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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화제의 인물] 목판에 기록한 국토 대서사시 그는 나머지 반쪽을 새기고 싶다

월간산
  • 입력 2020.12.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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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가 김억 ‘국토서사’전 선릉역 HJ타워에서
이 땅의 풍광과 삶과 역사를 담은 45점 선보여

그의 칼끝은 DMZ에서 멈췄다. 땅끝 해남에서 최전방 휴전선, 백령도에서 독도까지 국토를 종횡하며 풍경과 민초의 삶을 나무판 위에 새겨온 그의 조각칼은 북쪽으로 향하는 노정에서 일단 멈춤 상태다.

중견 목판화가 김억의 ‘국토서사’전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 있는 HJ타워에서 열리고 있다. 남한 땅 동서남북 구석구석의 풍광과 삶과 역사를 담은 작품 45점을 2월 말까지 만날 수 있다. 

한라산 영실계곡  / 202 x100cm / 한지에 목판 / ed12 /2009
한라산 영실계곡 / 202 x100cm / 한지에 목판 / ed12 /2009

서해 끝 백령도에서 철원·양구·고성을 거쳐 동쪽 끝 독도에 이르는 ‘DMZ 시리즈’와 해남 녹우당에서 보길도까지 50km거리를 10m 길이로 판각한 ‘남도풍색南道風色’ 같은 그의 노작勞作을 감상하는 것은 흡사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읽어내려가는 것과 같다. 

지난 30년 동안 이 땅의 속살을 나무판 위에 새겨온 그의 작품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일상의 삶에서 격리된 풍경이 아니라 사람과 역사와 공간을 한데 어우른 장대한 서사시 같은 스케일에 있다.   

백두산 비룡폭포   / 152x62cm  / 한지에 목판 / ed12 /2008
백두산 비룡폭포 / 152x62cm / 한지에 목판 / ed12 /2008

‘남도풍색’을 보자. 10m에 이르는 이 장대한 작품을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으로 찬찬히 훑어가면 왜적과의 전쟁에서 전세를 역전시킨 명량해전의 이순신과 다산 정약용, 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오롯이 만날 수 있다. 그런 역사적 인물들의 서사敍事 한켠에, 남도의 풍광 속에서 고기 잡고 밭을 일구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도 어김없이 함께 담겨 있다. 

독도  / 190 x60cm / 한지에 목판 / ed7  /2019
독도 / 190 x60cm / 한지에 목판 / ed7 /2019

호랑이 등줄기처럼 꿈틀거리는 첩첩산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의 골과 골 사이에서 노동하는 사람이 있고, 유유자적 음풍농월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맷자락 속에 감쳐둔 소망을 이루기 위해 탑돌이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등 실로 다양한 삶의 나이테가 성실하게 새겨져 있다.

김억은 역사라는 시간성을 씨줄로, 자연과 인간이라는 공간성을 날줄로 장대한 시공간을 엮어내면서도 삶이라는 서정성을 놓치지 않았다. 

한강-합수머리 팔당호  / 100 x200cm / 한지에 목판 / ed12  /2012
한강-합수머리 팔당호 / 100 x200cm / 한지에 목판 / ed12 /2012

역사와 인간을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김 작가는 편한 지름길을 놔두고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듯하다. 그가 목판 위에 칼로 써내려간 ‘국토 인문학’엔 좌와 우, 개발과 보존이라는 단순한 잣대 대신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한데 녹아 있다. 삶에 대한 따스하고 숙성된 시선을 지녔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그는 현재와 과거가 수시로 같은 화면에 교차하는 판타지 공간을 치밀한 답사와 사료조사, 꼼꼼한 고증을 통해 바로 우리 곁으로 옮겨 놓았다. 

안면도 송림2  / 137 x222cm / 한지에 목판 / ed7  /2014
안면도 송림2 / 137 x222cm / 한지에 목판 / ed7 /2014
그는 최근작 ‘DMZ 연작 시리즈’에서 작품마다 금강산을 화면 맨위에 가져다 배치해 놓았다. 현실적으로 금강산은 양구와 철원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칼끝이 4km 두께의 남북 비무장 장벽을 가르고 북녘 산하와 사람들의 삶을 나무판 위에 기록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도산구곡   / 52 x437cm / 한지에 목판 / ed12  /2005
도산구곡 / 52 x437cm / 한지에 목판 / ed12 /2005

김억金億 Kim Eok

1955 충청남도 당진 생

1986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20 김억의 국토

김억의 국토서사-DMZ를 걷다

2018 김억 목판화전

2016 김억의 목판화-남도풍색

2014 국토 유토피아니즘-김억 목판화 

2013 김억의 목판화-산과 강을 날다

2012 김억의 국토-한강

2011 한 목판화가의 인문주의-김억의 국토

2010 풍경을 만지다-김억의 재구성된 풍경

김억의 국토

2009 국토백경-김억 목판화전

2008 김억의 목판 요동 횡단기

수원화성, 그 뜻을 새기다

2006 역사와 삶이 만나는 성곽에서 

2005 김억 목판화전

1998 김종억 목판화전

1996 김종억전

1994 천·지·인 김종억 한국화전

1985 여름·가을·겨울·봄-김종억 한국화전 

단체전

2020 김억·김천일-‘남도견문록’전

2019-1984   200여 회 단체전 참가

주요 작품 공공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부산시립미술관, 생거진천판화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오산시립미술관, 성남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청강문화산업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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