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터뷰] 초보 산꾼 이시영, 山과 사랑에 빠지다

입력 2020.12.31 12:31

배우 이시영, 새벽 북한산서 월간<山> 표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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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문수봉 정상에 선 배우 이시영. 현란한 바위능선 너머로 서울 시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몸을 만들어야 했는데, 등산을 택했어요. 일주일에 5일은 산행했어요. 거의 매일 청계산을 올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살빼기 위한 운동으로 여겼는데 그렇게 두 달 산을 오르니, 어느 순간 경치도 보이고 숲의 싱그러움도 느껴졌어요. 다른 산이 가고 싶어졌어요.”
이시영의 선택은 고도감 센 바윗길이었다. 북한산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내려가는 길, 스릴 넘치는 바윗길과 쉬운 계단길 중 바윗길을 택했다. 가파른 바윗길과 우회하는 계단길 선택의 기로에서 어려운 길을 택한 것.
등산깨나 했다는 이들도 피한다는 비탈진 슬랩, 손에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평지처럼 사뿐히 걸으며 완벽한 포즈를 취했다. 100m 넘는 낭떠러지 바윗길에서도 난간을 이용해 안정적인 동작으로 부드럽게 내려섰다. 운동신경과 담력, 집중력, 모든 면에서 탁월했다. 월간<山> 신년 표지 주인공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깜깜한 새벽, 배우 이시영을 종로구 구기동 탐방지원센터에서 만났다. 구기계곡으로 올라 대남문을 거쳐 문수봉(727m)에서 비봉능선을 따라 승가봉과 사모바위에 오른 다음, 승가사를 거쳐 구기계곡으로 원점회귀할 계획이다.
그녀는 운동을 즐기는 건강 미인으로 유명하다. 2010년 권투를 주제로 한 드라마에 캐스팅되면서 복싱에 입문해 아마추어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한 그녀는 국가대표선발전에도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단순히 취미가 아닌 두 번째 직업으로 복서의 길을 걸었다. 다만 습관성 어깨 탈구로 2015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부분은 이런 이미지를 방송용으로 이용하고 실제 활동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기초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밟아 올라 성과를 냈다. 일반적인 여배우들과 달리 자기만의 독특한 빛깔을 내는 건강한 이미지의 배우다. 현재 넷플릭스 방영 중인 드라마 ‘스위트홈’과 예능프로그램 ‘나는 살아 있다’, ‘전지적 참견시점’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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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c가 넘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 웃으며 월간<山> 표지 촬영을 한 배우 이시영.
유일한 연예인 등산 유튜버
빠를 땐 빠르고 느릴 땐 느리다. 일행의 속도에 맞추어 야간산행으로 산을 오른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 짙은 어둠, 불규칙한 산길, 이른 새벽 산행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은 밝다.
등산의 즐거움에 빠진 이시영은 ‘등산 유튜브 방송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좋아하는 등산도 하고 영상도 만들어 팬들과 소통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촬영과 영상 편집을 도와줄 곳이 필요했는데 상당수 회사에서 난색을 표했다. 아마 젊은 연령대의 촬영진이 등산하기를 꺼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이시영과 뜻을 함께하는 회사를 만나 지난 9월부터 개인 유튜브 채널인 ‘이시영의 땀티’를 운영하고 있다. ‘땀티’는 ‘땀나는 TV’의 줄임말이다. 땀티를 통해 100대 명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매주 전국의 명산을 찾아 산행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미모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는 보통의 여성 유튜버와 달리 제대로 된 등산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 지하철에서 내려 어떻게 산 입구까지 갈 수 있는지, 지도를 두고 실제 산행 코스를 알려 주며, 산행 난이도와 역사·산세까지 알려준다. 때문에 “땀티를 보면 그 산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며 깨알 같은 홍보를 한다.
이시영은 땀티 영상을 통해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여러 번 밝혔다. 그녀는 “우리 국토의 70%가 산인데, 내가 살면서 다녀본 지역은 10%가 안 되는 것 같아 우리 땅을 더 골고루 보고 싶었다”며 “지금까지 좋아했던 운동이 권투나 러닝 등 맨 몸으로 할 수 있는 걸 선호하는데, 등산도 내 몸만 있으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속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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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정상부의 슬랩 구간을 사뿐히 내려서고 있다. 그녀는 흙이 많은 육산보다 바위산이 더 좋다고 말한다.
이어 “다이어트하려고 등산을 시작했지만, 산에 가면 갈수록 너무나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정상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나는 저기에서 점 크기도 안 되는 존재인데 아등바등하며 살았구나 싶으면서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유튜브 팀이 등산이 힘들어 포기하는 것”, 때문에 등산의 즐거움을 스태프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구기계곡을 오르는 산행 중에도 자신의 수족이 되어 주는 박용규 매니저와 유튜브 촬영진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여유 있게 오른다.
그녀의 산에 대한 열정은 임신했을 때의 일화로도 알 수 있다. 2017년 임신 9개월이 된 그녀가 내장산을 찾았고, 잠깐 숲을 즐긴다는 게 까마득한 절벽 능선지대인 서래봉과 불출봉까지 가게 된 것. 그는 “당시 임신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 산을 찾았는데, 산길이 가팔라 뒤돌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가다 보니 능선까지 가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문수봉 정상은 칼바람이 기세등등하다. 하필 영하의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이지만, 덕분에 시야가 깨끗하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문수봉 정상 위에 이시영이 선다. 두꺼운 패딩을 입어도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지만, 가벼운 옷만 입고 카메라를 보며 웃음 짓는다. 살을 에는 추위에 어떻게 저토록 천사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절로 감탄이 난다. 역시 프로다.
서울시내와 산줄기 너머로 뜨거운 태양이 불끈 떠오르고, 사진기자의 손놀림이 더 바빠진다. 대자연이 보여 주는 찰나의 장관과 이시영의 투혼에 가까운 인내력이 어우러져 월간<山> 1월호 표지가 완성되었다. 이어 “저기가 백운대, 너머가 도봉산, 아래쪽 저기가 북악산, 그 옆이 인왕산 맞나요?”라고 묻는다. 문수봉이 처음임에도 주변 봉우리를 다 알아맞힌다. 방향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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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능선의 석문 위에 올라 경치를 즐기는 배우 이시영. 등산에 빠진 그녀는 유튜브 등산전문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등산,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
진짜 산행은 이제부터다.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 하강에 가까운 비탈길, 국립공원에서 ‘매우 어려움’으로 분류한 바윗길을 따라간다. 만약을 대비해 로프까지 준비했으나 사뿐히 바윗길을 걷는 이시영의 균형감각에 보조 로프를 꺼낼 일이 없음을 직감한다.
기념사진 명소로 꼽히는 기암 꼭대기에 설 수 있을까 고민 중인데, 그녀는 벌써 바위를 오르고 있다. 바위를 오르내리는 몸짓이 도저히 ‘등린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시영은 “등산 경력이 짧다”며 스스로 ‘등린이(등산+어린이)’라고 자처하지만, 베테랑도 혀를 내두를 실력을 갖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밝힌바 있음에도 바위를 잘 타는 비결을 묻자 “번지점프 같은 걸 할 때는 두려움에 움츠려들지만, 바위를 탈 때는 바위 자체에 집중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실내암장에서 클라이밍을 배운 적 있다. 당시 “너무 재미있었지만, 클라이밍 도중 어깨를 다쳐 그만두었다”고 한다.
흙이 많은 육산보다는 다양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바위산을 선호하며, “바윗길이 있어야 산행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산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당황하지 말고, 내가 가고자 하는 코스의 대략적인 방향과 산세를 기억해 활용하면, 길을 잃었다가도 다시 찾기 쉽다”며 경험이 담긴 산행 길 찾기 노하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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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봉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월간<山> 취재진과 이시영의 ‘땀티’ 유튜브 촬영팀.
이시영의 유튜브 영상엔 구독자 댓글이 수없이 올라오는데,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다. 한 구독자는 ‘운동 잘 하는 거야 온 국민이 다 알지만 정말 말씀도 잘하고 소탈한 것 같아요. 자외선을 포기하고 가을여자를 선택한 건 신의 한수!’라고 평했으며, 다른 구독자는 ‘땀티 영상은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이시영씨의 건강한 웃음과 수다 때문이겠지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구독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라고 응원의 글을 적었다. 또한 어느 구독자는 ‘시영님이랑 손잡고 가는 것 같은 느낌 너무 좋아요! 저도 꼭 산행하다가 시영님 만나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팬심을 표현했다.
승가봉에 닿자, 해가 완연히 솟아 추위도 조금 누그러졌다. 이시영의 산행팀이라 할 수 있는 유튜브 촬영팀원들과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는 “팀원들과 100명산은 물론이고, 한국의 모든 산을 다 가고 싶다”며 “팀원들과 사계절을 계속 함께하다 보면 더 깊은 동지애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이들과 오래도록 산행을 이어가고픈 마음을 드러낸다.
사모바위를 지나 구기계곡으로 내려서는 길, 문수봉 산행 소감을 물었다.
“지금까지 산에서 본 일출 중 오늘이 가장 예뻤어요. 위기도 있었어요. 문수봉에서 촬영할 땐 너무 추웠는데, 해가 비치고 몸을 움직이니 훨씬 좋아졌어요. 몇 년 동안 회고할 수 있을 만한 일출이었어요. 엄청난 장면들을 보고 내려왔는데, 아직 오전 10시잖아요. 이럴 때도 기분 좋아요. 하루를 더 보람되게 쓰는 것 같아요.”
현재 그녀는 최소 주2회 등산을 하고 있다. 하루는 유튜브 촬영을 하고, 하루는 지인들과 함께 개인적인 산행을 한다. 심지어 수면 시간을 줄여 가면서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산행할 때도 많다. 촬영으로 바쁜 스케줄에도 등산을 고집하는 건, 그녀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예인들도 다들 나름대로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있는 것 같다”며 “술로 푸는 분도 있지만, 저는 그 방법이 등산”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월간<山> 독자, 즉 등산 애호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저는 한참 산 후배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산과 사랑에 빠졌거든요. 선배님들께 배운다는 마음으로 등산하겠습니다. 유튜브 채널 오셔서 선배님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복싱도 했고, 등산도 하고 있는데, 등산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복싱에 이어 등산이 두 번째 전환점이 되어준 것 같아요. 다음에도 월간<山>을 통해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안전산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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