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반] 이탈리아 돌로미티 사렌티노…알프스의 진주, 사렌티노에 핀 ‘눈의 꽃’

  •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입력 2021.01.19 09:46 | 수정 2021.02.01 10:38

    설피 신고 사냥꾼과 목동이 거닐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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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렌티노의 키 작은 고소목들이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힘들게 서 있고 그 앞을 두 사람이 러셀을 하며 올랐다.
    사렌티노Sarentino는 볼자노시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북부 이탈리아 사우스 티롤South Tyrol에 위치한 계곡이다. 주변에 140여 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28개의 마을마다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낙농업의 최적지이다. 연간 평균 기온은 영상 7.5℃로 여름에도 선선해 볼자노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주변국에서 휴양 삼아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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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에 오른 필자와 도미니크(가운데), 다르코.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에 가슴이 뛴다
    최근 볼자노에서 사렌티노까지 긴 터널이 개발되어 예전에 21개의 터널을 7개로 줄여 15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 터널이 하나도 없던 시기에 사렌티노는 사냥꾼과 소수의 목동들만 살던 외지고 가난한 마을이었다. 
    1494년 처음으로 볼자노와 연결된 도로는 작은 강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마차가 다니는 길이었다. 이런 고립된 위치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것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생활은 불편했지만 그 덕분에 자신들의 전통을 지금도 잘 유지하고 있다. 
    사렌티노 사람의 민속 의상은 매우 화려하다. 예부터 수예 공예와 가죽·손 자수 공예가 발달된 덕분이다. 겨울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산골마을이라 눈이 많이 내리면 꼼짝없이 집안에서 머물러야 했고 이때 소일거리로 시작한 것이 민속공예이다.
     
    부활절 전후로 있는 이 마을의 가톨릭 종교 의식인 첫 영성체 때는 약 7,000명의 마을 주민이 민속 의상을 입고 화려한 티롤 음악대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 공연의 명성은 대단해서 주변국에서도 이것을 보러 관광을 온다고 한다. 한국 EBS의 ‘세계테마 기행’과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방영되기도 했는데, 두 방송 모두 필자가 코디네이터와 큐레이터로 참여해 특히 정이 많이 가는 마을이다.
    눈꽃이 사렌티노를 두껍게 덮었다. 예전 같으면 눈으로 고립된 마을에서 주민들은 스키나 설피를 신고 이동했지만 지금은 사렌티노 오른편에 ‘라인스발트Rainstein 스키장’이 있어 인기가 좋다. 이 스키장은 볼자노시에서 가장 가까운 스키장 중 하나이다. 주말에는 넓고 넓은 주차장이 가득 찬다. 
    눈을 밟고 싶어 친구인 프랑스인 도미니크(68)와 슬로베니아인 다르코(71)와 함께 사렌티노로 갔다. 수 십 번을 와봤던 스키장과 산이지만 계절마다, 날씨에 따라 자연은 마술을 부렸다. 모든 사물이 흑과 백으로 보이는 것처럼 많은 눈이 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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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힘들게 오르는 도미니크 뒤로 오스트리아의 산군이 펼쳐진다.
    모두가 평등한 순백의 세상
    첫눈을 만나면 유난히 생각나는 사람들, 첫눈을 꼭 같이 걷고 싶었던 사람들, 첫눈을 보며 듣고 싶은 음악들을 생각하며 슬로프 옆의 등산로를 오른다. 설피에 눌려 부서지는 눈의 신음소리가 가슴을 뛰게 만든다. 
    경사가 심해질수록 몸은 뜨거워진다.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눈 깨지는 소리도 거칠어진다.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나뭇가지에 힘들게 매달려 있던 눈덩이들이 얼굴을 갈긴다. 눈을 가린 선글라스 위로 바람에 날린 눈 파편이 날아온다. 산 정상에서 360도로 펼쳐진 티롤 알프스와 돌로미테의 파노라마가 모두 하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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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이 반사돼 보석처럼 빛나는 눈을 헤치고 다르코가 앞으로 전진한다.
    깊은 첫눈을 발로 품기 전에는 눈이 머무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다. 무음의 작은 숨결로 너무나도 가깝게 슬그머니 다가온 그를 몰랐다. 그러나 정말 좋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갑자기 내게 다가온 그는 온 세상을 하나의 색, 하나의 세상으로 일치시켜버렸다. 
    이름 모를 수 백 가지의 야생화들을, 끝없이 넓은 초원을, 위협적으로 깎아진 수직의 절벽과 너무나 맑아 모든 산이 투영되던 호수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절대의 힘이 있었다. 
    욕심이 생겼다. 그와 같이 온 세상을 행복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모두 잊고 살아라, 모두 아픔을 버리고 고통도 버리고 살아라, 내 그와 같이 너를 찾아가려니 모두 다 내려놓고 살아라, 서로 질투하고 깎아 내리던 고통과 나쁨을 나와 그와 같이 버리고 언젠가 우리가 가장 행복한 날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첫 눈과 같이 내가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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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크가 바람이 휘날리는 설연 사이를 고독하게 걷고 있다.
    “산에 뿌려진 눈꽃이 등산화의 발자국 바람과 만난다 
    서로의 차가운 기를 쥐어 잡게 한다

    신발이 닳아 살이 터지고 밀려나는 눈꽃에 흔적 남긴다 
    숨통을 끊을 것 같은 네 발의 거친 소리에 숨을 죽인다 

    얼어붙은 산하에 눈꽃 내려앉아 
    추위 잊은 뜨거운 산행에 문을 열어 주니 얼굴 때리는 겨울 소식이 반갑다

    얼어붙은 나뭇잎들과 눈꽃망울은 얼음 컵과 접시를 만들어낸다
    눈꽃 길을 걷는 그림자가 쉬지 않고 오름짓과 내림짓을 계속한다.” 
    -나미래 시인의 ‘눈꽃을 밟으며’를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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