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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경상도의 숨은 명산] 이름 없는 산이라도 매력 있다오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1.01.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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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성여왕 능에서 유래한 양산 능걸산…기암에 분재 같은 소나무 눈길

기차바위는 주변 전망도 좋지만 기암들에 분재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진 이채로운 경관이다.
기차바위는 주변 전망도 좋지만 기암들에 분재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진 이채로운 경관이다.

사람이 각자의 이름을 갖고 있듯 산도 제각각 이름이 있다. 또 사람들의 이름에 나름 숨은 의미가 있듯이, 산도 그 이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전설을 품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의 지형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산이 많다는 사실이다. 산자락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예전부터 불러온 이름이 있는 산인데도 말이다. 경남 양산의 능걸산도 그런 산 중의 하나다.

능걸산陵桀山(783m)은 영축지맥에서 살짝 벗어나긴 했어도 염수봉 남쪽에 위치해 영남알프스에 가까운 언저리의 산이다. 산자락의 어곡동魚谷洞은 본래 ‘임금이 거처하는 곳’이란 뜻의 어곡御谷·어실御室이라 했다. 이곳은 신라 진성여왕의 능陵으로 추정하는 묘지가 있어 산 이름도 ‘능걸’이란다.

<삼국사기>권 11, 신라본기에 ‘겨울 12월 을사에, 왕이 북궁에서 죽었다. 시호를 진성이라 하고 황산에 장사지냈다冬十二月乙巳. 王薨於北宮 諡曰眞聖, 葬于 黃山’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양산은 신라 때 황산으로, 어곡 일대에는 능곡陵谷·능묘陵墓·능뻔더기 등의 지명도 전해진다.

갈림길을 지나면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갈림길을 지나면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능걸산은 웅장하고 산세가 빼어난 명산이 아니지만 나름 매력을 지니고 있다. 완만한 산릉, 기암과 절벽, 탁 트인 조망 등을 자랑할 만하다. 또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한적해서 좋다. 아쉬운 것은 산 주변 곳곳이 공업단지, 공원묘지, 골프장, 풍력발전시설, 토석채취장 등으로 파헤쳐져 일그러져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능걸산에 이웃한 축전산 일대의 풍력발전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산행은 양산시 강서동 어곡 삼성파크빌 버스정류소에서 시작한다. 아파트 뒤쪽 마을 산책길인 어실길~능걸산 5.1㎞ 이정표~전망바위~소토리(감결 마을) 갈림길~천마산 갈림길~기차바위~능걸산 정상~신불산 고산습지~에덴밸리골프장 입구~용선고개~축전산~널밭고개~등산로 폐쇄 안내판~478m봉~채석장 입구~용선 마을 버스정류소를 잇는 약 14km의 코스다. 등산로 폐쇄구간인 478m봉 능선은 암릉과 채석장으로 산행로가 바뀌어 약간 위험하지만 웬만한 산행 경력의 소유자라면 큰 문제는 없다.

삼성파크빌 버스정류소 뒤쪽으로 돌아 오르면 어실길이다. 이 길은 인근의 아파트 주민들이 산책로로 꾸민 길이다. 중간의 샘터에서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벚나무가 쭉 늘어선 임도처럼 넓은 길에 야자매트를 깔고 쉼터에 간단한 체육시설까지 있다. 능걸산 5.1㎞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한적한 오솔길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어우러져 이른 아침을 깨운다.

산을 깎아 조성한 시설들로 자연환경 훼손이 우려되는 레저복합리조트인 에덴밸리.
산을 깎아 조성한 시설들로 자연환경 훼손이 우려되는 레저복합리조트인 에덴밸리.

산세가 말 닮은 천마산도 가볼 만해

완만한 능선 길로 고도를 높이면 사방이 트이는 전망바위를 만난다. 지나온 산릉과 양산시가지, 그 뒤로 부산의 금정산이 조망된다. 서쪽의 선암산과 매봉도 손에 잡힐 듯하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또 다른 전망 터에 이른다. 능걸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산자락의 골프장도 드러난다.

동쪽으로는 천성산을 중심으로 낙동정맥이 뻗어가고 성냥갑 같은 차량들이 경부고속국도를 시원하게 달린다. 낙엽과 솔가리가 깔린 산길은 푹신푹신하고 부드럽다. 소토리(감결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산릉이 합쳐지는 갈림길은 소석마을 방향의 천마산(527.8m)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면 다녀올 수 있는 천마산은 산세가 말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삼각점이 자리한 산정은 전망이 시원찮다. 되돌아와서 능걸산으로 향한다. 차츰 경사가 가팔라지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즈음 거대한 바위군이 길을 막아선다. 기차바위 암릉의 시작점으로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바위 옆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바위지대로 오를 수 있다.

능걸산 정상석을 등지고 서면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산 물결로
넘실거린다
능걸산 정상석을 등지고 서면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산 물결로 넘실거린다

기차바위는 특정한 단일바위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기차를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부른다. 바위 사이를 비집고 올라서면 감동적이다. 훤히 드러나는 주변 전망도 좋지만 기암들에 분재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진 이채로운 경관이 산꾼의 눈길을 붙잡는다. 넓게 펼쳐진 너럭바위에 서면 축전산에서 매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조망되고, 기암들이 기차바위라는 이름처럼 능걸산 산정을 향하여 줄을 잇는다. 가까운 에덴밸리의 풍력발전기가 파란 하늘 아래 힘차게 돌아간다.

시루떡 같은 바위를 넘어 암릉을 벗어난다. 잠시 가파르게 치오르면 커다란 정상석이 산마루를 지킨다. 상북면 사람들은 부처덤 또는 기차바위라 부른다는 능걸산이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이정표도 보인다. 정상석을 등지고 서면 영남알프스의 산릉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가까이 염수봉에서 북쪽으로 영축산까지 영축지맥의 준봉들이 산 물결로 넘실거린다. 그 너머로 향로산이며 재약산, 천황산, 능동산, 신불산이 어깨를 나란히한다.

정상에서 에덴밸리 쪽으로 향한다. 786m봉을 넘으면 신불산 고산습지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신불산 고산습지는 지난 2004년 2월 환경부로부터 생태계 보고로 인정받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본래 달포늪 또는 신선늪이라 불렀다고 한다. 습지 일대에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인 자주땅귀개를 비롯해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삵, 노란목도리담비 등 다양한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기차를 닮았다는 기차바위.
산등성이를 따라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기차를 닮았다는 기차바위.

곳곳에 가슴 아픈 자연훼손의 흔적

습지삼거리 갈림길에서 서쪽 에덴밸리 방향으로 꺾는다. 산길은 습지보호지역 감시초소에서 임도로 바뀐다. 에덴밸리 골프장 입구 도로를 건너 스키장 상부 가장자리로 잇는다. 에덴밸리는 골프와 스키, 스파, 루지 등이 어우러진 레저복합리조트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며 습지보호지역인 이곳에 산을 깎아 시설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양산 어곡동과 밀양 단장면을 잇는 지방도 제1051호선이 지나는 용선고개에 닿는다. 고갯마루 매점 뒤편 산으로 오른다. 여기도 산등성이를 따라 풍력발전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산을 파헤치는 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클레인에 깎여버린 축전산(753m)을 지나 707m봉을 내려서면 널밭고개다. 원동면 내포리 어전에서 어곡으로 넘나들던 고개다. 맞은편 산등성이로 오른다. 이 능선 길은 토곡산이나 선암산, 매봉으로 이어진다. 널밭고개를 뒤로하고 올라서면 등산로폐쇄 안내판이 서 있는 갈림길에서 동쪽 478m봉 능선으로 꺾어 든다. 길은 희미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스친 흔적과 선답자의 리본이 눈에 띈다.

능선 길은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청정하고 전망도 뛰어나다. 매봉이 걸출하게 다가오고, 지나온 능걸산 일대는 물론 어곡동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리저리 잡목을 헤치며 다다른 478m봉은 집채만 한 바위군으로 우뚝하다. 바위 사이로 오르내리며 때론 우회하기도 한다. 암릉을 벗어나 채석장 꼭대기에 닿는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파헤쳐진 산자락이 이곳만은 아니다. 어곡동 골짜기 곳곳에 깊은 상처를 드러낸 흔적을 볼 수 있다.

석장 가장자리에 설치된 로프를 따르는 산비탈 길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로 한 굽이 내려서면 왼쪽 짧은 능선의 초입에 리본이 달렸다. 마사토가 드러난 묘지를 만나고 뒤이어 계곡이 보인다. 계곡을 왼쪽에 끼고 숲길로 걷다가 임도로 내려선다. 곧이어 너른 마당의 컨테이너 가건물을 지나 용선 버스종점에 닿는다. 고즈넉한 숲길에 그림 같은 기차바위를 품은 능걸산. 산자락 곳곳은 깎이고 패여서 상처투성이다. 이런 모습을 훗날 다음 세대가 바라보고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산행길잡이

양산시 강서동 어곡 삼성파크빌 버스정류소~어실길~능걸산 5.1㎞ 이정표~전망바위~ 소토리(감결 마을) 갈림길~천마산 갈림길~기차바위~능걸산 정상~신불산 고산습지~에덴밸리골프장 입구~용선고개~축전산~널밭고개~등산로 폐쇄 안내판~478m봉~채석장 입구~용선 마을 버스정류소<6시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5)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 환승센터 4번 승강장에서 용선행 세원교통(384-6612) 시내버스 24번 또는 24-1번을 타고 어곡 삼성파크빌 버스정류소에서 내린다. 또 양산시청 앞이나 남부시장에서 23-1번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숙식(지역번호 055)

도시철도 2호선 양산역 환승센터 주변에 숙소는 많다. 아이엠호텔(383-5577), 리자인호텔(366-6633), 썬라이즈모텔(363-3116), 위너스모텔(366-3090) 등이 있다. 양산역 환승센터에서 가까운 양주초등학교 후문 앞 세정(388-2277)의 토종 된장우거지는 웰빙 밥상이다. 간단한 분식류는 양산할매국시(382-2228)가 있다. 북정동 가마골(362-2020)은 신선한 천연재료들을 듬뿍 넣고 밤새 우려낸 갈비탕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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