 할 놈이 연안까지 올라오는 일은 흔하지 않다고 했다. 나는 참 복도 많았다.
    피스테라의 감흥을 뒤로하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이젠 그도 보내 주어야 하는 시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우리는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들의 이별만큼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토닌이 식사비를 모두 계산했다. 내가 꼭 사고 싶었는데 토닌은 이런 내 마음을 먼저 눈치 챘는지 “언제일진 모르지만 제주에 가면 디너를 사달라”고 했다. 당연히 사야지 오기만 해줘. 순례길에서 마지막 이별. 카미노에서 만난 이들과 세 번째 이별인데 또 눈물이 나왔다. 토닌의 눈도 빨개졌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나를 힘껏 포옹한 후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함께 배려하고 시간을 보내준 토닌. 한국 사람의 훈훈한 정을 가지고 있는 그는 내 가슴에 남았다. 순례길을 시작했던 첫 날처럼 다시 홀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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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테라를 향해 걷던 순례자들이 탐브레 강가에 있는 작은 마을인 폰테 마세이라Ponte maceira에서 쉬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인사를 나누다가 순례길을 걷게 된 이유를 서로 나누게 되었다. 마치 고백성사하듯이 자신의 삶을 주저 없이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중에 생각이 정리되며 자기치유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는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길이 나를 선택했다. 나는 단 하루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정을 짜지 않았다. 단지 길에서 예정하지 않았던 만남에 이끌려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뿐이었다. 누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무엇을 찾아 왔는지 자연스럽게 몸은 알아가고 있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자연과의 만남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찾는 시간이다. 자연 속을 걷는 동안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되고 길 위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연 속에서 순례자들을 변화시켰고 안아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후 장거리 걷기 여행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 문화도 매력적이지만 걸으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 홀로여행도 쉽지 않은데 오랜 시간 동안 걸으면 쓸쓸하고 외로움은 더욱 커져서 도전해 볼 생각조차 못한다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 시간 동안 자신과 사유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쓸쓸하고 외롭다기보다는 행복지수가 점점 더 쌓여간다. 계속적인 걷기로 체력뿐 아니라 건강상태도 더욱 좋아졌다. 호기심과 상상력까지 향상되니 정신적인 나이 또한 점점 젊어지고 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처럼 나는 또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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